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 말기 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가흥리에 있던 조창. 조선시대에는 전국에 9곳의 조창(漕倉: 세금으로 거둔 곡식을 보관하던 창고)을 두었는데, 가흥창은 그 중의 하나이다. 충주는 남한강이 흘러 수륙교통이 편리하여 일찍부터 도시가 발달하였고, 고려시대에는 남도 수군에 12창을 설치할 때 덕흥창이 설치되었던 곳이다. 덕흥창에는 판관을 두고 충주 부근의 조세를 수납하여 경창으로 수송...
-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안보리에 있는 조선 말기의 향장 강재정의 불망비. 강재정은 1901년(고종 38)에 연풍군 임시 우체주사에 임명되었다. 또한 1905년(고종 42) 경리원 문서에 의하면 “충북 연풍군거 강재정의 안보·신풍 양역 사음의 의례 수행 청원에 대해 잉구거행(仍舊擧行)하라는 지령”이 내려진 것으로 미루어 장토(庄土) 관리자로서 역할을 충실히 수...
-
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봉황리 능골마을에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김극형의 신도비. 김극형은 생전에는 창릉참봉(昌陵參奉), 동몽교관(童蒙敎官), 익위사부솔(翊衛司副率), 위솔(衛率), 공조정랑(工曹正郞), 화순현감(和順縣監) 등을 역임하였고, 학식이 높아 송시열과 성선체용설(性善體用說)을 변론하기 위해 편지로 의견을 수없이 교환하였다. 만년에 자기 주장이 잘못...
-
충청북도 충주시 동량면 조동리 조돈마을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김시희의 선정비. 자세한 건립경위는 알 수 없지만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의 기록에서 ‘인천부사 김시희’의 선치(善治)에 대한 내용과 영천군수 재직 때의 선치로 당상관이 되어 마땅하다는 내용이 있는 것으로 보아 충원현감 때의 선치로 인해 선정비가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본래의 위치는 알 수 없다. 동량초등...
-
조선 후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목계리의 옛 이름. 목계는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인위적으로 형성된 촌락이 아니고, 목계가 가지는 자연 지리적 이점에 의하여 조선 후기인 1750년 이전에 이미 내륙의 상항(商港)으로 강을 내려오는 어염선이 정박하며 세를 내는 곳이 되었다. 한강의 가항구간 중 중간에 위치하여 육지와 바다의 물산이 집산될 수 있는 지점이어...
-
충청북도 충주시 소태면 양촌리 송곡마을에 있는 조선 후기의 무신 민응건의 신도비. 민응건[1608~1671]의 본관은 여흥으로, 1632년(인조 10)에 호방(虎榜) 3등으로 급제하여 선전겸비랑내자(宣傳兼備郞內子)를 제수받았고, 백령첨사, 조방장, 청북방어사, 전라우수사, 경상좌병사 등을 역임하였으며, 지중추부사를 제수받았다. 충주에서 원주 방면으로...
-
조선 말기 충주목사를 역임한 문신. 1882년(고종 19) 임오군란(壬午軍亂) 때, 민비(閔妃)의 충주 피신을 호종했다. 별천(別薦)을 시작으로 남행별군(南行別軍), 선전관, 훈련원첨정(訓鍊院僉正), 철산부사를 거쳐 병조참의, 오위장(五衛將)을 지냈다. 이어 선천방어사, 전라우도수군절도사, 전라도병마절도사, 병조참판, 형조참판 등을 역임했다. 1892년(고종 29) 통제사와 영남광...
-
조선 전기 충청감사를 역임했던 문신. 본관은 이천(利川). 자는 대숙(大叔)·언부(彦夫), 호는 해화당(海華堂). 아버지는 밀직사를 지낸 서원(徐遠)이다. 목은 이색(李穡)의 증손으로 황해도관찰사를 지낸 이축(李蓄)을 사위로 맞이하였다. 아들 서달(徐達)은 황희(黃喜) 정승의 사위이다. 1367년(공민왕 16) 태어난 서선(徐選)은 운곡(耘谷) 원천석(元天錫)의 문하에서 수학하고...
-
충청북도 충주시 단월동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신석기의 영세불망비. 신석기의 활동에 대한 기록이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정조 연간에 잠깐 보이고 있어 정조 때 활동하였음을 알 수 있으나, 건립 경위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알려진 바가 없다. 다만 다년간 수리(首吏)로 민정을 자상하게 시찰하였다는 데서 공덕을 짐작할 수 있다. 충주시 단월동 건국대학교...
