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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에 속한 법정리. 감성리는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에 있는 법정리이다. 과거 양야리면의 중심지로 금남면 전통시장이 시작된 지역이다. 감성리(柑城里)는 조선 후기 감나무가 마치 성을 쌓은 것처럼 둘러싸고 있다고 해서 이름 지어졌다고 전한다. 조선 후기 공주군 양야리면(陽也里面)의 감성리와 장대리가 합쳐져서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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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원을 시조로 하고 김승로와 김오를 각각 입향조로 하는 세종 지역의 세거 성씨. 세종특별자치시의 강릉김씨 송오공파(松塢公派)는 두문동 72현의 한 사람으로 알려진 김승로가 고려가 멸망한 직후 전의현[현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관정리]으로 입향하였다. 기은공파는 임진왜란 때 김오가 전란을 피해 외향(外鄕)인 연기현[현 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 청라리]으로 이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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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세종 지역 출신의 무신. 강순룡(康舜龍)은 고려시대 무신이자 이성계의 계비 신덕왕후의 오빠이다. 호는 화곡(化谷)이다. 강순룡의 본관(本貫)은 신천(信川)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우정승을 지낸 강숙재(康淑才), 할아버지는 상호군을 지낸 증상산부원군(贈象山府院君) 강서(康庶)이다. 아버지는 찬성사를 지낸 곡산군(谷山君) 강윤성(康允成)이다. 옛 충청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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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을 입향조로 하는 세종 지역의 세거 성씨. 세종특별자치시의 강진이씨는 고려 후기 역적으로 몰린 이진(李珍)이 연기현[현 세종특별자치시 연기면 눌왕리]에 입향하면서 거주하기 시작하였다. 연기면의 수산리와 갈운리, 고정리[현 도담동, 아름동] 일대에 후손들이 거주하였다. 이진[1300년대 인물]은 고려 충렬왕조에 문과에 급제하였다. 1308년(충선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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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수를 시조로 하고 신재를 입향조로 하는 세종 지역의 세거 성씨. 세종특별자치시의 거창신씨는 양간공파의 신재가 1600년대 초에 전의현[현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관정리]에 입향하여 거주하기 시작하였다. 후손들은 전의면의 관정리·동교리, 전동면 석곡리 등에 살고 있다. 거창신씨(居昌愼氏)의 시조 신수(愼修)[?~1101]는 송나라 사람으로 고려 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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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필을 시조로 하고 장하를 중시조로 하며 장효충을 입향조로 하는 세종 지역의 세거 성씨. 세종특별자치시의 결성장씨는 장효충이 16세기 초에 사화를 피해 처향인 전의현[현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노곡리]으로 입향하였다. 후손들은 전의면, 연동면, 연서면 등지에 거주하고 있다. 결성장씨의 시조 태사공 장정필(張貞弼)은 태조 왕건을 도왔던 인물로 알려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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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알지를 시조로 하는 세종 지역의 세거 성씨. 세종특별자치시의 경주김씨는 태사공파, 판도판서공파, 장군공파, 학은공파 등 여러 계파가 입향하였다. 경주김씨 계파들은 금남면 대박리와 연동면 노송리·내판리·응암리, 전동면 심중리·청람리·송곡리, 전의면 다방리, 부강면 부강리 등지에 세거하여 왔다. 신라 대보공(大輔公) 김알지(金閼智)의 후예로 전하는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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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알평을 시조로 하고 이거명을 중시조로 하며 이응방, 이장준, 이광복, 이영필, 이집상 등을 각각 입향조로 하는 세종 지역의 세거 성씨. 세종특별자치시의 경주이씨는 국당공파와 석탄공파가 여러 경로를 통하여 입향하였다. 주로 연서면 봉암리, 장군면 평기리, 부강면 문곡리, 소정면 고등리, 조치원읍 등지에 세거하였다. 경주이씨 시조는 신라의 건국 신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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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에 속한 법정동. 고운동은 ‘곱다’의 우리말로 대규모 주택 단지가 조화롭게 배치되어 아름답고 고운 주거 이미지를 강조한 명칭이다. 고운동은 가락마을로도 불리는데, 고운동 지역의 고유어 전래명칭 가운데 가락골을 활용한 것이다. 고정리에 자리한 가락골은 갈림길에 있는 마을, 가락처럼 좁은 골짜기에 있는 마을을 의미한다. 삼국시대에는 백제의 두잉지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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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흥광을 시조로 하고 김정수, 김종발, 김재윤 등을 각각 입향조로 하는 세종 지역의 세거 성씨. 세종특별자치시의 광산김씨는 문숙공파와 양간공파 후손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문숙공파는 16세기 중엽 김정수가 전의에 처음 거주하기 시작하였고, 양간공파는 18세기 초에 김종발이 이웃 고을 목천에서 처향(妻鄕)[아내의 관향]인 동면으로 입향하여 거주하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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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세종 지역 출신의 무신. 권봉(權葑)은 세종특별자치시 전동면 노장리 안동권씨 추밀공파 후손으로 주부(主簿)[조선시대 각 아문의 문서와 부적을 주관하던 종6품 벼슬]를 지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왜적과 싸우다가 순절(殉節)[충절(忠節)이나 정절(貞節)을 지키기 위하여 죽음]하였다. 권봉은 안동권씨 추밀공파(樞密公派) 후손이다. 파조는 시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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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전동면 노장리에 정착한 권봉 장군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권봉장군과 말무덤」은 연기군 전동면에 번성한 권씨 가문의 막내아들 권봉 장군이 임진왜란에서 전사하자 권봉 장군의 말이 권봉 장군의 피 묻은 적삼을 실어 종갓집에 전달하고 따라 죽었다는 충정(忠貞)에 대한 설화이다. 2011년 전동향토지 발간추진위원회에서 발간한 『전동면지』에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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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의 온달을 시조로 하고 온신을 중시조로 하는 세종 지역의 세거 성씨. 세종특별자치시의 금구온씨(金溝溫氏)는 생원공파 파조인 온치순이 조선 전기에 소정면 대곡리로 입향하여 거주해 왔다고 전해진다. 금구온씨는 조선 후기에 전의이씨와 통혼하였으며, 묘소도 대곡리에서 확인되고 있다. 금구온씨의 시조는 고구려의 온달(溫達) 장군이고, 온신(溫信)을 중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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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 도암리에 있는 조선 후기 화순최씨 종중 재실. 금남 모인당(慕忍堂)은 도암리 화순최씨(和順崔氏) 입향조인 최은(崔垠)[1400년대 후반]과 부친 도승지 최중온(崔重溫), 조부 참판공 최한정(崔漢禎)[1427~1486], 최은의 아들 최세계(崔世溪)의 화순최씨 집안 재실(齋室)[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지은 집]이다. 화순최씨는 고려 때 경주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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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 달전리에 있는 성삼문을 기리기 위해 개항기에 세운 사당. 문절사(文節祠)는 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사육신의 한 사람인 매죽헌(梅竹軒) 성삼문(成三問)[1418~1456]을 제향하기 위하여 지어진 사당이다. 공식 명칭은 매죽헌사우(梅竹軒祠宇)이다. 성삼문의 정려인 문절사가 금남면 달전리에 세워진 때는 1903년으로, 사실 달전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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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에 속한 법정면. 금남면은 세종특별자치시 전체 면적의 17%를 차지하는 제일 큰 면이며, 43개 행정리[27개 법정리]가 있다. 위로는 금강이 흐르고 있고 서로는 충청남도 공주시, 남으로는 대전광역시와 경계에 있는 지역이다. 중부권 최대 전천후 자연학습장인 충남산림박물관과 금강수목원, 금강자연휴양림 등이 있어서 자연경관이 매우 빼어나다. 인근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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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 달전리에 세거한 창녕성씨 회곡공파 집성촌. 금남면 달전리에 세거하는 창녕성씨 회곡공파는 회곡공 성석용(成石瑢)[?~1403]을 파조로 하며, 성석용의 손자 성희(成熺)[?~1464]가 입향조이다. 금남면 달전리 전체 100가구 중 50가구가 창녕성씨이다. 금남면 달전리의 창녕성씨는 성석용을 파조로 하는 회곡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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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 도암리에 세거한 화순최씨 사평공파 집성촌.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 도암리는 화순최씨 사평공파 집성촌으로, 11세손 최은(崔垠)이 회덕에서 도암리로 입향한 이래 대대로 집성촌을 이루어 왔다. 도암리 전체 150가구 중 100가구가 화순최씨이다. 금남면 도암리 화순최씨 사평공파(司評公派)의 입향조는 최은으로, 도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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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금강의 정자 중에서 이름이 널리 알려진 금벽정에 게판되어 있던 현판. 금벽정(錦壁亭)은 ‘조상서의 정자’라고 알려져 있으며, 조상서는 조석명(趙錫命)[1674~1753]이라는 인물이다. 금벽정은 병풍을 펼쳐 놓은 듯한 기암절벽으로 이루어진 창벽이 바라보이는 곳에 위치하여 있던 정자로, 금강의 절경 중에서도 백미(白眉)로 꼽힌 곳이다. 금벽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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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세종 지역에 있던 역. 금사역(金沙驛)은 옛 충청남도 연기군 남면 갈운리에 있던 역으로, 성환역(成歡驛)의 작은 소역이었다. 금사역이 존재한 것으로 추정되는 갈운리는 2012년 7월 아름동, 도담동과 함께 세종특별자치시 연기면 산울리, 해밀리에 편입·분리되었다. 금사역은 갈운2리의 양지마을과 국도 제1호가 접해 있는 갈운리 검새울 마을 공동묘지 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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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에 속한 법정리. 금천리는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에 있는 법정리이다. 금천1리에는 황산[쇠내]·원금천, 금천2리에는 학봉·중방·청절 등의 자연마을이 있다. 금천리의 옛 이름은 소내다. 소가 누워 있는 형국의 명당이라 하여 붙은 이름이다. 그러다 일제강점기 때 지금의 금천2리에서 금을 캤다고 하여 ‘소내’가 ‘쇠내’ 또는 ‘금천(金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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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세종 지역 출신의 양세 열부. 밀양손씨와 창녕성씨는 안동김씨 집안으로 출가한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이다. 밀양손씨는 혼례를 올린 지 4개월 만에 남편 김기철(金基喆)과 사별하였으나 유복자[태어나기 전에 아버지를 여읜 자식] 김성흠을 낳아 잘 양육하였다. 창녕성씨도 출가한 지 2년 만에 김성흠이 죽자 외아들 김광묵을 잘 길렀으므로 시어머니 밀양손씨와 더불어 양세열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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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세종 지역 강릉김씨 송오공파의 파조이자 입향조. 김승로(金承露)[1359~1438]의 자는 천뢰(天賚), 호는 송오(松塢)이다. 전의면 관정리 강릉김씨 입향조이다. 고려가 멸망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고향으로 돌아오던 중 현재의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관정리 느리골에 정착하였던 것으로 추측된다. 조선 건국 이후 태종조에 여러 번 관직을 내려 조정으로 불렀으나 끝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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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세종 지역 경주김씨 상촌공파의 입향조. 김언신(金彦信)은 연동면 노송리 경주김씨 상촌공파의 입향조로 1624년 이괄의 난 때 공(功)을 세워 공신으로 책봉(冊封)되었다. 1636년 병자호란 때는 두 아들과 함께 싸우다가 순절(殉節)[충절이나 정절을 지키기 위하여 죽음]하였다. 연동면 노송리 경주김씨 상촌공파는 고려 공민왕 때 충청도관찰사를 지낸 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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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세종 지역에 있던 역. 김제역(金蹄驛)은 세종특별자치시 소정면 대곡3리 ‘역말’에 있었던 역원이다. 김제역이 있었던 대곡3리 역말은 행정구역상 세종특별자치시에 속하지만 천안시와의 접경에 가깝다. 천안 시내에서 불과 10㎞ 정도 거리에 불과하며 국도 제1호가 통과하고 있어 주민들의 생활권이 천안 시내 권역인 지역이다. 