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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봉첩』에 실린 「도봉도」를 그린 조선 후기의 도화서 화원. 김석신(金碩臣)[1758~?]의 본관은 개성(開城). 자는 군익(君翼), 호는 초원(蕉園). 아버지는 도화서 화원인 김응리(金應履)이며, 큰아버지 김응환(金應煥)[1742~1789]에게 입양되었다. 형은 긍재(兢齋) 김득신(金得臣)이다. 김석신은 진경 산수화가(眞景山水畵家)인 정선(鄭敾)의 영향을 받아 서울 근교의 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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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도봉 서원에 출입하였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구지(久之), 호는 문곡(文谷). 할아버지는 서인 산림계가 이념적 지주로 받들던 김상헌(金尙憲)이고, 아버지는 동지중추부사 김광찬(金光燦)이다. 어머니는 목사 김래(金琜)의 딸이자 인목 대비의 아버지인 김제남(金悌男)의 손녀이다. 형은 김수증(金壽增)과 김수흥(金壽興)이고, 아들은 김창집(金昌集)과 김창협(金昌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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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도봉 서원에 출입하였던 학자이자 문신. 서인의 이념적 지주로 평가되는 김장생(金長生)[1548~1631]은 높은 학문 수준 및 교우와 문인들의 활동에 직접·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침으로써 인조반정 이후의 정계를 주도하였다. 도봉 서원을 출입하며 이이(李珥), 송익필(宋翼弼)로 이어지는 서인의 학문을 계승하였다. 도봉 서원에 배향되어 있는 송시열(宋時烈)이 제자이다. 본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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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봉 서원의 중건에 힘쓴 한학자. 본관은 함열(咸悅). 아버지는 양주군 해등 촌장(海等村長)을 지낸 남궁희(南宮熺)이며, 어머니는 의령 남씨(宜寧南氏)이다. 부인은 반남 박씨(潘南朴氏)로 슬하에 남궁전과 남궁수, 남궁련(南宮鍊)을 두었다. 도봉 서원은 1573년(선조 6) 조광조(趙光祖)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창건하였으며, 1696년(숙종 22) 송시열(宋時烈)을 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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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에 있는 도봉 서원 중건에 힘쓴 한학자 남궁복을 기념하기 위한 비석. 1970년 양주 향교 전교를 지낸 남궁복(南宮墣)[1887~1975]의 발의로 도봉 서원이 복설되어, 그 공을 기념하기 위해 남궁복 기념비를 세웠다. 남궁복의 아들인 남궁련이 당시 해운 공사 사장·극동 해운 사장·조선 공사 회장을 지내면서 도봉 서원 복원에 거액을 희사하였기 때문에 남궁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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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도봉서원 유생의 인적 사항을 기록한 명부인 청금록에서 윤증(尹拯)의 이름을 지운 사건. 청금록(靑衿錄)은 국가가 설치한 유교 교육 기관인 성균관과 사학(四學), 향교, 사설(私設) 기관인 서원 등에서 활동하는 유생들을 관리하기 위한 명부이다. 도봉서원 유생들의 인적 사항을 기록한 청금록은 도봉서원에 비치되어 있었다. 청금록에는 유학(幼學)·생원·진사의 인적 사항뿐만 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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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도봉 서원에 배향된 문신이자 학자. 본관은 충주(忠州). 자는 화숙(和叔), 호는 사암(思庵)·청하자(靑霞子). 증조할아버지는 은산 군사(殷山郡事) 박소(朴蘇)이고, 할아버지는 성균관 사 박지흥(朴智興)이다. 아버지는 기묘명현(己卯名賢)의 한 사람인 목사(牧使) 박상(朴祥)의 동생 박우(朴祐)이고, 어머니는 당악 김씨(棠岳金氏)이다. 박순(朴淳)[1523~1589]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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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서울특별시 도봉구 지역인 경기도 양주시 해등촌면에 있던 정자. 조선 후기의 문신인 어진익(魚震翼)[1625~1684]의 옛집이 해등촌면에 있었는데, 어진익의 아버지 어한명(魚漢明)이 양주(楊州) 해등촌면에 별장을 짓고 손수 향나무와 잣나무 각각 두 그루씩을 심어 놓았다. 그 나무가 자라서 모두 아름드리나무가 되었다. 어진익의 형제는 모두 4명이었는데, 1677년(숙종 3)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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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도봉 서원을 출입하였던 문신.