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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000155
한자 竹林里
영어공식명칭 Jukrim-ri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전라북도 부안군 백산면 죽림리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용범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연표보기 - 전라북도 부안군 백산면 죽림리 개설
성격 법정리
면적 4.35㎢
가구수 121가구
인구[남/여] 177명[남 88명/여 89명]

[정의]

전라북도 부안군 백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대숲이 무성한 지역이라 죽림(竹林)이라고 이름하였다. 죽림리의 중터[中基]마을, 상터[上基]마을, 신광(新光)마을, 팔남(八南)마을은 이웃 신평리의 여느 마을들처럼 일제 강점기 고부천 변 낮은 지대를 개간하여 조성한 지역이다. 그중에 중터마을은 신평리 구야마을 남쪽에 자리한다. 본래는 고부군 거마면 지역으로, 1914년 들판 가운데의 약뜸과 뒷뜸, 그리고 원뜸의 중심이 됨으로 중터[중기]라 하고 죽림리에 편입되었다.

상터마을은 중터 윗마을이라 상터라고 이름하였다. 동남으로 정읍시 영원면과 경계 지역으로 이 마을 남쪽에 부안에서 고부 방향으로 고부천을 건너 다니는 ‘가다리[노교(蘆橋)]’가 있다.

팔남마을은 상터마을과 서남쪽으로 이웃한다. 부안의 낮은 지대 대부분은 일본 사람들이 농지를 착취하기 위에 개간하였는데, 그중 하나가 구마모토 농장[웅본 농장]으로, 구마모토 농장이 모집한 소작인 8인이 들어와 마을이 형성되었으므로 ‘팔호촌’이라 하다가 1956년 이웃에 있는 ‘남나리뜸’과 병합하여 팔남으로 개명하였다.

신광마을은 중터마을 서쪽에 있다. 들판 가운데 새로 생긴 마을로 영광이 있으라는 의미에서 신광이라 하였다는데, 옆 마을인 광덕(光德)마을과 같은 계열의 땅이름으로 여겨진다.

[형성 및 변천]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고부군 덕림면의 신야리, 신광리, 구공리, 대흥리, 하구리, 구야리의 각 일부와 부안군 하동면 석하리 일부, 부안군 소산면의 사정리, 공장리의 각 일부, 고부군 북부면 앵성리의 일부를 병합하고 부안군의 백산면 죽림리로 개설하였다.

[자연환경]

죽림리백산면 사무소에서 서남 방향으로 5㎞ 정도 떨어져 있으며, 백산면의 남서쪽에 자리하여 동쪽 경계를 따라 고부천이 흐른다.

[현황]

죽림리의 동쪽과 남쪽은 정읍시 영원면 장재리와 앵성리, 서쪽은 주산면 덕림리부안읍 내요리, 북쪽은 부안읍 외하리, 백산면 신평리와 접한다. 2020년 12월 31일 현재 면적은 4.35㎢이며, 중기리·상기리·팔남리·신광리·공작리의 5개 행정리에 121가구, 177명[남 88명/여 89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서해안 고속 도로가 서쪽으로 통과하며 신광로가 끝나는 곳이기도 하다. 동쪽 신죽로 변에는 상기마을과 중기마을이 있고, 신광로 변에는 신광마을이 있다. 서해안 고속 도로가 통과하는 주산동로 변에 자리한 공작마을은 천주교 신자들이 많이 산다. 신죽로와 신평로를 연결하는 가다리들길 중간에 팔남마을이 있다.

공작(孔雀)마을은 지리상으로는 주산면에 속해야 편리할 터임에도 행정 구역 개편 때 백산면 죽림리에 떼어 붙여 탁상행정의 예로 거론되기도 한다. 공작마을 어귀에 있는 죽림리 석장승[전라북도 민속자료 제20호]은 마을의 재앙을 막아 주는 조선 시대의 벽사장생인데 자연석 전면을 적당히 다듬은 할아버지 당산의 몸체에는 ‘상원금귀주장군(上元禁鬼周將軍)’, 할머니 당산에는 ‘하원금귀당장군(下元禁鬼唐將軍)’이라 새겨져 있다. 풍수지리설에 따르면 공작마을 지형이 명당혈로 되어 있어 누구든지 이 공작혈에 묘를 쓰면 왕이 되어 나라의 역적이 생기게 되므로 명당 터를 없애기 위해 공작새의 밥통에 해당하는 곳에 이 장승을 세웠다는 전설이 있다. 그러나 죽림리 석장승은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수호신인 당산 신을 돕는 신체로서 잡귀를 막아 주는 수문장 역할을 한다. 원래는 마을 입구에 서 있던 것인데 1995년 마을 앞 개울 둑으로 이전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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