김제역은 충청도에 설치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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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세종 지역 출신의 무신. 김제정(金濟鼎)[1578~1627]은 조선시대 무신으로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첨중(僉中)이다.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양곡리에서 태어났으며, 1605년(선조 38) 무과에 급제하였다. 1627년(인조 5) 정묘호란 당시 강홍립(姜弘立)[1560~1627]과 김경서(金景瑞)[1564~1624]가 싸우지 않고 적에게 투항하자 김제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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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세종 지역 연기김씨의 시조. 김준손(金俊孫)은 1506년 중종반정 때 공(功)을 세워 정국공신(靖國功臣) 4등에 책록(策錄)[국가나 군주 등을 위하여 공훈을 세운 사람의 이름과 공훈을 문서에 기록함]되고 연성군(燕城君)에 봉하여졌으며, 연기김씨 시조(始祖)가 되었다. 김준손은 신라 경순왕의 넷째 아들 대안군(大安君) 김은열(金殷說)의 후예이며,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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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세종 지역 출신의 열녀. 나주나씨는 김진창(金震敞)의 처로, 남편이 병들자 지극정성으로 간병하였으나 죽고 말았다. 사별 후 나씨는 시부모에게 극진히 효성을 다하면서 어린 자식을 양육하였다. 시부모가 노환으로 숨지자 뒤를 따라 죽으니 동네 사람들이 조정에 알려 정려(旌閭)[충신, 효자, 열녀 등을 동네에서 정문(旌門)을 세워 표창하던 일]를 명 받은 효열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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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로왕을 시조로 하고 김희설, 김진현을 각각 입향조로 하는 세종 지역의 세거 성씨. 세종특별자치시의 김해김씨는 안경공파의 김희설과 횡성공파의 김진현이 각각 전의현[현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동교리와 소정면 고등리]에 입향하였으며, 전의면 동교리와 소정면 소정리·고등리 등지에 세거하였다. 시조 김수로왕(金首露王)[?~199]은 가락국의 시조이다. 42년(유리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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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세종 지역 출신의 열녀. 남양홍씨(南陽洪氏)[?~1736]는 안동 사람 김환(金瓛)에게 출가하였으나 남편이 이름 모를 병으로 위독하게 되자 자신의 정성이 부족하다 여기고 자결하였다. 그러나 남편의 병은 차도가 있어 회복하였는데 주변에서 남양홍씨의 정성에 신령이 감동한 것이라며 칭송한 열녀이다. 김환 처 남양홍씨의 아버지는 홍처한(洪處漢)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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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세종 지역으로 낙향하여 은거한 고려 후기 문신. 김휴(金休)[1350~?]의 자는 연부(鍊夫), 호는 학당(學堂)이다. 본관은 안동(安東)이고, 김방경(金方慶)[1212~1300]의 현손이다. 아버지는 고려시대에 공조전서를 지낸 김성목(金成牧)이다. 김휴는 정몽주의 문하생이며, 공민왕 때 검교근시(檢校近侍)를 지냈다. 이후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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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에 속한 법정리. 남곡리는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에 속하는 법정리로 남곡[남골], 무중골 등의 자연마을이 있다. 물이 남쪽 골짜기에서 흘러 오므로 남골, 또는 남곡(南谷)이라 부르게 되었다. 조선 후기에는 공주군(公州郡) 명탄면(鳴灘面)의 지역이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남곡리와 수락리가 합쳐져서 연기군 금남면에 편입되었다.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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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은열을 시조로 하고 홍순손, 홍익청, 홍인성 등을 각각 입향조로 하는 세종 지역의 세거 성씨. 세종특별자치시에 남양홍씨는 남양군파와 문정공파가 거주하고 있다. 15세기 중엽 남양군파의 홍순손이 어린 나이에 홀어머니와 함께 외가인 연기현으로 입향하였고, 병자호란 때 홍익청이 처향인 전의현[전의면 서정리]으로 입향하였으며, 금남면 성덕리의 남양홍씨 문정공파는 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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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홍씨 연기파의 재실 우덕재에 전하여 오는, 조선 후기부터 개항기까지 종중의 족보와 문서. 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 신대리에 소재한 남양홍씨 연기파(燕岐派)의 재실 우덕재(友德齋)에 전하여 오는 조선 후기 세종 지역 사회사 자료로, 고문서 8점 및 남양홍씨세보(南陽洪氏世譜) 1질 등 9종 22점이다. 2015년 6월 세종특별자치시 유형문화재 제21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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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에 속한 법정리. 마을 주변에 있던 나무로 된 넓은 다리에서 유래하는 명칭이다. 다리 이름은 너더리로, 마을 안쪽에 위치하여 안너더리 또는판교(板橋)·내판(內板)으로 불리었다. 내판리에는 너더리, 역전, 새말, 연못골 등의 자연 마을이 있다. 너더리는 널다리[板橋]에서 유래된 지명으로, 마을 앞에 널로 만든 다리가 있어 붙은 이름이다. 역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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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에 속한 법정리. 노송리는 마을 주변에 오래된 소나무가 많이 분포하여 생겨난 지명이다. 조선시대에는 노송(老松)이 많아 놀뫼로 불렀으며, 일제강점기에는 노산(老山)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노송리에는 마근터, 노리미, 강당, 움골 등의 자연 마을이 있다. 마근터마을은 노송리에서 가장 큰 마을로, 마을 앞에 못을 파고 소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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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연기면에 속한 법정리. 누리리는 세상을 예스럽게 이르는 한글에서 유래한 명칭이다. 누리리는 꽃재마을로도 불리는데, 누리리 지역의 고유어 전래 명칭 가운데 꽃재마을을 활용한 것이다. 월산리에 자리한 꽃재마을은 산등성이가 들판 쪽으로 튀어나온 고개 밑에 있다는 의미이다. 누리리는 삼국시대에는 백제의 두잉지현, 통일신라시대에는 연기현, 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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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연기면에 속한 법정리. 눌왕리는 군자(君子)라는 옛말에서 유래하는 마을 명칭이다. 군자림(君子林), 눌왕산(訥旺山) 아래에 위치하여 느랑이라고도 부른다. 눌왕리에는 눌왕마을·청룡마을·왕바위마을·원댓골마을·문암마을 등의 자연 마을이 있다. 눌왕마을은 눌왕산 아래에 자리하여 느랑이라고 불렀던 마을이다. 청룡마을은 느랑이 서쪽에 있는 마을로 땅의 형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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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 달전리 창녕성씨 집성촌의 공동체 생활문화 조직. 금남면 달전리는 창녕성씨들의 집성촌으로, 시제(時祭)[음력 10월에 5대 이상의 조상 무덤에 지내는 제사]와 함께 마을 주민이 공동으로 참여하고 운영하는 애향계와 상여계인 연반계가 유지되고 있다. 달전리의 창녕성씨들은 매년 음력 10월 8일 제각(祭閣)[무덤 근처에 제사를 지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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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에 속한 법정리. 달전리는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에 있는 법정리로 관할구역에는 원달전, 닭재, 성동, 망골, 안산, 욧골 등이 있다. 달전리는 조선시대 많은 풍류객(風流客)이 쉬어갔던 곳으로 산막(山幕)이 많았다고 한다. 마을 앞산이 반달같이 생겼다 하여 ‘달밭’ 또는 ‘월전(月田)’이라 하였다. 달전리의 마을이 12개 마을로 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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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득시를 시조로 하고 전춘발을 입향조로 하는 세종 지역의 세거 성씨. 전득시(田得時)를 시조로 하고 전춘발(田春發)[1789~?]을 입향조로 하는 담양전씨는 1800년대 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응암리에 터전을 삼아 정착한 이래 2019년 현재까지 후손들이 살고 있다. 담양전씨의 시조 전득시는 전라남도 담양군 출신으로 고려 의종 때 문과에 급제하고 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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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에 속한 법정리. 대박리는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에 있는 법정리이자 행정리이다. 관할구역으로는 함박구미, 초정 등이 있다. 2011년 대전광역시 대덕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의 기능 지구로 선정된 후 지역 변화가 시작되었다. 대박리(大朴里)는 대박리의 산 모양이 함박꽃과 같다 하여 함박금 또는 함박금이로 불리다가 큰 마을이란 뜻에서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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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에 속한 법정동. 대평동은 이전의 대평리 명칭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대평동은 해들마을로도 불리는데, 해가 대평동 지역을 따스하게 비춘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대평동은 삼국시대에는 백제의 소비포현, 통일신라시대에는 웅천주,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는 공주군에 속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연기군 금남면에 편입되었다.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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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에 속한 법정동. 도담동이라는 명칭에는 야무지고 탐스럽게 살기 좋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도담동은 도램 마을로도 불리는데, 이는 도담동 지역의 고유어 전래 명칭 가운데 도램말을 활용한 것이다. 도램말은 방축리의 지형이 황소의 뚜레[고삐]와 닮아 불리었다. 삼국시대에는 백제의 두잉지현, 고려시대에는 공주목과 청주목, 조선시대에는 연기현에 속했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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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에 속한 법정리. 도암리는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에 있는 법정리이다. 자연마을 외촌은 도암1리, 자연마을 내촌은 도암2리로 구성되어 있다. 『한국지명총람』에서는 마을의 지명 유래에 관해 명암리는 바위에 구멍이 있어 소리를 지르면 울려 나오는 울바위[鳴巖]가 있고, 행정[행정리, 바깥말, 외촌]은 도암리 바깥쪽에 있는 마을로 은행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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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 도암리에 있는 화순최씨 집안의 제사를 위한 계.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 도암리 화순최씨 집안에서 제사를 위하여 계를 만들고 금전출납부를 남겼다.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 도암리의 화순최씨는 매년 음력 10월 10일에 시제(時祭)[음력 10월에 5대 이상의 조상 무덤에 지내는 제사]를 지낸다. 시제날에는 일가친척을 포함하여 대략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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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에 속한 법정리. 두만리는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에 있는 법정리이다. 두만1리에는 자연마을 원두만이 있고 두만2리에는 자연마을 산동이 있다. 『한국지명총람』에서는 두만리[두메안, 두만]의 지명 유래에 대해 산에 둘러싸여 있으므로 두메안이라 하던 것이 변하여 두만이라 하였다고 설명한다. 원두만은 두만리의 원 마을이다. 옛날 두만리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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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에 속한 법정리. 명학리는 마을과 주변의 형상이 학(鶴)과 닮아 원명학 또는 알봉골로 불리었다. 마을은 학이 앉아 있는 형국이고 뒷산의 바위는 학이 알을 품고 있는 형상이다. 주변은 학이 날아가는 형국으로 뒷산은 머리에 해당하고 양쪽 산은 날개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명학리에는 명학, 황우재, 외태, 내태, 서당말, 원당골 등 자연 마을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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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명학리 장수황씨가 세종 지역으로 입향한 이후 집안을 유지하기 위하여 만든 모임과 조직. 장수황씨 연기종회는 친족간 친목을 도모 하고, 종중 재산을 관리 보존하고, 선조 제향봉행 및 기념사업 시행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장수황씨 세종특별자치시 입향조 황첩(黃堞)의 시제는 음력 10월 10일로, 묘소에서 지낸다. 묘소는 세종특별자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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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승을 시조로 하고 박선일과 박행일을 입향조로 하는 세종 지역의 세거 성씨. 