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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에서 가야금으로 연주하는 기악 독주 음악. 가야금 산조는 장구 또는 북으로 반주한다. 1968년에 가야금 병창과 함께 중요 무형 문화재 제23호로 지정되었다. 가야금 산조는 장단에 의해 몇 개의 악장으로 구성한다. 진양조, 중모리, 중중모리, 자진모리를 기본으로 유파(流派)에 따라 엇모리, 굿거리, 휘모리, 단모리, 세산조시 등을 넣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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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화순 출신의 국악인. 구대진(具大振)[?~?]은 능성 구씨의 후예로서 단가·잡가·한시·시조·산무 등에 능하여 능주와 나주의 풍류계에서 명망이 높았다. 특히 명기·명창들의 존경을 받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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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에서 소리를 소재로 인간의 사상과 감정을 나타내는 고유의 전통 음악. 국악은 우리의 전통 음악을 일컫는다. 전라남도 화순군에서는 양반들이 즐기던 시조(時調), 가곡(歌曲), 가사(歌詞) 등의 풍류 음악과 민간 예술인 판소리, 산조(散調), 그리고 민중의 음악이었던 민요(民謠)와 농악(農樂) 등 여러 장르의 음악이 전승되고 있다. 화순군에는 일찍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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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화순 출신의 국악인. 김규열(金圭烈)[1910~?]은 일찍이 국악에 많은 관심을 갖고 연구했으며 시조를 전공했다. 전국 시조 명창 대회 심사 위원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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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출신의 대금 명인. 김동표(金東表)[1941~ ]는 셋째 형인 김동진의 영향으로 17살에 대금을 시작하였다. 1959년에는 고창의 대금 명인이었던 편재준에게 대금 산조와 풍류를 사사했다. 우리 국악단과 임춘앵 여성 국극단 등의 단체 활동을 하면서 한주환과 김동진에게 대금 반주법을 익혔다. 우리 국악단에서는 조한중에게도 대금 반주법을 배웠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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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화순 출신의 국악인. 김학섭(金鶴燮)[?~?]의 호는 여송(與松)으로 박식한 선비로 존경받았다. 일본 유학시절에는 항일운동을 한 애국 지사이기도 한 김학섭은 고수로 이름을 날렸으며 판소리에 조예가 깊었다. 「춘향가」 중 범피중류가 특징이었다고 한다. 가곡과 가사에도 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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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화순 출신의 가야금의 명인. 박경식(朴京植)[?~?]은 박경석(朴景錫)으로도 알려졌다. 가야금 산조 및 풍류의 명인인 한수동(韓壽童)에게 가야금을 사사했다. 1930년대 화순의 토반(土班)으로 거부였던 오판기(吳判基)가 집안에 풍류방을 꾸며놓고 많은 악사를 불러들여 즐겼는데, 이를 오판기 풍류방이라 한다. 이방의 풍류객으로 박경식(朴京植), 정남옥(鄭南玉), 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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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화순 출신의 국악인이자 무용인. 박영구(朴永求)[?~?]는 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훈리 출신이다. 남도 검무의 일인자로 알려졌으며 호남 국악계의 대표적 인물 중의 한 사람이다. 검무 이외에도 승무 등 무용에 능했으며 대금·양금·가야금 등의 악기에도 조예가 깊었다. 광주 남정 권번에서 후진을 양성하였는데 예절 교육과 철저한 법도를 세워 큰스승으로 존경받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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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화순 출신의 가야금 산조 명인. 박춘섭(朴春燮)[1922~1955]은 화순군 화순읍 만연리에서 태어났다. 1934년 13세 때 안기옥(安基玉)에게 가야금 산조를 3년 동안 사사하였다. 16세 때부터 놀음청에 드나들며 명인으로 이름이 알려졌다. 정기석에게서 한숙구제 산조를 2년간 학습한 뒤 20세 때부터 순천 권번의 가야금 선생으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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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화순 출신의 국악인. 양농주(梁弄珠)[1875~?]는 말과 행동이 무거웠고 맵시가 뛰어나 재색을 겸비한 명기로 이름을 날렸다. 