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성사(聖思), 호는 과재(果齋). 성혼(成渾)의 8세손으로, 아버지는 부여 현감과 금구 현령을 지낸 성정주(成鼎柱)이다. 성근묵(成近默)[1784~1852]은 1809년(순조 9) 사마시에 합격하였고, 양근 군수를 지냈다. 1838년(헌종 4) 이조에서 재학(才學)이 가장 드러난 사람 중 하나로 추천하여 경연관(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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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도봉 서원에 출입하였던 문신.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호원(浩原), 호는 우계(牛溪)·묵암(默庵). 증조할아버지는 현령 성충달(成忠達)이며, 할아버지는 지중추부사 성세순(成世純)이다. 아버지는 조광조(趙光祖)의 제자이자 예산 현감을 지낸 성수침(成守琛)이며, 어머니는 판관 윤사원(尹士元)의 딸인 파평 윤씨(坡平尹氏)이다. 부인은 신여량(申汝樑)의 딸인 고령 신씨(高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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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도봉 서원에 출입하였던 학자이자 문인. 본관은 여산(礪山). 자는 운장(雲長), 호는 구봉(龜峯)·현승(玄繩). 할아버지는 직장 송인(宋璘)이고, 아버지는 판관 송사련(宋祀連)이다. 어머니는 연일 정씨(延日鄭氏)이다. 할머니가 천첩 소생이라 신분이 미천하였으나 아버지 송사련이 공신에 책봉되고 당상관에 올라 유복한 환경에서 교육을 받았다. 송익필(宋翼弼)[1534~15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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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 1동에 있는 조선 후기 신정왕후의 별장 터.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 1동 401번지에 있는 광륜사(光輪寺)라는 절은 원래 신정왕후[1808~1890], 곧 조대비(趙大妃)의 별장 터이다. 신정왕후는 순조(純祖)의 며느리이자 효명세자의 부인으로 헌종(憲宗)을 낳았다. 1857년(철종 8) 순조(純祖)의 비인 순원 왕후(純元王后)가 죽자, 신정왕후가 대왕대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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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 안골에서 광산김씨가 대대로 거주하는 지역. 광산은 전라남도 북서부 지역으로 본래 백제의 무진주였으며, 신라 경덕왕 때 무주로 고쳤다. 광산김씨(光山金氏)는 신라 신무왕(神武王)의 셋째 아들 김흥광(金興光)을 시조로 한다. 도봉구 안골의 광산김씨들은 수사공파(水使公派)로, 18세기 안골에 조상의 묘를 쓴 이래 19세기에 호수가 크게 늘어 세거지를 형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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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 안골에서 전주이씨가 대대로 거주하는 지역. 전주이씨(全州 李氏) 시조는 신라 때 사공(司功)을 지낸 이한(李翰)이다. 조선 왕조를 개창한 태조 이성계(李成桂)는 이한의 21세손이다. 전주이씨는 이성계 이후 수많은 분파가 이어져 내려오는데, 그 가운데 도봉 서원 마을에 전주이씨 영산 부정공파(榮山副正公派)의 세거지가 있다. 영산 부정공파는 효령 대군의 증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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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 1동 도봉 서원의 자리에 있었던 사찰. 현재 도봉 서원이 있는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 1동은 이전에 양주(楊洲)에 속하였던 도봉산 영국동(寧國洞)이었다. 이곳에는 원래 영국사(寧國寺)라는 절이 있었는데, 그 절이 허물어진 터에 도봉 서원을 지었다고 전한다. 도봉 서원이 지어지기 이전에 존재하였던 영국사가 언제 건립되었으며, 언제 무슨 이유로 허물어졌는가에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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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서울특별시 도봉구[구 경기도 양주군 해등촌면]에 있던 저수지. 왕륜지(王倫池)는 경기도 양주군(楊洲郡) 해등촌면(海等村面)[현 서울특별시 도봉구]에 있던 저수지 이름이다. 18세기 중반에 편찬된 관찬 읍지(邑誌)인 『여지도서(輿地圖書)』에 따르면, 왕륜지는 해등촌면에서 남쪽으로 12㎞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었으며, 둘레가 201.5m, 길이가 47m, 너비가 39.3m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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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도봉 서원 창건에 기여한 문인. 