박선일(朴善一)[1628~1708]과 박행일(朴行一)을 입향조로 하는 무안박씨 상서공파(尙書公派)가 1600년대 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응암리에 정착하여 2019년 현재까지 세거지를 이루며 살아오고 있다. 무안박씨의 시조(始祖)는 박진승(朴進昇)이다. 신라 제54대 경명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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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에 속한 법정리. 마을 앞에 맑고 아름답게 흐르는 미호천(美湖川)을 문관(文官)이 배를 타고 떠나는 것에 비유하여 문주(文舟)라고 하였다. 많은 인물이 배출된다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 문주리에는 갈말, 골말, 건넝, 치마바우마을 등 자연 마을이 있다. 갈말마을은 문주리에서 가장 큰 마을로, 앞에 갈대가 많아서 붙은 명칭이다. 처음에 인천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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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언침을 시조로 하고 박건원, 박명, 박승조, 박자동, 박동온, 박치신 부인 청주한씨, 박지오 등을 각각 입향조로 하는 세종 지역의 세거 성씨. 밀양박씨는 한국의 토착 성씨로, 신라를 건국한 박혁거세(朴赫居世)를 원조로 하고 박언침(朴彦忱)을 시조로 한다. 박언침은 신라 경명왕의 맏아들로, 밀성대군(密城大君)에 봉해져 후손들이 본관(本貫)을 밀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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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예양리에 있는 밀양박씨 5인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조선 후기에 세운 정려. 밀양박씨 오충 정려(密陽朴氏五忠旌閭)는 충청도 연기군 북이면 두옥동(斗玉洞) 혹은 두도동(斗櫂洞)[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 월하리] 출신으로서 임진왜란 때 의병으로 활약하다가 청주 상당산성(上黨山城)에서 전사한 박천붕(朴天鵬)[1545~1592]과 병자호란 때 전사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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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순을 시조로 하고 손창조를 입향조로 하는 세종 지역의 세거 성씨. 밀양손씨 시조 손순(孫順)의 선계는 신라 개국 당시 사로국 6촌 촌장의 한 사람인 무산대수촌장(茂山大樹村長) 구례마(俱禮馬)이다. 구례마는 박혁거세를 신라의 왕으로 추대하여 개국공신이 되었고, 32년(유리왕 9)에 사성(賜姓)[임금이 공신에게 성(姓)을 내려 주는 일 또는 임금으로부터 성을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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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세종 지역 출신의 열녀. 박기정의 부인으로, 남편은 무안박씨이다. 혼례 후 얼마 되지 않아 남편이 죽자 수절하였다. 홀로 시모를 극진히 봉양하고 양자를 들여 가문의 대를 잇게 한 열녀이다. 아버지는 광산(光山) 사람 김귀택(金龜澤)이다. 광산김씨는 무안 사람 박기정(朴基鼎)과 혼례를 치르고 3일 만에 남편과 재행(再行)[혼인한 뒤에 신랑이 처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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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에 속한 법정리. 박산리는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에 있는 법정리다. 자연마을로는 박산[작약동], 고래뜰[고래실] 등이 있다. 『한국지명총람』에서는 박산리(朴山里)[박산, 작약동]라는 지명과 관련하여 뒷산에 밀양박씨 박참판의 묘소가 있어 박산으로 불렀다고 하고, 또는 산 모양이 작약처럼 생겼다 하여 작약골이라 불렀다고도 하였다. 박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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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세종 지역 출신의 무신. 박천붕(朴天鵬)[1545~1592]은 본관(本貫)이 밀양이다. 자는 익호(翼乎), 호는 규정(樛亭)이다. 1554년(명종 9) 충청도 연기군 북이면 신리 두옥동[현 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 월하리]에서 태어났다. 1592년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스승인 조헌의 종사관이 되어 8월 청주전투에서 선봉장으로 적진에 뛰어들었다가 순국(殉國)[나라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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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에 속한 법정리. 조선 초기 태종에 의한 태자(太子)의 난(亂) 때 신천강씨인 신덕왕후 강씨(康氏)의 일족이 화를 입게 되어 발산리로 피란하여 숨어 살았는데, 그 후 송시열(宋時烈) 등 많은 학자들의 탄원에 의하여 관원(官員)의 등용(登用)이 허락되었다. 그때 영조조(英祖朝)의 후손인 강씨부자(康氏父子)가 거듭 대과(大科)[과거(科擧)의 문과와 무과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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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세종 지역 출신의 의병. 배경걸은 임진왜란 때 중봉 조헌의 종사관으로 들어가 청주성 전투에서 많은 적병을 무찔러 공(功)을 세웠다. 배경걸[1536~1634]은 성산배씨 14세손으로, 자는 호이(豪而), 호는 노천(蘆川)이다. 연동면 노송리의 성산배씨는 녹야당공파로 4대조인 직제학 배유(裵裕)[1403~1472]를 파조로 한다. 청산현감을 지낸 배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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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세종 지역 출신으로 금산전투에 참전한 무신. 변응정(邊應井)[1557~1592]은 임진왜란 당시 금산전투에 참전하였던 무신으로 전동면 청람리 일대에 거주하였던 원주변씨(原洲邉氏) 가문의 후손이다. 변응정의 본관(本貫)은 원주(原州)이고 자는 문숙(文淑)이다. 원양군(原陽君) 변사겸(邊士謙)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경력(經歷) 변윤계(邊胤季)이며, 아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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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전동면 청람리에 있는 변응정을 기리기 위해 일제강점기에 세운 사당. 변응정 사당은 임진왜란 당시 금산 전투에서 전사한 충신 변응정(邊應井)[1557~1592]의 행적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사당이다. 변응정은 1585년(선조 18) 무과에 응시하여 급제한 후 월송진 만호와 선전관을 지냈다. 해남현감으로 있던 중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관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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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 달전리에 있는 성기운의 영정을 모시기 위해 세운 사당. 병산사는 금남면 달전리 출신의 일제강점기 항일의사 성기운(成璣運)[1877~1956]의 영정(影幀)[제사나 장례를 지낼 때 위패 대신 쓰는, 사람의 얼굴을 그린 족자]을 봉안(奉安)[신주(神主)나 화상(畫像)을 받들어 모심]하기 위하여 세운 사당이다. 1972년 성기운의 학문과 정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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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에 속한 법정동. 보람동은 세종특별자치시 행정의 중심지로서 일을 마무리하여 좋은 결과나 만족감을 얻어 보람 있는 행정타운 이미지를 강조하는 명칭이다. 보람동은 호려울마을로도 불리는데, 보람동 지역의 고유어 전래명칭 가운데 호려울을 활용한 것이다. 마을이 산으로 둘러싸여 병의 목과 같다고 하여 병 호(壺)자와 금강이 여울졌다고 해서 호려울 또는 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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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연기면에 속한 법정리. 보통리는 보통용수(洑通用水)에서 유래한 명칭이다. 보물과 같은 냇물이 흐르고 연기리에서 오는 보(洑)가 마을을 지나가서 보통이라 불렸다. 보통리에는 잣띄, 보통이, 큰뜸, 새뜸, 윗뜸, 아래뜸 등의 자연 마을이 있다. 잣띄는 성산 북쪽의 기슭에 자리하며 마을에 잣나무[柏子木]가 있어서 붙여진 명칭이다. 보통이는 보통리 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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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조치원읍 봉산리의 강화최씨 집성마을. 강화최씨 집성마을로, 최완[1510~1570]이 기묘사화를 피하여 서울에서 이거·입향 후 500여 년간 발전하여 8대에 걸쳐 15명의 효자와 열부를 배출한 특별한 마을이다. 동족조직이 강한 모습이 숭모단 제향, 시제(時祭)[음력 10월에 5대 이상의 조상 무덤에 지내는 제사], 마을 샘 제사로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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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에 속한 법정리. 봉암리는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에 있는 법정리다. 전형적인 농촌 마을로, 마을 중앙을 지나는 용수천 연변의 평야 지대에 봉암 등 자연마을이 들어서 있다. 봉황새가 앉아서 우는 봉황바위가 있는 마을이라 하여 봉암(鳳岩)이라 하였다. 조선 후기 공주군 반포면(反浦面) 지역으로, 1914년 반포면 덕천리(德川里)와 송곡리(松谷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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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계미를 시조로 하고 임난수를 입향조로 하는 세종 지역의 세거 성씨. 임계미(林季美)를 시조로 하고 임난수(林蘭秀)[1342~1407]를 입향조로 하는 부안임씨는 1300년대 후반 600여 년 세거지인 연기군 남면 양화리[현 세종특별자치시 연기면 세종리]에 정착한 이래 전서공파(典書公派)를 형성하여 지금까지 명실공히 세종 지역을 대표하는 성씨이자 유력한 성씨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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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전동면 미곡리에 있는 부안임씨 2인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조선 후기에 세운 정려. 부안임씨 쌍효 정려는 효자 임자의(林自儀)[1672~1717]와 임태선(林太先)[1675~1720] 형제의 효성을 기리기 위하여 세워졌다. 임자의·임태선 형제는 임난수(林蘭秀)의 후손으로 본관이 부안이고, 아버지는 임상담(林尙談)이다. 동생 임태선의 본명은 태의(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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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에 속한 법정리. 부용리는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에 있는 법정리로, 초오개마을이 있는 부용1리와 원부용이 있는 부용2리로 이루어져 있다. 부용리(芙蓉里)는 연꽃이 물에 뜬 듯한 연화정수형(蓮花淨水形)의 명당이 있는 부용봉(芙蓉峰)이 있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부용리의 옛 이름인 초오개는 산이 깊어 약초가 많이 나는데, 특히 다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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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천로를 시조로 하고 최종적을 입향조로 하는 세종 지역의 세거 성씨. 최천로(崔天老)를 시조로 하고 최종적(崔宗迪)을 입향조로 하는 삭녕최씨 사직공파(司直公派) 후손이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유천리에 입향한 이래 지금까지 살고 있다. 시조 최천로는 고려 때 문하시랑 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를 지냈다. 후손 최유가(崔瑜價)는 벼슬이 추밀원 부사(樞密院副使)를 거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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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에 속한 법정동. 산울동은 산울타리에서 유래한 한글 명칭으로 푸르고 포근한 주거단지를 의미한다. 산울동은 빗돌마을로도 불린다. 갈운리에 위치한 빗돌거리는 돌로 만든 할아버지 미륵과 할머니 미륵이 있는 양지말이다. 삼국시대에는 백제의 두잉지현, 고려시대에는 공주목과 청주목, 조선시대에는 연기현에 속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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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에 속한 법정동. 새롬동은 새로움의 준말로 생생하고 산뜻한 느낌이 있는 주거지역을 뜻하는 명칭이다. 새롬동은 새뜸마을로도 불리는데, 새롬동 지역의 고유어 전래명칭 가운데 새뜸을 활용한 것이다. 송원리에 있었던 새뜸마을은 새로 닦은 터를 의미한다. 새롬동은 삼국시대에는 백제의 두잉지현과 웅천, 고려시대에는 공주목과 청주목에 속했다. 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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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활동하였던 유학자이자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 달전리의 병산사에 봉안된 인물. 성기운(成璣運)[1877~1956]은 일제강점기 활동하였던 유학자로 한말의 유학자 간재(艮齋) 전우(田愚)[1841~1922]의 문인으로서 학문과 덕행이 뛰어났다. 1917년 5월 24일 호적령(戶籍令)에 반대하여 호적을 거부하다 네 차례에 걸쳐 구속과 석방을 반복하였다. 1928년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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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에 속한 법정리. 성덕리는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에 있는 법정리이다. 성덕리의 자연마을로는 동호마을, 한삼마을 등이 있다. 성덕리는 옛날부터 덕을 쌓아서 많은 사람들을 깨우치게 한 이들이 많이 산다고 하여 붙인 지명이다. 