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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800752
한자 鑛業
영어공식명칭 Mining industry
분야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충청남도 보령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전일욱

[정의]

충청남도 보령시의 지하 및 지표상에 원래부터 존재하는 고체·액체·기체 상태의 천연광물을 채굴·선광·제련하는 산업.

[개설]

보령 지역에서 광업이 성황을 이루던 1912년부터 1983년까지 설정된 광업권 현황을 살펴보면, 석탄 관련 광업권이 전체 265건 중 123건으로 46.4%를 차지하였다. 다음은 금·은·아연광 45건[17.0%], 석면 25건[9.4%], 규석 24건[9.1%], 규사 22건[8.3%], 활석 기타광[9종] 26건[9.8%]이었다. 이에 따라 보령 지역의 부존(賦存)[천부적으로 존재하는 일] 지하자원은 금·은·아연·석탄·흑연·규사·석면·규석·활석 등이었음을 알 수 있다.

[금광]

보령 지역은 일제 강점기 일본인들의 금화 정책 시행으로 금광 개발이 활기를 띠었다. 1920년대부터 금광 개발을 시작하여 천북면 하만리의 만리금산(滿里金山), 천북면 낙동리 빙도의 보령금산(保寧金山), 청소면 죽림리의 삼응광업소(三應鑛業所)에서 사금광산(砂金鑛山)을 운영하였다. 또한 주포면봉당리, 청소면성연리·정전리·재정리·진죽리 일대, 청라면 향천리, 웅천읍 대창리[절골], 대천의 화산동·남곡동 일대에 금광이 개발, 운영되었다. 보령에서 금광이 운영되었던 곳에는 지금도 ‘금구데기’라는 지명이 남아 있으며, 현재 지표상에서 개발 흔적을 찾아볼 수가 있다. 그러나 2023년 현재 채굴이 진행되고 있는 금광은 없다.

[석탄광]

보령 지역의 탄전은 1931년 일본인 시마무라[島村]가 대천, 남포, 부여, 홍성 지역의 정밀 지질조사를 실시하고 탄맥의 분포도를 작성하면서 자원의 매장이 확인되었다. 광복 이후 1948년 장순각 등에 의하여 부분적으로 광산 개발이 시작되었다. 그 후 이필용(李弼龍)이 당시 청라면 의평리에서 영보탄광을 설립하여 본격적인 광산 개발에 착수하면서 1952년 2개 광구의 광권을 설정하였다. 당시 보령 지역은 주로 성주산 일대의 청라, 대천, 남포, 미산[성주]을 중심으로 분포된 436.5㎢의 탄전에 단위 광구 209개가 등록되었다. 그중에서 70여 개를 개발 운영하여 연간 150만 톤의 무연탄을 생산하여 보령의 무연탄 생산이 한때 전국 생산량의 약 10%를 점한 적도 있다.

보령의 석탄 산업은 50여 년간 보령시의 지역 경제를 이끌어 온 기간산업이었지만, 1995년에 이르러 모두 폐광되었다.

충청남도 보령시 웅천 지역은 오석과 남포벼루의 산지로 대한민국 석재 산업의 중심지로 유명하다. 특히 웅천 지역에서 생산되는 오석은 천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돌로 유명해 조선 시대부터 우리나라 최고 벼루로 명성이 자자하다. 하지만 최근 경기 침체와 부진으로 보령 석재 산업이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다.

과거 웅천 지역 석재 산업은 전국 제일의 석공예 단지로 성행하였으나 지금은 중국의 값싼 원석과 가공품이 들어와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보령 웅천에서 생산되는 천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돌 오석은 풍화된 암석 사이사이에서 고구마처럼 산출되는데, 그중 20%만이 질 좋은 오석이 된다. 초기의 오석은 지표에 노출된 원석을 채굴하였지만, 오늘날에는 중장비를 이용하여 수십 미터를 파고 내려가 원석을 채취한다. 채취한 원석을 운반하기 쉽도록 정과 망치를 이용하여 나눈 뒤 작업장으로 운반되어 용도에 따라 절단한다.

보령 오석의 분포를 살펴보면, 보령시 웅천읍성주면 일대의 석탄층 주변에 분포하고 있다. 주성분은 흑사암으로 갈면 검은 빛이 나며, 흑사암 위에 조각을 하면 흰색과 회색이 나타나는데 풍화에 강하다. 따라서 보령오석은 보석이라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진귀한 돌이다.

보령 성주사지에 있는 국보 8호 보령 성주사지 대낭혜화상탑비는 1,100여 년의 세월 속에서도 글씨가 오롯이 남아 있어 신비한 돌로도 유명하다. 보령오석은 역대 대통령[박정희·김대중·노무현]의 비석과 독도 수호비 등에 제작·사용되고 있다.

또한 보령의 성주산 중턱에는 백운사가 있는데, 인근의 광산에서 캐내는 돌을 ‘백운상석(白雲上石)’이라 하는데, 그중에서도 최상의 백운상석으로 만든 벼루가 바로 남포벼루이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일본에서도 유명하며, 특히 일본 사람들은 대대로 가보로 물려줄 만큼 귀하게 여기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역대 대통령의 집무실에 놓여 왔으며, 지금은 국빈들의 선물로도 애용되고 있다. 보령 지역에는 현재 충남지방 무형문화재 6호인 김진한과 김진한의 문하생들이 전통 벼루 문화의 맥을 잇고 있다. 추사 김정희(金正喜)[1786~1856]의 유물 중에는 벼루 3개가 보물 547호로 지정되어 있는데, 그중 2개가 남포벼루이다.

[참고문헌]
  • 『보령시지』(보령시지편찬위원회, 2010)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https://encykorea.aks.ac.kr)
  • 웅천돌문화공원(http://www.brcn.go.kr/stone.do)
  • 브릿지경제(https://www.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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