본관은 강화. 자는 응길(應吉), 호는 촌은(村隱). 할아버지는 유도치(劉道致)이고, 아버지는 유업동(劉業仝)이다. 유희경(劉希慶)[1545~1636]은 천인 출신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유몽인(柳夢寅)[1559~1623]이 지은 「유희경전(柳希慶傳)」에 따르면 그를 정확히 노비라고 지칭하지는 않지만 ‘미천(微賤)’한 신분이라는 단어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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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도봉 서원 원장을 지낸 문신.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미숙(美叔), 호는 농계(聾溪)·취몽헌(醉夢軒). 이색(李穡)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관찰사를 역임한 이동직(李東稷)이다. 이수언(李秀彦)[1636~1697]은 1660년(현종 1) 사마시에 합격한 이후, 1669년(현종 10) 정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 예문관의 벼슬을 거쳐 정언·지평을 역임하고 1681년(숙종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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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에 묘가 있는 조선 후기 문신.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치호(稚浩), 호는 첨재(瞻齋). 증조할아버지는 이광하(李光夏)이고, 할아버지는 이집(李㙫)이다. 아버지는 병조 판서 이주진(李周鎭)이며, 어머니는 민진원(閔鎭遠)의 딸이다. 이은(李溵)[1722~1781]은 1740년(영조 16)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며, 음보로 남평 현감을 지냈다. 1759년(영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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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도봉 서원기(道峰書院記)」를 지은 문신이자 학자. 본관은 덕수(德水). 아명은 현룡(見龍), 자는 숙헌(叔獻), 호는 율곡(栗谷)·석담(石潭)·우재(愚齋). 아버지는 좌찬성에 추증된 이원수(李元秀)이며, 어머니는 신명화(申命和)의 딸인 평산 신씨(平山申氏)로 신사임당(申師任堂)으로 잘 알려져 있다. 부인은 성주 목사 노경린(盧慶麟)의 딸이다. 이이(李珥)[153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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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도봉 서원 각석군에 글씨를 남긴 문신. 본관은 우봉(牛峯). 자는 희경(熙卿), 호는 도암(陶庵)·한천(寒泉). 할아버지는 우의정을 지낸 이숙(李䎘)이고, 아버지는 진사 이만창(李晩昌)이며, 어머니는 민유중(閔維重)의 딸인 여흥 민씨(驪興閔氏)이다. 송준길(宋浚吉)의 외손이다. 이재(李縡)[1680~1746]는 23세가 되던 1702년(숙종 28) 알성 문과에 병과로 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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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도봉 서원에서 수학하고 도봉산을 유람한 문신.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성징(聖徵), 호는 월사(月沙)·보만당(保晩堂)·치암(癡庵)·추애(秋崖)·습정(習靜). 아버지는 현령을 지낸 이계(李啓)이고, 어머니는 현감을 지낸 김표(金彪)의 딸인 광주 김씨(光州金氏)이다. 이정구(李廷龜)[1564~1635]는 19세가 되던 1582년(선조 15) 정엽(鄭曄)과 함께 도봉 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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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도봉구 지역을 포함한 양주 일대를 관할하는 양주 목사로 재임하며 도봉 서원을 중수한 문신. 본관은 경주. 자는 중훈(仲薰), 호는 사류재(四留齋)·퇴우당(退憂堂)·월당(月塘). 할아버지는 진사 이달존(李達尊)이고, 아버지는 사직 서령(社稷署令) 이탕(李宕)이며, 어머니는 김응진(金應辰)의 딸인 의성 김씨(義城金氏)이다. 이조참판 정형(廷馨)이 동생이다. 이정암(李廷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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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도봉구 지역을 포함한 양주 일대를 관할하는 양주 목사로 재임하며 도봉 서원 설립에 공헌한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경은(景誾), 호는 서간(西澗). 효령 대군(孝寧大君) 이보(李𥙷)의 현손으로, 증조할아버지는 의성군(宜城君) 이채(李寀)이고, 할아버지는 영신수(永新守) 이이(李怡)이다. 