-
조선 후기 충청도관찰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청송(靑松). 자는 순가(舜歌). 아버지는 심응택(沈應澤)이다. 심상훈은 1874년(고종 11)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했다. 1882년(고종19) 임오군란(壬午軍亂) 때 장호원에 피신중인 명성황후에게 대원군의 납치 소식을 비롯한 왕궁의 근황과 청·일 양국의 출병 사실 등 밀계를 전달하는 역할을 했다. 1884년(고종21) 참...
-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안보리에 있는 근대 개항기 연풍군수 이민제를 기리는 비. 이민제에 대한 기록은 거의 없으나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와 내장원 「훈령조회존안(訓令照會存案)」에 의하면 우변포도대장종사관, 훈련원첨정, 경상우후, 연풍군수를 역임하였다고 한다. 내장원에서 도조세를 독촉하는 공문을 발송한 것으로 미루어 그동안 연풍군수로서 안부역 둔...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무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여생(汝生). 아버지는 진사 이상현이다. 1828년(순조 28) 충청도 충주시에서 태어난 이병숙(李秉淑)은 1855년(철종 6) 무과에 급제하여 1857년 선전관이 되었다. 1865(고종 2) 훈련원판관, 첨정, 호조좌랑을 거쳐 1866년 금위영파총을 지냈다. 1866년(고종 3) 9월 프랑스 군함이 침범하여 강화도...
-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안보리에 있는 근대 개항기 장계원의 영세불망비. 장계원은 대한제국 시기에 시종원 시종, 충청남도 사검위원(忠淸南道査檢委員)을 역임하였고, 1901년 11월 23일 충청북도 봉세관으로 임명되었다. 장계원은 1901년 흉년으로 인하여 농민들이 파종할 씨앗마저 없게 되자 관찰부를 통해 역둔토의 세조(稅租)를 균등히 나누어주어 농사...
-
조선 말기 충주목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온양(溫陽). 자는 대래(大來). 아버지는 정선교(鄭善敎)이다. 정태호는 1858년(철종 9)에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1860년에 부교리가 되었고, 1864년(고종 1)에 우부승지를 거쳐 이조참의·남양부사를 지냈다. 1869년 사간원대사간, 1871년 성균관대사성, 1872년 사간원대사간을 역임하였으며, 1874년 경기도관...
-
조선 후기 충주목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양주(楊州). 자는 유원(孺元), 아버지는 임파현령 조이순(趙頤淳)이며, 어머니는 이조판서 김상휴(金相休)의 딸 광주김씨(廣州金氏)이다. 조병로는 1849년(철종 1) 음관(蔭官)으로 출사하여 동몽교관(童蒙敎官)을 시작으로 1858년 보성군수가 되고 1862년 합천군수를 거쳐 공주판관·밀양부사를 역임하였다. 1865년(고종 2)...
-
1680년(숙종 6) 충주 지역에서 사노 준익이 자기 아버지를 살해한 사건. 준익이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죄는 인간의 기본적인 도덕을 저버린 강상죄에 해당하였으므로 삼성추국(三省推鞫)한 뒤에 자백을 받고, 그날 당고개에서 사형에 처하였다. 조선시대에는 천륜을 어긴 강상죄를 엄히 다스려, 죄인의 출생지도 불이익을 받았다. 준익 사건으로 인해 당시 충주목은 충원현으로 강등되...
-
1895년 6월 지방제도 개편에 따라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 설치된 행정구역. 1895년 4월 내부대신 박영효의 주도 아래 추진된 제2차 갑오개혁의 일환으로, 종래의 의정부 관제 대신 일본식 내각제를, 비대한 궁내부 관제도 대폭 간소화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중앙관제 개편이 이루어졌다. 중앙관제 개편에 이어, 6월에는 행정의 효율성을 도모하기 위하여 종래의 8도제 대신 소지역주의를 채...
-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안보리에 있는 근대 개항기 봉세관 홍재익의 송덕비. 홍재익의 관적에 대한 상세한 기록이 없다. 다만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와 『훈령조회존안(訓令照會存案)』 등의 기록을 통하여 추정해 보면, 1899년(고종 36) 12월 23일 내장원소관충청북도각양둔토사검위원겸독쇄관(內藏院所管忠淸北道各糧屯土査檢委員兼督刷官)으로 임명된 이후 충주군 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