자연촌락 명칭인 동오리는 ‘동호리’라고도 불린다. 동호리는 한삼 북쪽에 있는 마을로 계룡천이 마을 앞을 흘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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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위준을 시조로 하고 배천의를 입향조로 하는 세종 지역의 세거 성씨. 배위준(裵位俊)을 시조로 하고 배유(裵裕)[1403~1472]를 파조로 하는 성산배씨는 배천의(裵天義)[1584~1654]가 1600년대 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노송리에 입향한 이래 후손들이 현재까지 집성촌을 이루며 살고 있다. 성산배씨는 성주배씨(星州裵氏)라고도 한다. 시조는 배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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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단종복위운동에 힘쓰다 죽은 사육신 중 한 명으로,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 달전리에 있는 문절사에 제향된 인물. 성삼문(成三問)[1418~1456]의 자는 근보(謹甫), 호는 매죽헌(梅竹軒)이다. 1453년(단종 1) 계유정난 이후 박팽년·허조 등과 단종복위운동을 계획하다 실패하여 처형된 인물로 사육신 중 한 명이다. 충절의 대표적인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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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연기면에 속한 법정리. 세종특별자치시의 중심권에 해당하는 지역으로, 미래의 심장부라는 상징을 담아 세종특별자치시 명칭의 근간인 세종대왕에서 두 글자를 가져왔다. 세종리는 모롱지마을로도 불리는데, 세종 지역의 고유어 전래 명칭 가운데 모롱지산을 활용한 것이다. 송담리에 있는 모롱지산은 산모퉁이를 휘어 돌린 곳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금강과 만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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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연기면 세종리 부안임씨의 동족조직. 세종특별자치시의 전통 동족마을을 대표하는 세종리[옛 양화리]의 부안임씨들은 가문의 전통을 유지하면서 집안을 결속시키기 위하여 종약(宗約)[종중이 모여서 종회(宗會)의 운영에 관하여 정한 규약]을 만들어 시행하였다. 동족의 결속을 다지는 공동제의로 불천위(不遷位)[큰 공훈이 있어 영원히 사당에 모시기를 나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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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에 속한 법정동. 소담동은 생김새가 탐스럽고, 행복이 가득한 풍요로운 주거 단지를 의미하는 한글 명칭이다. 소담동은 새샘마을로도 불리는데, 소담동 지역의 고유어 전래 명칭 가운데 새샘골을 활용한 것이다. 석삼리의 새삼골은 새로 판 샘이 있는 골짜기에서 유래한 명칭이다. 소담동은 삼국시대에는 백제의 소비포현, 통일신라시대에는 웅천주, 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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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에 속한 법정리. 송용리는 마을 주변의 소나무[松]와 용(龍)에 대한 신앙에서 발생한 명칭이다. 마을 앞 하천의 많은 늪과 연못에서 이무기가 승천하였다고 전해져 용에 대한 믿음에 있다. 뒷산에는 많은 노송(老松)이 분포한다. 송용리에는 송산, 도룡골, 나븐, 꿩말 등 자연 마을이 있다. 송산(松山)마을은 송용리에서 가장 큰 마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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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연기면에 속한 법정리. 마을에 있는 아름다운 금병산(金屛山)이 수려(秀麗)하여 수산(秀山)으로 불리다가 나중에 수산(水山)으로 불리게 되었다. 수산리에는 둔더기, 수산, 태천 등의 자연 마을이 있다. 둔더기는 국사봉 아래에 있는 마을로 둔덕(屯德)에 있어 둔더기라 불리며, 국사봉 또는 국사리(國士里)라고도 한다. 수산은 둔더기 서북쪽에 자리한 마을로 금병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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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규를 시조로 하고 박안생을 입향조로 하는 세종 지역의 세거 성씨. 박영규(朴英圭)를 시조로 하고 박안생(朴安生)[?~1439]을 입향조로 하는 순천박씨는 1400년대 초반 세종 지역인 전의면 관정리에 입향한 이래 600년 동안을 세거해 온 전의 지역의 대표 성씨이다. 순천박씨의 시조 박영규는 고려 태조를 도운 개국공신으로, 삼중대광좌승(三重大匡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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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고를 시조로 하고 이희와 이용을 입향조로 하는 세종 지역의 세거 성씨. 이사고(李師古)를 시조로 하고 이양소(李陽昭)를 파조로 하는 순천이씨는 1600년대 전반 세종 지역인 전의면 관정리에 입향한 이래 전의면 신흥리와 원성리에 일가를 이루며 살아오고 있다. 순천이씨 시조는 이사고이다. 고려 때 문하시중으로 승평백(昇平伯)에 봉하여져 순천을 관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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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자미를 시조로 하고 안창과 안윤희를 입향조로 하는 세종 지역의 세거 성씨. 안자미(安子美)를 시조로 하는 순흥안씨는 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 와촌리와 연동면 합강리에 입향한 이래 500여 년 동안 집성촌을 이루며 살아온 유력 성씨이다. 순흥안씨의 시조는 안자미이다. 고려 신종 때 흥위위 보승별장(興威衛保勝別將)을 지내고 신호위 상호군(神虎衛上護軍)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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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세종 지역 출신의 열녀. 기계유씨(杞溪兪氏)는 신이초(愼爾初)의 부인으로, 남편은 무안박씨이다. 신이초에게 출가하여 다복한 가정을 꾸렸으나 남편이 갑자기 숨지자 장례를 치른 후 식음을 전폐한 지 7일 만에 남편의 뒤를 따른 열녀이다. 신이초 처 기계유씨는 시남(市南) 유계(兪棨)[1607~1664]의 종손녀(從孫女)이다. 기계유씨[?~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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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경을 시조로 하고 강진경과 강혁을 입향조로 하는 세종 지역의 세거 성씨. 강호경(康虎景)을 시조로 하고 강지연(康之淵)을 중시조로 하는 세종특별자치시 신천강씨는 금남면 발산리와 고운동에 입향한 이래 발산파와 연기파를 형성하며 500여 년 동안 집성촌을 이루며 대대로 살아왔다. 신천강씨 시조 강호경은 신라 후기 군인으로, 고려 태조 왕건의 외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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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에 속한 법정리. 신촌리는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에 있는 법정리로, 자연마을로는 꽃절골·작은말·큰말 등이 있다. 옛날부터 마을이 있었던 곳이 아니고 조선시대부터 마을이 서서히 생기기 시작한 지역이다. 옛날 신촌리는 꽃이 많이 피는 지대였고 꽃절이라 불리는 절이 있었다. 새로 마을이 생긴 구역이라 하여 신촌(新村)이라 하였다.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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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에 속한 법정동. 둘레가 한아름 넘치는 주민들의 풍족한 주거지역을 바라는 의미에서 아름이라는 한글 명칭이 지어졌다. 아름동은 범지기 마을로도 불리는데, 이는 아름동 지역의 고유어 전래명칭 가운데 범지기 마을을 활용한 것이다. 고정리에 자리한 범지기 마을의 모습이 범이 누워있는 형상과 닮았다고 보았다. 삼국시대에는 백제의 두잉지현, 고려시대에는 공주목과 청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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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익휴를 시조로 하고 신경환을 입향조로 하는 세종 지역의 세거 성씨. 신익휴(申益休)를 시조로 하고 신간(申幹)을 파조로 하는 아주신씨 직장공파가 1800년대 후반에 세종 지역인 연동면 송용리에 정착하여 살고 있다. 아주신씨는 평산신씨(平山申氏)에서 분관한 성씨이다. 시조는 평산신씨 12세손 신익휴로, 고려 때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 문하시랑(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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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행을 시조로 하고 권은을 입향조로 하는 세종 지역의 세거 성씨. 권행(權幸)을 시조로 하고 권은(權訔)을 입향조로 하는 안동권씨는 세종특별자치시 전동면 노장리와 청송리 등을 중심으로 번성하여 지금까지 집성촌을 이루며 살고 있는 전동 지역의 대표 성씨이자 유력 성씨이다. 안동권씨의 시조는 권행이지만 원래 이름은 김행(金幸)이며, 신라의 왕성(王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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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숙승을 시조로 하고 김방경을 중시조로 하는 세종 지역의 세거 성씨. 김숙승(金叔承)을 시조로 하고 김방경(金方慶)[1212~1300]을 중시조로 하는 안동김씨는 세종특별자치시 전동면 미곡리, 소정면 운당리, 연동면 내판리에 정착하여 집성촌을 형성하였다. 현재 전서공파(典書公派), 안렴사공파(按廉使公派), 익원군파(翼元公派) 후손들이 세종특별자치시 전 지역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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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양곡리에 있는 안동김씨 2인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조선 후기에 세운 정려. 안동김씨 쌍효 정려는 안동김씨 집안의 김익정(金益精)[?~1436]과 김익정의 현손(玄孫) 김사준(金師俊)[1439~1520]의 행적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되었다. 김익정은 김휴(金休)의 아들로, 호는 운암(雲庵)이다. 경기도 개성군 송도면에서 태어나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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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지역 저명 성씨인 안동김씨의 전의면 양곡리 동족마을 동족조직과 운영 모습. 안동김씨 세종특별자치시 입향 중심인 전서공파의 시제 및 종회 조직·운영모습·절차를 통하여 세종 지역의 전통적인 동족마을 모습을 엿보게 한다. 안동김씨 전서공파의 시제(時祭)[음력 10월 5대 이상의 조상 무덤에 지내는 제사]는 세종특별자치시 전동면 미곡리 학당이 마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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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광을 시조로 하고 이희년을 입향조로 하는 세종 지역의 세거 성씨. 이수광(李秀匡)을 시조로 하고 이인부(李仁富)를 파조로 하는 양성이씨는 1400년대 후반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유천리에 정착한 이래 전의면 서정리와 읍내리 등에 옮겨 살면서 양성이씨 이시중파를 형성하였다. 양성이씨 시조 이수광은 송나라 사람으로 고려에 귀화하여 문종 때 삼중대광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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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잠을 시조로 하고 조존외, 조계원, 조원희를 각각 입향조로 하는 세종 지역의 세거 성씨. 시조 조잠(趙岑)은 고려 때 양주호장(楊州戶長)을 지내고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에 추증(追贈)[종2품 이상 벼슬아치의 죽은 아버지, 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에게 벼슬을 주던 일]되었다. 조잠의 증손대에 이르러 조계생(趙啓生)을 파조로 하는 정평공파(靖平公派), 조유중(趙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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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원성리에 있는 양주조씨 3인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조선 후기에 세운 정려. 양주조씨 삼효 정려는 양주조씨 조수빈(趙秀彬)[1745~1824]과 조명빈(趙命彬)[1749~1832] 형제, 조수빈과 조명빈의 팔촌인 조만빈(趙萬彬)의 손부 조백규(趙百逵) 처 경주김씨(慶州金氏)[1764~1816]의 행적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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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선문을 시조로 하고 허돈, 허징을 각각 입향조로 하는 세종 지역의 세거 성씨. 허선문(許宣文)을 시조로 하는 양천허씨 승지공파(承旨公派)는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 부용리에 터를 이루었고, 덕천공파(德川公派)와 초당공파(草堂公派)는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 집현리에 정착한 이래 서로 이웃한 마을에서 집성촌을 이루며 살아왔다. 양천허씨의 시조 허선묵은 가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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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을 시조로 하고 김천만을 파조로 하는 세종 지역의 세거 성씨. 김선(金鐥)을 시조로 하고 김천만(金天萬)을 파조로 하는 언양김씨 통정공파(通政公派)가 1800년대 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내판리에 입향한 이래 일가를 이루며 살아오고 있다. 언양김씨의 시조는 김선이다. 신라 경순왕의 일곱째 아들이며 고려 태조의 외손자로, 언양군(彦陽君)에 봉해져 언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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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유익을 시조로 하고 송인남을 입향조로 하는 세종 지역의 세거 성씨. 송유익(宋惟翊)을 시조로 하고 송서(宋瑞)[?~1353]를 파조로 하는 여산송씨 정가공파(正嘉公派)가 세종특별자치시 전동면 봉대리 고소재 마을에 입향한 이래 현재까지 집성촌을 이루며 살고 있다. 