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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전리 하동 정씨 집성촌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600855
한자 金田里河東鄭氏集姓村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전라남도 화순군 한천면 금전리 금전 마을
집필자 최성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500년 - 하동 정씨 정원신 금전리 입향
성격 집성촌

[정의]

전라남도 화순군 한천면 금전리에 있는 하동 정씨 집성촌.

[명칭 유래]

금전리금오산 아래에 좋은 밭이 있다 하여 금전이라 했다고 전한다. 금전리는 본래 짐쟁이, 김쟁이라 부른 것을 한자로 ‘금전(金田)’이라 표기한 것이다.

[형성 및 변천]

정원신(鄭元信)[1466~1535]을 입향조로 하여 이어오는 화순군 한천면 금전리하동 정씨 집성촌이다. 정원신의 후손인 정학현(鄭鶴鉉)[1808~1878]의 자는 도민(道敏)이며 정지말의 후손이다. 천성이 지극히 효성스러워 부모님의 병이 여러 달 계속되자 500리 밖의 의원을 만나러 갔는데 의원이 “그대는 효자 아무개가 아니냐? 네가 올 것을 알고 있었다” 하고 꿈에서 얻은 약을 주었다. 이를 사용하여 병이 나았고 후에 목숨이 위태롭게 되자 손가락을 잘라 피를 내어드려 며칠을 더 연명하였다. 시묘살이를 살았는데 예를 극진히 다하니 세상 사람들이 그 마을을 효동(孝洞)이라 칭하였다. 효자로 이름나 효자 정려문이 금전 마을에 서 있다.

지암(志菴) 정인채(鄭仁采)[1855~1934]는 한학자로 활동하였다. 정순경(鄭淳經)[1889∼1954], 정순방(鄭淳邦)[1891∼1960] 등 다섯 형제는 1948년에 부친을 사모하는 의미로 오모정(五慕亭)을 건립했다.

[자연환경]

금전 마을 동쪽으로는 금전 저수지, 서쪽으로는 한천천과 돗바닷들, 남쪽으로는 뒷산, 북쪽으로는 황새봉이 있다.

[현황]

2013년 현재 28가구 56명이 하동 정씨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1957년 이건한 하동 정씨 정학현 효자문(孝子門)과 1989년 중수한 신여재(信汝齋), 1957년 이건한 오모정, 1993년에 세운 유인 창원 박씨 열행비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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