가무에 능했으며 가곡과 가사에 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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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화순 출신의 기녀. 양학(梁鶴)[1875~?]은 제주 양씨로서 인품이 단아하고 학문 또한 깊었다고 한다. 시조·가곡·가사에 능통했으며 한시와 사군자에도 능하여 이름이 높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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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에서 활동한 거문고 명인. 오똘남(吳突男)[1920~1950]은 거문고 명인이다. 오진석의 조카이며 양자이고, 명창 조몽실의 조카이다. 거문고로 새소리 등 모든 소리를 만들어낼 정도의 명인으로 백결 선생의 후신이라고 일컬어졌다. 6·25 전쟁 당시 공비들이 그를 사살하려 하자 마을 사람들이 “이승만 대통령의 표창을 받은 거문고의 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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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출신의 국악인. 오재민(吳在珉)[1918~?]은 명문 가문인 동복 오씨 후예로 박학다식하며 전통 예술에 남다른 관심과 조예가 깊었다. 일찍이 전국 궁도 대회에서 개인 부분 장원을 차지할 정도로 궁도도 잘하였다. 사실 여부는 확인하기 어려우나 전주 대사습 고수 대회에서 장원을 차지했다는 이야기가 사람들 사이에 전해질 정도로 명고수이다. 판소리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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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화순 출신의 대금 명인. 오진석(吳鎭錫)[?~?]은 재인 집안 출신으로 거문고 명인인 오똘남의 양아버지이며 대금 명인 한주환의 이모부이기도 하다. 항상 묵묵히 말이 없으며 품행이 방정해서 많은 한량들로부터 존경을 받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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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에서 소리를 소재로 인간의 사상과 감정을 나타내는 예술. 우리나라의 음악은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국악(國樂)과 근대에 서양에서 들어온 양악(洋樂)으로 크게 구분할 수 있다. 요즘 통상적으로 ‘음악’이라고 일컫는 것은 양악이다. 일제 강점기 이후에는 학교 교육을 통해 본격적으로 양악이 들어오면서 우리나라 음악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화순군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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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출신의 풍류객. 본관은 평택(平澤). 호는 호석(湖石). 임석윤(林錫潤)[1907~1976]은 명망이 있는 가문인 평택 임씨 가문에서 태어나 일찍부터 풍류를 즐긴 풍류객이다. 거문고와 가곡·가사를 전공하여 거문고 명인으로 명성이 높았다. 김용남과 김연수에게 거문고 풍류와 가곡을 배웠으며, 말년에는 서울에 살면서 가곡의 명인 이주환(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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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출신의 가야금 산조 명인. 정남옥(鄭南玉)[1902~?]은 가야금 산조의 명인인 한숙구(韓淑求)[1865~?]로부터 가야금 산조를 전수받아 명인이 되었다. 1930년대 화순의 토반(土班)으로 거부였던 오판기(吳判基)가 풍류를 즐기어 집안에 풍류방을 꾸며 놓고 많은 악사를 불러들여 풍류를 즐겼는데, 이를 오판기 풍류방이라 한다. 정남옥은 가야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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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화순 출신의 가야금 명인. 정백옥(鄭白玉)[?~?]은 피리와 가야금에 능했으며 가야금을 직접 제작하여 썼다. 중요 무형 문화재 제23호 가야금 산조 및 병창의 예능 보유자인 정달영이 동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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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화순 출신의 대금 및 피리의 명인. 조병문(曺秉文)[1880~?]은 일제 강점기 초기까지 지속되었던 능주 신청(神廳)에서 활동하기도 했으며, 대금과 피리에 능해서 남도 각처 풍류방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특히 대금은 당대의 독보적인 존재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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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화순 출신의 국악인이자 무용인. 