여산송씨의 시조 송유익은 고려시대에 진사(進士)로서 여산군(礪山君)에 봉하여졌다. 송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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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총후를 시조로 하고 진한번을 입향조로 하는 세종 지역의 세거 성씨. 여양진씨는 집의공파(執義公派) 진한번(陳漢藩)[1526~1572]이 1500년대에 현재의 세종특별자치시 반곡동인 옛 연기군 금남면 반곡리에 입향한 이래 480여 년 동안 세거하며 집성촌을 이룬 세종특별자치시의 대표적인 성씨이다. 여양진씨는 진총후(陳寵厚)를 시조로 한다. 고려 예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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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칭도를 시조로 하고 민후건을 입향조로 하는 세종 지역의 세거 성씨. 세종특별자치시의 여흥민씨는 민후건이 17세기 초반에 연기현 월하방에 입향한 것으로 추정된다. 여흥민씨(驪興閔氏) 시조는 고려시대에 중국에서 사신으로 왔다가 귀화한 민칭도(閔稱道)이다. 민칭도는 공자의 10제자 중 한 사람인 민손(閔損)의 후손으로, 고려 중엽에 사신으로 왔다가 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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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연기면에 속한 법정리. 조선시대에 연기현(燕岐縣)의 읍터였으며, 마을 명칭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에 옛 고을 연기현의 이름을 따서 연기리(燕岐里)가 되었다. 연기리에는 교촌, 구향교골, 환재골, 옥터, 위사티 등의 자연 마을이 있다. 교촌(校村)은 현재 연기향교(燕岐鄕校)가 있으며, 구향교골은 조선 후기까지 향교가 있어서 붙여진 명칭이다. 환재골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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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에 속하는 법정면. 예전의 고을 명칭인 연기현과 세종특별자치시 출범 이전의 연기군 남면 연기리 등을 유지한 명칭이다. 삼국시대에는 백제의 두잉지현, 조선시대는 연기현에 속하였다. 1895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연기군 군내면 연기리에 군청이 소재하였지만, 1911년에 군청이 북면(현 조치원읍)으로 이전되어 중심지도 바뀌었다. 1914년에는 군내면을 개칭하여 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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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세종특별자치시 연기면 세종리에 세거한 부안임씨 집성촌. 세종특별자치시 연기면 세종리는 전서공(典書公) 임난수(林蘭秀)의 정착 이후 600여 년을 이어 오는 부안임씨의 동족적 유서가 깃들어 있는 집성촌이다. 세종리에 거주하는 주민들 성씨는 대부분이 부안임씨이다. 임난수의 둘째 아들인 임목은 양양공파, 임서는 사직공파, 임흥은 위의공파로 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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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와 조선시대 충청도 연기현에 토착하고 있던 씨족 집단의 성씨.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 의하면 조선 전기 연기현의 토성(土姓)[지방에 토착하고 있던 재지 씨족집단의 성씨에 대한 총칭]으로 위(魏)·하(河)·전(全)·경(耿)·장(萇)씨, 내성(來姓)[토박이 성씨가 아닌 다른 고장에서 들어온 성씨]으로 서울에서 온 왕(王)씨, 속성(續姓)[이전의 문서에 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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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합강리에 있는 조선시대 사설 교육기관. 합호서원은 문성공(文成公) 안향(安珦)[1243~1306]의 후손인 순흥안씨들이 1716년(숙종 42) 안향의 영정을 봉안하고 친필을 보관하기 위하여 후손인 안경신(安景信)·안경정(安景精) 등이 세운 영당으로, 안향 영정을 봉안하고 봄·가을에 제향을 지내 왔다. 연동면 합강리에 세거한 순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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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에 속한 법정면. 조선시대에 연기현 관아의 동쪽에 있다하여 동일면(東一面)과 동이면(東二面)으로 부르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두 면을 통합하여 동면이라고 하였다. 2012년 7월에는 충청남도 연기군 동면이 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으로 변경되었다. 삼국시대에는 백제의 두잉지현에 속하였다. 조선 전기에는 연기현으로 있다가 1414년 전의현과 합쳐져 전기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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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명학리에 세거한 장수황씨 집성촌. 장수황씨가 세종특별자치시로 입향한 이후 집안을 유지하기 위한 모임과 조직, 유서(由緖)[예로부터 전하여 오는 내력과 이유] 등의 기록이 남아 있다. 장수황씨 세종특별자치시 입향조 황첩(黃堞)의 시제(時祭)는 음력 10월 10일로, 묘소에서 지낸다. 묘소는 부강면 등곡리에 있다. 제사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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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에 세거한 남양홍씨 남양군파 집성촌. 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 신대1리에 입향하여 300 여년간 뿌리른 내린 남양홍씨(南陽洪氏)는 홍주(洪澍)를 파조로 하는 남양군파(南陽君派)로, 입향조는 홍순손(洪順孫)이다. 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의 신대리와 이웃한 성제리에는 남양홍씨 남양군파가 세거하고 있다. 예로부터 연기 지역은 ‘천홍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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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섬한을 시조로 하고 김개신을 입향조로 하는 세종 지역의 세거 성씨. 세종특별자치시의 연안김씨는 김개신이 광해군 때 사화를 피해 전의현[현 세종특별자치시 전동면 송성리]에 입향한 것으로 추정되며, 송성리에 후손들이 살고 있다. 연안김씨(延安金氏) 시조는 고려 명종 때 사문박사(四門博士)를 지낸 김섬한(金暹漢)이다. 신라 김알지의 후예인 두 왕자가 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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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경을 시조로 하고 정현득을 입향조로 하는 세종 지역의 세거 성씨. 세종특별자치시의 연일정씨는 정원공파의 정현득이 임진왜란 때 전의현에 입향한 것으로 추정된다. 무과 집안인 정현득과 후손들의 묘소는 전의면 신정리 운주산에 있다. 연일정씨(迎日鄭氏) 시조인 정종은(鄭宗殷)은 진한(辰韓) 사로(斯盧) 취산진지부(嘴山珍支部) 촌장 지백호(智伯虎)의 원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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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응암리에 있는 박기정의 처 광산김씨의 열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정려. 열녀 광산김씨 정려는 박기정(朴基鼎)[1792~1830]의 처 광산김씨의 열행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것이다. 광산김씨는 광성군 김국광의 후손인 김구택(金龜澤)의 딸로, 무안박씨 가문으로 출가하였다. 광산김씨가 혼례를 치른 사흘 후 뜻밖에도 남편이 병을 얻어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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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전동면 석곡리에 있는 신이초의 처 기계유씨의 열행을 기리기 위해 조선 후기에 세운 정려. 열녀 기계유씨 정려는 거창신씨 신이초(愼爾初)[1663~1719] 처 기계유씨의 열행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되었다. 기계유씨[?~1719]는 시남(市南) 유계(兪棨)[1607~1664]의 종손녀이다. 유계는 조선 중기 호서지역의 대표적인 서인 노론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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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양곡리에 있는 김환의 처 남양홍씨의 열행을 기리기 위해 개항기에 세운 정려. 열녀 남양홍씨 정려는 안동김씨 김환(金瓛) 처 남양홍씨[?~1736]의 열행을 기리기 위하여 1738년(영조 14)에 명정을 받아 건립한 것이다. 남양홍씨는 홍처한(洪處漢)의 딸로, 양친을 잃고 남매가 의지하며 길쌈으로 생계를 이어 가다 이웃 마을에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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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내판리에 있는 김기철의 처 밀양손씨와 김성흠의 처 창녕성씨의 열행을 기리기 위해 개항기에 세운 정려. 열녀 밀양손씨 창녕성씨 정려는 안동김씨 가문의 고부 밀양손씨(密陽孫氏)와 창녕성씨(昌寧成氏)의 열행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된 것이다. ‘양세정려기(兩世旌閭記)’와 ‘열녀정려기(烈女旌閭記)’에 의하면 밀양손씨는 어려서부터 부덕을 익혀 부모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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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송용리에 있는 장응헌의 처 언양김씨의 열행을 기리기 위해 조선 후기에 세운 정려. 열녀 언양김씨 정려는 결성장씨 장응헌(張應軒)[1609~?]의 처 언양김씨(彦陽金氏)의 열행을 기리기 위하여 지은 것이다. 언양김씨는 첨정(僉正) 김징(金澄)의 딸로, 16세에 장응헌에게 출가하여 시아버지와 남편을 정성껏 섬겼다. 1636년(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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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노송리에 있는 장이상의 처 한양조씨의 열행을 기리기 위해 개항기에 세운 정려. 열녀 한양조씨 정려는 장이상(張彛相)[1816~1884]의 처 한양조씨(漢陽趙氏)[1812~1884]의 열행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한 것이다. 한양조씨는 조우규(趙禹圭)의 딸로, 결성장씨 가문에 출가하였다. 남편 장이상은 판윤 장전(張詮)의 10세손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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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에 속한 법정리. 영곡리는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에 있는 법정리다. 관할구역이 방아다리, 호병골, 버드내골이 있는 영곡1리와 한양 등이 속한 영곡2리로 나누어진다. 자연마을 버드네골은 한양궁 남동쪽 골짜기에 있는 마을이며 냇가에 버드나무가 많이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한양궁은 영구골 서쪽에 있는 마을로 중종 때 한림학사 신준미가 기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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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에 속한 법정리. 영대리는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에 속하는 법정리다. 영대1리에는 둔대와 밤절 그리고 서태, 영대2리에는 우려울과 검배 그리고 삼박골 등의 마을이 있다. 동네가 10리가 넘도록 길다고 하여 영대(永垈)라고 불렀으며 길이 빛날 터라 하여 영대리(永垈里)라 하였다고 한다. 『한국지명총람』에서 영대리는 우려울 위쪽에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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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암을 시조로 하고 천만리를 중시조로 하는 세종 지역의 입향 성씨. 세종특별자치시의 영양천씨(潁陽千氏)는 좌윤공파의 통덕랑공파가 부여 은산에서 살다가 금강 수운을 이용한 상업 활동과 파평윤씨와의 혼인을 인연으로 1900년경 남면 연기리로 입향하였다. 영양천씨는 중국에서 유래한 성씨이다. 시조 천암(千巖)은 명나라 때 도총장(都總將)과 판도승상(版圖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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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에 속한 법정리. 영치리(永峙里)는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에 있는 법정리로 자연마을 안골, 불곡, 사양 등이 있다. 영재라는 고개가 있어 영재 또는 영티라고 부르다가 영치리가 되었다. 조선 후기까지 공주군 양야리면(陽也里面)에 속하였다. 1914년에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공주군 양아리면 와룡동, 내동, 사양리, 영티리를 합쳐 연기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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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을 시조로 하고 김삼섭을 입향조로 하는 세종 지역의 세거 성씨. 세종특별자치시의 예안김씨는 1600년대에 동면 합강리에 입향하여 살기 시작하였으며 입향조는 김삼섭이다. 시조 김상(金尙)은 고려 때 예안(禮安)의 호장(戶長)을 지냈다. 예안의 옛 이름이 선성(宣城)이었기 때문에 선성김씨(宣城金氏)라고도 한다. 동면 합강리 예안김씨 입향조는 좌부승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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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익을 시조로 하고 이영길을 입향조로 하는 세종 지역의 세거 성씨. 세종특별자치시의 예안이씨는 동고파의 이영길이 17세기 중엽 전의현[현 세종특별자치시 전동면 송성리]에 입향하여 거주하기 시작하였다. 예안이씨는 전의이씨(全義李氏)에서 분적된 성씨이다. 전의이씨 시조인 이도(李棹)의 9세손 이혼(李混)[1252~1312]이 고려 원종 때 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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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에 속한 법정리. 예(禮)를 기르고[養] 배우는 곳이라 하여 예양리(禮養里)가 되었다. 