아버지는 절충장군(折衝將軍) 증 함원군(咸原君) 이옹(李顒)이며, 어머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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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에 묘가 있는 조선 후기 문신.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문보(文甫), 호는 탄옹(炭翁). 증조할아버지는 이갑(李搕)이고, 할아버지는 이광하(李光夏)이다. 아버지는 좌의정을 지낸 이집(李㙫)이며, 어머니는 군수 김수빈(金壽賓)의 딸이다. 이주진(李周鎭)[1692~1749]은 1714년(숙종 40) 생원시에 합격하였으며, 1725년(영조 1) 증광 문과에 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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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에 묘가 있는 조선 후기 문신.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노천(老泉), 호는 취촌(醉村). 증조할아버지는 이안눌(李安訥)이고, 할아버지는 이합(李柙)이다. 아버지는 한성부 판윤 이광하(李光夏)이며, 어머니는 영의정을 지낸 심지원(沈之源)의 딸이다. 이집(李 土+集)[1664~1733]은 21세 되던 1684년(숙종 10) 생원진사시에 합격하였다. 이후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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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에 묘가 있는 조선 전기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군정(君貞), 호는 졸암(拙庵)·낙빈(洛濱). 세종의 넷째 아들인 임영 대군(臨瀛大君)의 후손인데, 임영 대군파는 이충작의 증조할아버지인 오산군(烏山君) 이주(李澍)에서 분파(分派)하였다. 할아버지는 이진(李珍)이고, 아버지는 당은군(唐恩君)에 추증된 이휘(李徽)이다. 어머니는 현령을 지낸 오황(吳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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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에 묘가 있는 조선 후기 문신.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윤적(允迪), 호는 대산(臺山). 증조할아버지는 이원근(李元謹)이고, 할아버지는 이통(李通)이다. 아버지는 예조판서를 지낸 이경헌(李景憲)이며, 어머니는 충의위(忠義衛) 윤빙(尹聘)의 딸인 파평 윤씨(坡平尹氏)이다. 이합(李柙)[1624~1680]은 이른 나이에 아버지의 명(命)으로 행예조판서 문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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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부터 1598년까지 일본이 조선을 침략하여 서울특별시 도봉구를 포함한 조선 전역에서 일어난 전쟁. 16세기 동아시아는 명나라의 쇠퇴, 여진족의 발흥, 일본의 통일 정권 수립 등 제반 정세 변화 속에서 크게 동요하였다. 조선은 이 과정에서 야기된 임진왜란으로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일본은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에 의해 통일 정권이 수립되었으나, 아직 각 세력 간의 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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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을 시조로 하고 서울특별시 도봉구에 세거하는 성씨. 전주이씨(全州李氏)는 태조 이성계(李成桂) 이후 수많은 분파가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데, 그 가운데 도봉 서원 마을에 전주이씨 영산 부정공파(榮山副正公派)의 세거지가 있으며, 도봉구 도봉동에 전주이씨 영해군파(寧海君波) 묘역, 방학동에 회산군(檜山君) 묘역과 임영 대군파(臨瀛大君波) 오산군(烏山君) 묘가 있다. 전주이씨의 시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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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도봉 서원도」를 그리고, 도봉 지역에 안장된 화가. 정선(鄭敾)[1676~1759]의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원백(元伯), 호는 겸재(謙齋), 겸초(兼艸), 난곡(蘭谷)이다. 조선 후기에 조선의 실경을 그렸던 화가로, 도봉 서원의 실제 모습을 그린 「도봉 서원도」가 있다. 정선은 생전에 미리 경치 좋은 곳으로 정해 두었던 양주(楊洲) 해등촌면(海等村面) 계성리(鷄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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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도봉 서원에 배향된 문신. 본관은 한양(漢陽). 자는 효직(孝直), 호는 정암(靜庵). 조선 개국 공신인 조온(趙溫)의 5세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조육(趙育)이며, 할아버지는 조충손(趙衷孫)이다. 