조병현(曺炳鉉)[1885~?]은 시조·가곡·가사에 능한 국악인이었다. 또한 덧배기춤으로 호남의 명무(名舞)로 알려졌다. 명고수로도 유명해서 명창 임방울을 비롯한 여러 남도 소리꾼들이 찾아와 소리를 닦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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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화순 출신의 국악인. 조상엽(曺相燁)[?~?]은 능주 신청(神廳)의 우두머리인 대방(大房)을 역임했다. 당대 최고의 고수였으며 승무로도 명성이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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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능주 잠정리 출신의 국악인. 조송문(曺松文)은 세피리에 능해서 많은 선비와 한량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특히 가곡, 가시, 시조의 전주(前奏)를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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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화순 출신의 풍류객. 주기준(朱基俊)[1904~?]은 신안 주씨로 명문가 출신의 문사이다. 일찍부터 풍류를 즐겨 시조와 한시에 능해 선망을 받았다. 이외에도 북과 산무(散舞)에 능했으며 사군자와 궁도에도 비범한 솜씨를 보였다. 면장을 역임하면서 덕망이 높아 공적비가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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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화순군 출신의 국악인. 주봉현(朱鳳鉉)[1875~?]은 성품이 강직하고 기골이 장대하여 위엄이 관운장을 연상케 했다고 한다. 그러나 외모와는 달리 판소리에 대단한 예술적 안목이 있어 소리꾼들은 그의 예리한 지적과 추상같은 질정에 모두 넋을 잃었다고 한다. 호남 최고의 명고수로 이름이 높았으며 소리꾼들 사이에서 “능주 주봉현 선생 북에 때를 벗겨야 올바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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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화순 출신의 국악인. 주응조(朱應祚)[1875~?]는 화순군 능주 출신의 국악인이다. 인품이 준수했고 당대의 명고수로 이름을 날렸다. 화순의 명고수인 주봉현과 사촌간이다. 산무(散舞)에 능한 무용인이기도 했다. 시조, 가곡, 가사에 능해 한량들 세계에서 선망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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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에서 전승되는 서사적인 1인극 음악. 판소리는 한 명의 소리꾼이 북 장단에 맞추어 장편의 이야기를 소리, 아니리, 발림을 통해 노래하는 음악이다. 판소리는 조선 후기에 성립된 것으로 여겨지는데, 18세기 유진한(柳振漢)의 『만화본 춘향가(晩華本 春香歌)』에 춘향가 사설이 적힌 것으로 보아 이 시기에는 현재와 같은 형식의 판소리가 형성된 것으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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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화순에서 활동한 가야금 산조 및 풍류의 명인. 한수동(韓壽童)[1895~1940]은 전라남도 해남군 출신으로 화순군 동복에 살면서 활동한 가야금 산조 및 풍류의 명인이다. 아버지는 대금·시나위·가야금의 명인이던 한숙구(韓淑求)[1849~1934)이다. 아버지에게 가야금·풍류 및 산조와 대금을 배워 어려서부터 신동으로 이름이 났고 역대 가야금 산조 명인 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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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화순 출신의 가야금 명인. 한숙구(韓叔求)[1865~?]는 가야금의 명인이었던 한수동(韓壽同)[1895~1940)의 아버지로, 한선달(韓先達)이라고도 불렸다. 전라남도 해남 출신으로, 신방초(申芳草), 이장선(李壯善) 등에게 해남 등지에서 풍류를 사사하여 일가를 이루었으며, 대금과 피리도 잘하였다. 지금의 화순군 남면에서 주로 활동을 했고 제자를 양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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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화순 출신의 대금 산조 명인. 한주환(韓周煥)[1904~1966]은 전라남도 화순군 동복면 한천리 출신이다. 어려서부터 아버지에게 소리와 태평소·장구 등을 배웠다. 이어서 가야금 산조 및 풍류의 명인인 한수동(韓壽同)에게 풍류 음악을 배웠으며, 단소 산조 및 풍류의 명인 전용선(全用先)에게서는 대금으로 삼현(三絃)을 배웠다. 30대 후반에 광주에서 대금 산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