예부터 충신(忠臣)이 많이 배출되었고, 오부자(五父子)가 충신인 박천붕(朴天鵬)과 아들들의 충신문(忠臣門)이 있다. 예양리에는 양골, 미꾸지, 산속골, 강촌, 물미 등의 자연 마을이 있다. 양곡(養谷)마을은 덕을 기르는 예양리의 중심 마을로, 인동·양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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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유를 시조로 하고 전세승을 입향조로 하는 세종 지역의 세거 성씨. 세종특별자치시의 옥천전씨는 1600년대 후반에 전세승(全世承)이 입향하여 거주하기 시작하였으며, 세거지인 남면 방축리[현 세종특별자치시 어진동·도담동 일대]에 후손들의 유적들이 있다. 옥천전씨의 도시조는 백제 십제공신 전섭(全聶)이다. 전섭의 27세손 전유(全侑)가 고려 충숙왕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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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에 속한 법정리. 용담리는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에 있는 법정리이다. 용담1리에는 자연마을 비룡소, 용담2리는 자연마을 벌말[평촌] 등이 있다. 용담리는 용이 하늘로 올라간 큰 연못이 있다 하여 얻은 이름이다. 옛날에 맹사성이 이곳에 와서 낚시질을 하다 용이 하늘로 승천하는 것을 보고 ‘비룡소’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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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에 속한 법정리. 용포리는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에 있는 법정리이다. 행정리로는 용포1·2·3·4·5·6리가 있다. 1946년 큰 장마로 인하여 대평리(大平里)가 강으로 변하자 대평리 주민들이 용포리로 옮겨오는 동시에 시장도 함께 옮겨져서 그대로 대평장(大平場)이란 시장이 섰다. 금남면의 행정 중심 마을이다. 용포리(龍浦里)는 계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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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에 속한 법정리. 용호리 명칭은 용(龍)이 호수(湖) 속에서 노는 형상에서 유래한다. 마을 뒷산의 산세가 용(龍)같이 생겼고 용산(龍山)이 미호천을 감싸면서 노는 형국이라는 것이다. 용호리에는 불암, 상룡, 중룡, 하룡, 소정이, 구대 등의 자연 마을이 있었다. 불암마을은 노적산 동북쪽에 있던 마을로, 부자가 많이 거주하여 부래미라고도 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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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공정을 시조로 하고 이상을 입향조로 하는 세종 지역의 세거 성씨. 세종특별자치시의 우봉이씨(牛峰李氏)는 감찰공파(監察公派) 이상(李翔)[1620~1690]이 17세기 중엽에 전의현[현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관정리]에 입향하여 거주하기 시작하였다. 우봉이씨의 원조는 신라 때 공신이 된 이두창(李頭昌)으로 알려져 있으나 그 후 후손에 대한 기록이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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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송용리에 있는 조선 후기 결성장씨 문중 서당. 육영재(毓英齋)는 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결성장씨(結城張氏) 문중에서 1600년대에 건립한 것으로 추정되는 서당으로, ‘송동서숙(松東書塾)’, ‘송동숙(松洞塾)’, ‘송남서당(松男書堂)’ 등으로도 불린다. 결성장씨 문중의 전언에 의하면 장훈(張訓)이 그의 세 동생과 함께 송곡리에 정착한 후 서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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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에 속한 법정리. 마을의 넓은 들판에 먹이를 찾아 매가 많이 날아와 서식하였으며, 마을 뒷산의 큰 바위에 매가 앉아 있다고 하여 매바위·응암(鷹岩)으로 불리었다. 응암리에는 매바위, 높은정이, 노곡, 가마골 등 자연 마을이 있다. 매바위마을은 매 모양의 지형에 매가 많아서 붙은 명칭으로, 응암이라고도 한다. 높은정이마을은 매바위 북쪽의 높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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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세종 지역 출신의 효자. 이정환(李廷煥)[1604~1671]의 자는 휘원(輝遠)이고, 호는 송암(松岩)이다. 무오사화 때 화를 입은 한재(寒齋) 이목의 5세손이다. 이정환은 1633년(인조 11)에 생원이 되었다. 병자호란의 국치를 통분히 여겨 외출을 삼가며 비가(悲歌) 10수를 지었다. 특히 효행이 남달라 부모상을 당하여 6년간 시묘살이를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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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선무를 시조로 하고 채승을 입향조로 하는 세종 지역의 세거 성씨. 채선무를 시조로 하고 채승(蔡昇)을 파조로 한 인천채씨 참의공파(參議公派)가 1300년대 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문주리에 입향하였다. 이후 후손들이 합강리로 옮겨 정착하였고 집성촌을 이루며 일가를 형성하였다. 인천채씨 시조 채선무는 고려시대 동지사(同知事)를 지내고 동지추밀원사(同知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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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세종 지역 출신의 효자. 임수준(林秀俊)[1810~1875]은 본관이 부안이고 자는 사민(士民), 호는 소재(素齋)이다. 임수준은 어려서부터 성품이 온화하고 효성이 지극하였다. 6세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3년간 상복을 입고 죽으로 연명하였으며, 머리카락도 자르지 않았다. 임수준은 학문도 뛰어나 벼슬에 오르기도 하였지만 사직 후 낙향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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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세종 지역 출신의 효자. 본관은 부안이다. 아버지는 임시무, 어머니 진주정씨[1709~1782]는 정세평의 딸이다. 임양문(林養文)[1744~1810]은 성격이 온량(溫良)[성품이 온화하고 무던함]하고 청명(淸明)[깨끗하고 선명함]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6~7세에 『효경』과 『소학』을 배워 어버이 섬김에 효성이 지극해서 아침저녁으로 문안드리는 것이 어른과 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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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세종 지역 출신의 형제 효자. 본관은 부안(扶安)이다. 아버지는 임상담(林尙談), 어머니는 경주최씨이다. 고려 후기 무신 임난수(林蘭秀)의 후손이다. 임자의(林自儀)[1672~1717]와 임태선(林太先)[1675~1720]은 형제이다. 형제는 어릴 때 부친상을 당하여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다. 임자의·임태선 형제는 어린 나이에도 효성이 지극하였으며, 형제간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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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부터 1598년까지 현 세종특별자치시를 비롯해 조선 전역에서 일어난 일본과의 전쟁. 1592년 4월 일본은 20만 명의 대규모 병력으로 조선을 침략하였다. 육군 병력으로는 15만 8700명이나 되는 대군이 동원되었다. 일본군은 부산에 상륙하자 파죽지세로 북상하여 18일 만에 서울을 점령하고 두 달 만에 평양과 함경도 지방까지 유린했다. 하지만 전국 팔도 곳곳에서 의병과 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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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호서지역 낙론의 대가 중 한명으로, 세종 지역에서 활동한 학자. 임헌회(任憲晦)[1811~1876]의 자는 명로(明老), 호는 고산(鼓山)·전재(全齋)·희양재(希陽齋)이다. 유학의 거두로 유림의 추앙을 받은 인물이다. 조선 후기 문신이자 학자로, 경서(經書)에 몰두하여 이름이 알려지면서 관직에 나아가 이조참판과 대사헌 등을 지냈으나 충청남도 연기군 남면 방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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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장군면에 있는, 정종 10남 덕천군 이후생의 후손이 이거·정착한 집성촌. 세종특별자치시 장군면의 전주이씨 덕천군파는 덕천군(德泉君)이후생(李厚生)[1397~1465]의 후손들이다. 덕천군은 정종의 10남으로, 덕천군파가 세종특별자치시 장군면 일대에 자리를 잡게 된 것은 공주·연기 일대에 덕천군의 전장(田莊)[개인이 소유하는 논밭]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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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세종특별자치시 장군면에 세거한 전주이씨 덕천군파 집성촌. 세종특별자치시와 공주시 일대에 거주하는 덕천군파는 전주이씨 100여 파 중 가장 번성한 문중이다. 장군 덕천군사우가 있는 세종특별자치시 장군면 태산리를 중심으로 덕천군의 부조묘와 묘소에서의 제향 의례와 용현리의 동계 문서가 전한다. 전주이씨 덕천군파 동족 조직 문서로는 용현리의 동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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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경을 시조로 하고 황첩을 입향조로 하는 세종 지역의 세거 성씨. 황경(黃瓊)을 시조(始祖)로 하고 황첩(黃堞)을 입향조로 하는 장수황씨는 1500년대 초반 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명학리에 입향한 이래 지금까지 집성촌을 이루며 살고 있다. 시조 황경은 통일신라 경순왕의 사위로, 시중(侍中)을 지냈다 한다. 이후 중간 계대가 실전되어 황석부(黃石富)를 1세조로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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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세종 지역 출신의 열녀. 언양김씨는 장응헌(張應軒)의 부인으로, 남편은 결성장씨이다. 언양김씨는 병자호란에 적병에게 끌려가는 것에 저항하여 은장도로 자결한 열녀이다. 일설에 의하면 적병에게 쫓기다가 스스로 강에 뛰어들어 익사한 열녀라고도 한다. 장응헌 처 언양김씨의 아버지는 첨정(僉正) 김징(金澄)이다. 『여지도서』, 『충청남도읍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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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세종 지역 출신의 효부이자 열녀. 장이상(張彛相)[1816~1884]의 부인 한양조씨는 장이상에게 출가하여 시조모를 극진히 봉양하였고, 시어머니의 두 차례 병환에 모두 약을 구해 드려 병환을 낫게 하였다. 남편이 노환으로 숨지자 식음을 전폐하고 6일 만에 세상을 떠난 효부이자 열녀이다. 장이상 처 한양조씨의 아버지는 조우규(趙禹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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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에 속한 법정리. 장재리는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에 있는 법정리이자 행정리이며, 자연마을로는 질재와 장절골이 있다. 세종특별자치시 홈페이지에 따르면 장재리는 동네가 길쭉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장수하는 마을이라 소개하고 있다. 『한국지명총람』에서는 뒷산에 장절[長寺]이란 절이 있으므로 장절골 또는 장재라 하였으며 장재리에 3기의 고인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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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세종 지역 결성장씨 연기파의 입향조이자 학자. 장훈(張訓)[1568~1609]의 호는 노초(老樵)이며, 통훈대부헌릉직장(通訓大夫獻陵直長)을 지냈다. 결성장씨 연기파의 입향조이다. 장훈이 어떠한 이유로 송용리 일대로 이거(移居)[본래 살던 집에서 다른 집으로 거처를 옮김]하였는지 정확한 사실을 확인할 수 없다. 그러나 장훈이 이거한 후 결성장씨(結城張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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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세종 지역 출신의 동서지간 열녀. 창녕성씨(昌寧成氏)와 결성장씨(結城張氏)는 옥천전씨 집안으로 출가한 동서지간으로, 남편과의 의와 지조를 지키기 위하여 자결한 이열부이다. 창녕성씨[?~1735]는 전오복(全五福)과 혼인하였다. 남편 전오복이 1735년(영조 11)에 죽자 뒤를 따라 자결(自決)[의분을 참지 못하거나 지조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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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서 근대기에 활동하며 세종특별자치시 연기면 세종리의 덕성서원에 배향된 학자. 전우(田愚)[1841~1922]의 자는 자명(子明), 호는 구산(臼山)·추담(秋潭)·간재(艮齋)·고옹(蠱翁)·양하왕인(陽下尫人)이다. 초명은 경륜(慶倫)·경길(慶佶)이다. 21세에 당시의 거유(巨儒|鉅儒)[뭇사람의 존경을 받는 이름난 유학자] 신응조(申應朝)의 권유로 서울에서 직접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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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양곡리에 세거한 안동김씨 집성촌. 세종 지역 입향의 중심인 안동김씨 전서공파의 시제와 종회의 조직과 운영을 살펴보고 절차를 통하여 전통적인 세종 지역의 동족 마을 모습을 엿본다. 안동김씨 전서공파의 시제는 전동면 미곡리 학당이 산소에서 매년 음력 10월 초정일에 지낸다. 제사는 제일 먼저 학당이 묘소 위쪽에 있는 산제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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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와 조선시대 충청도 전의현에 토착하고 있던 씨족 집단의 성씨. 『세종실록지리지』에 의하면 조선 전기 전의현의 토성(土姓)으로 이(李)·유(兪)씨가 있고 망성(亡姓)으로 하(河)씨, 차성(次姓)으로 전(全)씨가 각각 수록되어 있다. 