아버지는 감찰을 지낸 조원강(趙元綱)이고, 어머니는 민의(閔誼)의 딸인 여흥 민씨(驪興閔氏)이다. 조광조(趙光祖)[1482~1519]는 17세에 김굉필(金宏弼)의 문하에 들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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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에 묘가 있는 조선 후기 학자. 본관은 풍양(豊壤). 자는 백정(伯靜), 호는 백분당(白賁堂). 할아버지는 조민(趙珉)이고, 아버지는 진사 조상정(趙相鼎)이다. 슬하에 4남을 두었는데 조경명(趙景命)·조영명(趙永命)·조문명(趙文命)·조현명(趙顯命)이다. 셋째 아들인 조문명과 넷째 아들인 조현명은 영조 대 좌의정과 영의정을 역임하였다. 조인수(趙仁壽)[?~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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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해등촌면에 거주하였던 문신. 조현명(趙顯命)[1690~1752]은 영조의 탕평책을 따른 대표적인 소론 완론(緩論) 계열의 문신으로 해등촌면[현 서울특별시 도봉구 지역]에 거주하였다. 본관은 풍양(豊壤). 자는 치회(稚晦), 호는 귀록(歸鹿)·녹옹(鹿翁). 할아버지는 조상정(趙相鼎)이고, 아버지는 조인수(趙仁壽)이며, 어머니는 김만균(金萬均)의 딸이다. 조현명은 171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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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에 묘가 있는 조선 후기 문신. 본관은 풍양(豊壤). 자는 백익(伯益). 고조할아버지는 사헌부 장령에 추증된 조익상(趙益祥)이고, 증조할아버지는 정국공신(靖國功臣)에 책훈(策勳)되고 자헌대부(資憲大夫) 풍양군(豐壤君)에 추증된 조세훈(趙世勛)이다. 아버지는 사헌부 감찰을 지내고 좌승지에 추증된 조기(趙磯)이며, 어머니는 효령 대군(孝寧大君)의 6세손인 현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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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5년 경기도 양주목 해등촌면[지금의 서울특별시 도봉구]에서 이규(李珪)가 제기한 산송(山訟). 산송이란 조선 시대 묘지와 관련된 소송이다. 1805년 양주군 산송은 충청남도 공주에 사는 유학(幼學) 이규가 미아리와 해등촌면에 소재한 선조(先祖)의 묘역에 투장한 다른 묘들을 옮길 것을 요구하면서 국왕에게 상언(上言)을 올린 사건이다. 명당에 조상의 무덤을 쓰면 후손이 복을 받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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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도봉구 창동과 노원구 월계동에 걸쳐 있는 나지막한 야산인 초안산에는 319,503㎡의 적지 않은 면적에 조선 시대 환관 묘역을 비롯하여 양반, 중인(中人), 궁녀(宮女), 서민 등 다양한 계층의 묘 1,000여 기가 남아 있으며, 무덤을 지키는 여러 석물이 흩어져 있다. 초안산에 조선 시대 묘가 밀집해 있는 이유가 뭘까? 도봉산 자락에 자리 잡은 서울특별시 도봉구는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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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에 묘가 있는 조선 전기 무신.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자절(子節). 증조할아버지는 병조판서에 추증된 한영(韓寧)이고, 할아버지는 의정부사에 추증된 한영정(韓永矴)이다. 아버지는 좌의정을 역임한 한확(韓確)이며, 어머니는 이조판서를 지낸 홍여방(洪汝方)의 딸이다. 아버지 한확은 세조의 즉위를 도운 공신이었으며, 누이는 세조의 아들인 덕종(德宗)과 혼인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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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에 있는 조선 전기의 무신 한치례의 신도비. 한치례(韓致禮)[1441~1499]는 좌의정 한확(韓確)의 셋째 아들로, 어머니는 이조 판서를 지낸 홍여방(洪汝方)의 딸이다. 아버지는 세조(世祖)의 즉위를 도운 공신이었으며, 누이는 세조의 아들인 덕종(德宗)과 혼인하여 훗날 인수 대비(仁粹大妃)가 되었다. 큰 고모는 명나라 성조(成祖)의 후궁으로 뽑혀 여비(麗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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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 서원 마을에서 함열남궁씨가 대대로 거주하는 지역. 함열남궁씨(咸悅南宮氏)는 삼각산에서 흘러 내려온 무수천을 따라 세거지가 형성되었는데, 그 일대에 종친회 사무실과 재실인 ‘무수재실(无愁齋室)’을 가지고 있는 유래가 깊은 성씨이다. 함열은 전라북도 익산시에 속해 있는 지명이다. 함열남궁씨의 시조 남궁원청(南宮元淸)은 고려 시대 함열에 살았던 사람이다. 비서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