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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000561
한자 扶安林氏
영어공식명칭 Buan Imssi|Buan Im Clan
이칭/별칭 보안 임씨,숲말 임씨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전라북도 부안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원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본관 부안 - 전라북도 부안군
세거|집성지 부안 임씨 집성지 - 전라북도 부안군 보안면 상림리지도보기
성씨 시조 임계미(林季味)

[정의]

임계미를 시조로 하고, 부안을 관향으로 하는 전라북도 부안군의 세거 성씨.

[개설]

고려 시대 부안의 토반(土班)을 흔히 호림장장(扈林張蔣)이라고 부른다. 지금의 호(扈), 장(張), 장(蔣)과 달리 매우 번창한 성씨이다. 부안 임씨(扶安林氏)는 원래는 보안 임씨(保安林氏)였으나 1416년(태종 16) 보안현(保安縣)부령현(扶寧縣)부안현(扶安縣)으로 통합되어 관향을 부안으로 하였다.

임씨는 크게 나주 임씨(羅州林氏)와 평택 임씨(平澤林氏)로 나누어진다. 나주 임씨는 고려 때 임비(林庇)를 시조로 하고, 평택 임씨는 임팔급(林八及)을 도시조로 한다. 임씨의 관향은 대부분 평택 임씨에서 분관되었음을 알 수 있다. 현재 임씨의 본은 30여 본으로 갈라져 있다. 1300년대 나주, 은진(恩津), 평택, 장흥(長興), 조양(兆陽), 선산(善山), 횡성(橫城), 울진(蔚珍), 예천(醴泉), 순창(淳昌), 부안의 관이 생겼고, 이후 전주(全州), 옥야(沃野), 보성(寶城), 임하(臨河), 경주(慶州), 밀양(密陽), 안의(安義), 임피(臨陂)의 관으로 분관되었다.

[연원]

부안 임씨는 보안면 숲말[상림리(上林里)]에서 집성촌을 이루고 살아 왔다. 그래서 흔히 ‘숲말 임씨’라고 부른다. 시조는 고려 때 평찰품사(評察品事)를 지낸 임몽주(林夢周)의 아들 임계미(林季味)이다. 임계미는 현종(顯宗) 때 대광숭록대부(大匡崇祿大夫) 평장사(平章事)를 지냈으며, 나라에 많은 공훈을 세워 녹훈과 함께 보안군(保安君)에 봉하여지며 보안 임씨의 시조가 되었다.

임계미의 7세손 서하(西河) 임춘(林椿)은 학문이 높았으며 이인로(李仁老), 오세재(吳世才), 이규보(李奎報) 등과 강좌 칠현(江左七賢)의 한 사람으로 불린다. 임춘은 시율풍류(詩律風流)로 살았으며, 저서로 『서하집(西河集)』 6권이 전하는데, 관향인 보안에 자주 머물러 『부안군지』 등에는 부안 사람으로 등재되어 있다.

예천 임씨(醴泉林氏)는 임춘을 자신들의 시조로 삼는다. 임춘의 큰아들 임충세(林忠世)의 후손이 예천을 관향으로 삼았고, 둘째 아들 임경세(林敬世)의 아들 임숙(林淑)과 임택(林澤) 대에서 파가 나뉘는데, 임숙의 셋째 아들 임대광(林大光)에서 밀직공파(密直公派), 넷째 아들 임난수(林蘭秀)에서 전서공파(典書公派), 임택에서 판사공파(判事公派)로 나뉘었다.

임택은 벼슬이 찬성사(贊成事)에 이르러 보안백(保安伯)에 봉하여졌다. 학문과 도덕이 높아 문성공(文成公) 안유(安裕), 역동(易東) 우탁(禹倬), 문효공(文孝公) 이곡(李穀) 등의 명현과 사귀고 말년에 보안의 숲말로 은퇴하여 살았으므로 숲말의 임씨는 모두 그의 자손들이다.

조상의 유언에 따라 조선조에서는 벼슬을 하지 않기로 하였다는 설이 있으며 그래서인지 벼슬에 오른 사람이 많지 않다. 임택의 5세손 임팽로(林彭老)가 사헌부 감찰(司憲府監察)을 지냈고 그 손자 임우춘(林遇春)이 장릉 참봉이었으며, 그 손자 임충남은 인조(仁祖) 때 무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부장이었는데 병자호란(丙子胡亂)이 일어나자 의병을 모아 남한산성으로 가던 도중 화의의 소식을 듣고 돌아와 은거하였다. 또 정유재란 때 호벌치 전투에서 임기(林機), 임대수(林大樹), 임추(林樞), 임세무(林世茂), 임대일(林大一), 임세장(林世章) 등이 순절하였다.

[입향 경위]

임계미는 고려 현종 때 대광숭록대부의 관직에 있었으나 조정에서 신변의 위협을 받자 배를 타고 풍랑에 표류하여 부안군 보안면 포구로 숨어들었다. 그 후 혐의가 풀리고 보안군에 봉해지며 보안을 본관으로 삼았다. 1416년 보안현부령현이 합해져 부안현이 되면서 부안 임씨라고 부른다.

[현황]

2015년 인구 주택 총조사에 따르면 부안군에는 부안 임씨 1,158명이 살고 있다. 보안면 상림리[숲말]에서 집성촌을 이루고 살다가 충청남도 연기군 남면[현 세종특별자치시 연기면 일대]으로 이주하여 집성촌을 이루었으나 세종특별자치시에 행정 도시가 건설되면서 전국으로 흩어지게 되었다.

[관련 유적]

임계미 신도비가 부안군 보안면 상림리에 있고, 연천재와 숭모사부안군 보안면 상림리 737번지에 있다. 세종특별자치시 연기면 일대와 충청남도 공주시 장기면 등에 부안 임씨 유적이 산재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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