『세종실록지리지』 전의현 토성의 수위에 기록되어 있는 이씨는 전의이씨를 지칭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인물조에는 전의이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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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을 시조로 하고 이원룡, 이몽경, 이운망 등을 각각 입향조로 하는 세종 지역의 세거 성씨. 이한(李翰)을 시조(始祖)로 하는 전주이씨는 1500년대 이후 세종특별자치시 전 지역에 흩어져 살며 집성촌을 형성하여 왔고, 조선의 번성과 함께 지속적으로 성장하여 세종 지역의 유력한 성씨가 되었다. 전주이씨는 전라북도 전주에서 대대로 살아온 토착 성씨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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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세종 지역 출신의 효자. 정대권(鄭大權)[1850~1902]의 본관은 진주이다. 충장공 정분(鄭苯)[?~1454]의 15세손이며, 아버지는 정원룡(鄭元龍)이다. 정대권의 아들 정헌세(鄭憲世)와 정헌채(鄭憲采)는 중추원의관을 지냈고, 정헌빈(鄭憲斌)은 전의 문묘 직원을 지냈다. 정대권은 9세에 부친상을 당하여 여막(廬幕)[무덤 가까이에 지어 놓고 상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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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도를 중시조로 하고 박민헌을 입향조로 하는 세종 지역의 세거 성씨. 박민헌(朴敏獻)을 입향조로 하는 정선박씨 제학공파(提學公派)가 세종특별자치시 전동면 송정리에 정착한 이래 사장골 박가라고 불리며 일가를 이루어 살아오고 있다. 정선박씨 족보에 의하면 정선박씨는 박혁거세(朴赫居世)를 시조로 하고 밀성대군 박언침(朴彦忱)의 후손인 박도(朴塗)를 중시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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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세종 지역 출신의 효자. 정원룡(鄭元龍)[1812~?]의 본관은 진주이며, 충장공 정분(鄭苯)의 14세손이다. 부인은 윤제규(尹濟奎)의 딸 파평윤씨(坡平尹氏)[1811~?]이며, 아들은 정대권(鄭大權)[1850~1902]이다. 정원룡의 부친은 외출하면 항상 저녁 무렵에 돌아왔다. 사는 곳이 산골인 까닭에 아버지께서 귀가할 때가 되면 정원룡이 마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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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을나를 시조로 하고 고여우를 입향조로 하는 세종 지역의 세거 성씨. 고을나(高乙那)를 시조(始祖)로 하고 고여우(高汝雨)를 입향조로 하는 제주고씨 문충공파(文忠公派)가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다방리에 정착한 이래 집성촌을 이루며 살고 있다. 제주고씨는 탐라(耽羅) 개국 설화에 나오는 고을나를 시조로 한다. 시조의 46세손 고말로(高末老)는 고려에 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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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세종 지역에 묘를 쓴 문신이자 양주조씨 입향조. 조계원(趙啓遠)[1592~1670]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병자호란 당시 군량을 보급하고 볼모로 심양(瀋陽)에 가 있던 소현세자(昭顯世子)를 보좌하였던 인물이다. 후손들의 전언에 따르면 1674년(현종 15)에 충청도관찰사로 부임하면서 현재의 세종특별자치시 전동면 송정리와 인연을 맺었고 첫째 아들인 조진석이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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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세종 지역 출신의 형제 효자. 조수빈(趙秀彬)[1745~1824]과 조명빈(趙命彬)[1749~1832]은 조말생의 12세손으로, 아버지는 조태연(趙泰衍)이다. 조수빈과 조명빈은 형제로 둘 다 효성이 지극하였다. 조수빈이 7세 때 어머니가 병이 들자 치료에 필요한 약을 백방으로 구해서 치료하였고, 형제가 손가락을 잘라 피를 어머니께 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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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세종특별자치시 조치원읍 봉산리에 세거한 강화최씨 집성촌. 강화최씨 집성 마을로, 최완[1510~1570]이 기묘사화를 피하여 이거·입향한 뒤 500여 년 동안 8대에 걸쳐 15명의 효자와 열부를 배출하는 등 동족 조직이 강한 특별한 마을이다. 숭모단 제향(祭享)[제사]과 시제(時祭)[음력 10월에 5대 이상의 조상 무덤에 지내는 제사],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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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에 속한 법정동. 종촌동은 이전의 종촌리 지명을 유지한 명칭으로, 낮은 산등성이가 있다고 해서 밀마루, 종촌(宗村)으로 불리다가 장터로 통일하여 부르기도 하였다. 종촌동은 가재 마을로도 불리는데, 이는 종촌동 지역의 고유어 전래명칭 가운데 가재골을 활용한 것이다. 고정리에 위치한 가재골은 마을의 중심에서 한쪽 가장자리에 있는 골짜기를 의미한다. 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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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방준를 시조로 하고 안제세를 입향조로 하는 세종 지역의 세거 성씨. 안방준(安邦俊)을 시조로 하고 안제세(安濟世)[1582~1642]를 입향조로 하는 죽산안씨는 1600년대 전후 입향한 이래 후손들이 세종특별자치시 연기면 눌왕리에 집성촌을 이루어 살고 있다. 죽산안씨는 계파를 달리하는 구(舊) 죽산안씨와 신(新) 죽산안씨 두 파가 있다. 구 죽산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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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세종 지역 출신의 학자. 진시책(陳時策)[1831~1906]은 경서(經書)와 사기(史記)에 능통하고 역학(易學)에 특히 통달한 인물로, 개항기 고종에 의하여 ‘거사(居士)’라 호칭된 학자이다. 진시책은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 반곡리에서 출생하였다. 본관(本貫)은 여양(驪陽), 호는 위정(葳汀)이다. 진시책은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재주가 뛰어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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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진을 시조로 하고 하왕을 입향조로 하는 세종 지역의 세거 성씨. 하진(河珍)을 시조로 하고 하왕(河瀇)[?~1425]을 입향조로 하는 진양하씨는 세종특별자치시 연기면 연기리와 누리리에 입향한 이래 600여 년 동안을 살아오고 있다. 진양하씨는 삼한시대부터 있었던 성씨라 하나 확실한 연원은 알 수 없다. 고려시대에 와서 하공진(河拱辰)을 시조로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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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이식을 시조로 하고 강은재를 입향조로 하는 세종 지역의 세거 성씨. 강이식(姜以式)을 시조로 하고 강민첨(姜民瞻)을 중시조로 하는 진주강씨 은열공파(殷烈公派) 후손이 1400년대 초반 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용호리에 입향한 이래 600년 동안 세거하면서 진주강씨 집성촌을 형성하였다. 진주강씨는 고구려 때 병마도원수를 지내며 공을 세운 강이식을 시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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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예를 시조로 하고 정윤필, 정업중을 각각 입향조로 하는 세종 지역의 세거 성씨. 세종특별자치시의 진주정씨는 15세기 후반 충장공파의 정윤필이 전의현[현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영당리]에 입향하여 세거하고 있으며 16세기 후반에는 연일파의 정업중이 연기현[현 세종특별자치시 남면 연기리]에 입향하여 세거하고 있다. 진주정씨(晋州鄭氏)의 원류는 신라 6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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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영당리에 있는 진주정씨 4인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개항기에 세운 정려. 진주정씨 사효 정려는 진주정씨(晉州鄭氏) 정원룡(鄭元龍)[1812~?]과 정원룡의 아들 정대권(鄭大權)[1850~1902], 정원룡의 처인 효부 파평윤씨(坡平尹氏)[1811~?], 정원룡의 손부인 열녀 한산이씨(韓山李氏)까지 모두 네 사람의 효열 행적을 기리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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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세종 지역 출신의 열녀. 진회현 처 김해김씨는 16세 어린 나이에 반곡리 진회현에게 출가한 후 18세에 남편과 사별하였다. 남편을 따라 자결(自決)[스스로 목숨을 끊음]하려 하였으나 유복자(遺腹子)[태어나기 전에 아버지를 여읜 자식]가 있어 실행하지 못하였다. 이후 출산한 아들을 훌륭하게 기른 열녀이다. 김해김씨는 16세 되던 해인 1917년에 반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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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보를 시조로 하고 성희, 성중의, 성한취를 각각 입향조로 하는 세종 지역의 세거 성씨. 세종특별자치시의 창녕성씨는 금남면 달전리에 회곡공파 성희가 15세기 중엽, 연서면 와촌리에 동고동파 성중의가 15세기 후반, 연동면 내판리에 상곡공파 성한취가 18세기 중엽에 각각 입향하여 세거해 오고 있다. 창녕성씨(昌寧成氏)는 고려시대 호장(戶長)을 지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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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충준을 시조로 하고 황신을 기세조로 하며 황박, 황귀하를 각각 입향조로 하는 세종 지역의 세거 성씨. 세종특별자치시의 창원황씨는 전의면 읍내리에 전첨공파 황박이 16세기에, 연기면 연기리에 부사공파 황귀하가 18세기에 각각 입향하여 세거하고 있다. 창원황씨(昌原黃氏)는 본관(本貫)을 같이하면서도 계보(系譜)[족보]를 달리하는 세 파가 있다. 고려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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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세종 지역 출신의 효자. 채관형(蔡觀亨)[1751~1817]의 아버지는 채문백(蔡文伯)이고, 어머니는 안동김씨 김만성(金萬成)의 딸이다. 채관형은 5세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어머니와 함께 가난하게 살았다. 그러던 중 어머니가 병으로 눕게 되자 지성으로 간병하였으며, 달팽이가 치료에 좋다는 말을 듣고 눈 속에서 달팽이를 구해서 어머니에게 드렸다.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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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전동면 청람리에서 지명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청람리 지명」은 세종특별자치시 전동면 청람리가 푸른 산으로 둘러 있고 쪽빛 같은 펄이 있었다는 지명전설이다. 2011년 전동향토지발간추진위원회에서 발간한 『전동면지』와 2012년 연기문화원에서 발간한 『연기군 터전의 뿌리를 찾아서 2』에 수록되어 있다. 채록 상황은 기록되어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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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홍부를 시조로 하고 심한기, 심익도를 각각 입향조로 하는 세종 지역의 세거 성씨. 세종특별자치시의 청송심씨는 곡산공파 심한기가 17세기 소정면 대곡리에, 인수우윤공파 심익도가 18세기 금남면 석교리에 각각 입향하여 세거하여 오고 있다. 청송심씨(靑松沈氏)는 고려 충렬왕 때 문림랑(文林郞)으로 위위시승(衛尉寺丞)을 지낸 심홍부(沈洪孚)를 시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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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상을 시조로 하고 곽희태를 입향조로 하는 세종 지역의 세거 성씨. 세종특별자치시의 청주곽씨는 연기군 남면 고정리[현 세종특별자치시 고운동 일대]에 곽희태가 17세기 중엽에 입향하여 세거해 오고 있으며 후손들은 연기파라고도 불린다. 청주곽씨(淸州郭氏)의 시조(始祖)는 신라 헌강왕 때 시중을 지낸 곽상(郭祥)이다. 곽상의 후계 2대가 실전(失傳)[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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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요를 시조로 하고 사응헌을 입향조로 하는 세종 지역의 세거 성씨. 세종특별자치시의 청주사씨는 1600년대 후반 동면 내판리[현 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내판리]에 사응헌이 입향하여 거주하기 시작하였으며, 후손들은 연기파라고도 불린다. 청주사씨(靑州史氏)는 중국 산동성 청주 사람인 사요(史繇)를 시조로 하여 산둥성 청주를 관향(貫鄕)[시조(始祖)가 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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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기를 시조로 하고 양의홍을 입향조로 하는 세종 지역의 세거 성씨. 세종특별자치시의 청주양씨는 양의홍이 임진왜란을 피하여 연동면 노송리 가장곡(嘉壯谷)에 입향하여 거주하기 시작하였으며, 후손들은 연기파라고도 불린다. 청주양씨(淸州楊氏)는 중국에서 시작된 성씨로 시조는 후한(後漢) 양진(楊震)의 43세손인 양기(楊起)이다. 양기는 원나라 사람으로 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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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란을 시조로 하고 한우, 한필적을 각각 입향조로 하는 세종 지역의 세거 성씨. 세종특별자치시의 청주한씨는 청주와 인접한 지역에서 터를 잡아 살고 있다. 정당공파(政堂公派)로 한충의 손자인 한우가 1600년대 초에 전동면 심중리에 입향하고, 문정공파(文靖公派)인 한필적이 동면 응암리에 입향하면서 정당공파와 문정공파들이 청주 지역에 다수 거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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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에 속한 법정리. 축산리는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에 있는 법정리이다. 자연마을 느실, 궝말, 안봉천 등이 있다. 축산리는 수리산 밑에 있는 마을로 예전에는 독수리 취(鷲)자를 써서 ‘취산’이라 하다가 일제강점기부터 소 축자를 써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한국지명총람』에서는 축산리[취산, 축산]에 대해 뒤에 수리산이 있어 한자로 옮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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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서정리에 있는 홍직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조선 후기에 세운 정려. 충신 홍직 정려는 남양홍씨 홍직(洪稙)[1571~1637]의 충절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것이다. 홍직의 자는 치경(稚卿)이고, 부친은 연기 지역 남양홍씨 입향조인 홍익청(洪翼淸)이다. 홍익청은 고려조 태사(太師) 홍은열(洪殷悅)의 후손으로, 기묘명현(己卯名賢)으로 이조판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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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신달을 시조로 하고 윤려, 윤기환, 윤해를 각각 입향조로 하는 세종 지역의 세거 성씨. 세종특별자치시의 파평윤씨는 연서면 봉암리에 태위공파 윤기환, 전의면 신정리에 소정공파 윤해, 장군면 하봉리에 윤려 등이 입향하여 후손들이 세거하게 되었다. 파평윤씨(坡平尹氏)의 시조 윤신달(尹莘達)은 왕건을 도와 후삼국을 통일하는 데 공을 세워 고려 개국공신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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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숭겸을 시조로 하고 신준미를 입향조로 하는 세종 지역의 세거 성씨. 세종특별자치시의 평산신씨는 사간공파 신준미가 1519년 현량과에 급제하였으나 기묘사화가 발발하자 공주로 낙향하여 금남면 영곡리에 거주하였고 이후 후손들이 세거하게 되었다. 평산신씨(平山申氏)의 시조 신숭겸(申崇謙)의 본래 이름은 삼능산(三能山)이며 전라도 곡성(谷城) 출신이다. 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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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팔급을 도시조로 하고 임견미를 시조로 하며 임승번과 임승렬을 입향조로 하는 세종 지역의 세거 성씨. 세종특별자치시의 평택임씨는 임승번, 임승렬 형제가 전라도 옥구를 떠나 연서면 기룡리와 연기면 연기리에 입향하였다. 평택임씨(平澤林氏)는 840~900년경 정치적 화를 피해 당(唐)나라에서 신라로 건너온 여덟 명의 한림학사 중 한 명인 임팔급(林八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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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연기면에 속한 법정리. 한별은 큰 별을 의미하는 한글 명칭으로, 큰 별처럼 푸르고 아름다운 주거단지를 상징한다. 한별리는 둔지미 마을로도 불린다. 둔지미는 ‘둔전으로 부치던 밭이 있는 마을’에서 유래했다. 삼국시대에는 백제의 두잉지현, 신라시대 경덕왕 때는 연산군, 조선 전기에는 연기현에 속하였다. 조선 후기에는 연기군 군내면 지역이었고 1914년에는 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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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경을 시조로 하고 이계린을 파조로 하며 이여출을 입향조로 하는 세종 지역의 세거 성씨. 세종특별자치시의 한산이씨(韓山李氏)는 호장공계의 공무공파 이여출이 17세기 중엽 세종 지역 눌왕리에 입향하여 후손들이 거주하기 시작하였다. 한산이씨는 이곡의 5대조인 이윤경을 시조로 하는 호장공계(戶長公系)와 이한의 5대조인 이윤우[본래 광주이씨 후손]를 시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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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에 속한 법정동. 과거에 송원리는 큰 소나무의 군락지였다. 한솔동은 송원리의 소나무를 연계하여 만든 한글 명칭으로 큰 소나무와 같이 곧고 푸른 도시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세종특별자치시 출범 당시 한솔동은 단 하나뿐인 최초의 행정동이었기 때문에 첫마을이라고도 불린다. 삼국시대에는 백제의 두잉지현과 웅천, 고려시대에는 공주목과 청주목, 조선시대에는 연기현에 속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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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에 속한 법정동. 합강동은 미호천과 금강(錦江)이 합류하는 지점에 있다고 해서 합강(合江)이라는 명칭이 생겨났다. 삼국시대에는 백제의 두잉지현, 고려시대에는 청주목, 조선시대에는 연기현에 속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연기군 동면에 편입되었다. 2012년 7월 세종특별자치시가 출범하면서 충청남도 연기군 동면 합강1리, 용호3리 일부가 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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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에 속한 법정동. 해밀동은 비가 온 뒤 맑게 갠 하늘이 있는 주거지역을 가리키는 한글 명칭이다. 해밀동은 올목마을로도 불리는데, 해밀동 지역의 고유어 전래 명칭 가운데 올목 고개를 활용한 것이다. 갈운리에 있는 올목 고개는 오리 목처럼 생겨 중요하고 좁은 곳을 의미한다. 해밀동 지역에는 원사골마을·양지말마을·김새마을 등의 자연 마을이 있었다. 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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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인유를 시조로 하고 오백안을 입향조로 하는 세종 지역의 세거 성씨. 세종특별자치시의 해주오씨는 문양공파인 오백안이 1600년대에 소정면 소정리에 입향하였다. 해주오씨(海州吳氏)는 오인유(吳仁裕)를 시조로 하는 경파와 오현보(吳賢輔)를 시조로 하는 향파의 두 계통이 있다. 오인유는 중국 송(宋)나라의 대학사(大學士)로 984년(성종 3년) 고려에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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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군정을 시조로 하고 윤승임을 입향조로 하는 세종 지역의 세거 성씨. 세종특별자치시의 해평윤씨는 문영공파에 속하는 남원공파의 윤승임이 1600년 즈음에 연동면 예양리에 입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윤승임의 5대조 윤제가 세조의 계유정변 때 난신(亂臣)[나라를 어지럽히는 신하]으로 연좌(緣座)되어 안치(安置)[조선시대에 먼 곳에 보내 다른 곳으로 옮기지 못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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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에 속한 법정리. 호탄리는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에 있는 법정리로 조선시대 창고가 있어 동창이라고도 불렀다고 한다. 호탄리 지명에서 호(壺)자를 쓰는 것은 마을 입구의 형태가 병의 목처럼 생겨서 붙은 이름이다. 탄(灘) 자는 예전에 금강이 마을 입구로 흘렀는데 여울져 흘렀다 하여 병처럼 생긴 여울이란 의미로 ‘호여울[호려울]’ 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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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명학리에 있는 조선 후기 홍보의 신도비. 홍보(洪靌)[1585~1643]의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여시(汝時), 호는 월봉(月峰), 시호는 경헌(景憲)이다. 1585년 당시 형조좌랑을 지내던 홍난상(洪鸞祥)[1553~?]과 능성구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1609년(광해군 1) 진사시에 합격하고 한성부 참군 등을 지낸 후 1615년(광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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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세종 지역 출신의 문신. 홍억(洪檍)[1722~1809]은 조선 후기 한성부판윤, 공조판서, 지중추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홍억의 할아버지는 호조참판 홍숙(洪璛)이다. 아버지는 충청도관찰사 홍용조(洪龍祚)이며 어머니는 이창령(李昌岭)의 딸이다. 홍억은 1753년(영조 29) 알성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지평으로 관직에 나가 전적, 정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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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이괄의 난을 진압한 공적이 있는 세종 지역 출신의 무신. 홍직(洪稙)[1571~1637]은 조선시대 무신으로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치경(稚卿)이다. 무예에 출중하여 1602년(선조 35)에 별시 갑과에서 장원으로 급제하였으며, 청백리(淸白吏)로 이름난 인물이다. 홍직은 이괄의 난을 진압하였다. 정묘호란 때는 적을 사로잡는 공(功)을 세웠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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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세기를 시조로 하고 최은을 입향조로 하는 세종 지역의 세거 성씨. 세종특별자치시의 화순최씨는 부정공파인 직장공 최은이 1400년대 후반에 금남면 도암리에 입향하였다. 화순최씨는 도암리에 집성촌을 형성하고 있으며 성덕리, 신촌리, 금천리와 인근의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봉암리 등에도 거주하고 있다. 화순최씨의 시조 최세기(崔世基)는 고려 때 평장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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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에 속한 법정리. 황용리는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에 있는 법정리다. 황용1리에는 동고지와 넝미, 황용2리에는 서복과 당미 그리고 대지동 등 마을들이 있다. 조선 후기에는 공주군 명탄면의 명당이 있다 해서 풍수설에 따라 ‘동고지’, ‘둥그지’ 또는 ‘황용(黃龍)’이라 불렀다 한다. 『한국지명총람』에서는 마을 뒷산에 황룡도하형(黃龍渡河形)의 명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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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윤보를 시조로 하고 황석남을 입향조로 하는 세종 지역의 세거 성씨. 세종특별자치시의 회덕황씨는 세마공파의 황석남이 1600년대에 역모 사건에 연루되었다가 풀려난 후 처향(妻鄕)[아내의 관향(貫鄕)]이면서 당시에는 충청북도 청주시 땅이었던 소정면 소정리에 입향한 것으로 추측된다. 후손들이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풍세면과 충청남도 아산시 신창면에도 거주하고 있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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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 발산리에 있는 강협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개항기에 세운 정려. 효자 강협 정려는 강협(康協)[1674~1750]의 효행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되었다. 강협이 사망한 지 150여 년이 지난 1905년(광무 9)에 장예원경(掌禮院卿) 조정희(趙定熙)와 진사 장철상(張喆相) 등의 발론으로 명정을 받아 현 위치에 건립되었다. 강협은 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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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내판리에 있는 김백열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일제강점기에 세운 정려. 효자 김백열 정려는 김백열(金百悅)[1816~1868]의 효행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한 것이다. 김백열은 본관이 안동, 자는 여행(汝行)이다. 김방경의 현손이며, 고려 후기 공양왕 대에 삼사(三司) 우사(右使)를 지내고 이성계를 적극적으로 도와 개국 1등 공신으로 태종 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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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소정면 고등리에 있는 김충열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조선 후기에 세운 정려. 효자 김충열 정려는 1665년(현종 6)에 효자 명정을 받은 김충열(金忠烈)[1584~1668]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되었다. 김충열은 본관이 강릉이며, 호는 왕호(王壺) 또는 운봉(雲峯)이다. 김충열은 전의현 입향조인 김승로(金承露)의 9대손이며, 김장생의 문하인 김해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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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연기면 세종리에 있는 임수준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개항기에 세운 정려. 효자 임수준 정려는 부안임씨 임수준(林秀俊)[1810~1875]의 효행을 기리기 위하여 1904년에 명정을 받아 건립되었다. 임수준은 본관이 부안(扶安)이고 자는 사민(士民)이며, 호는 소재(素齋)이다. 1810년(순조 10) 충청도 연기군 남면 월산리에서 태어난 임수준은 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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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용호리에 있는 임양문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개항기에 세운 정려. 효자 임양문 정려는 부안임씨 임양문(林養文)[1744~1810]의 효행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되었다. 임양문은 1744년(영조 20) 용호리에서 임시무(林時茂)와 정세평(鄭世枰)의 딸 진주정씨(晋州鄭氏)[1709~1782] 사이에서 태어났다. 형인 임양조(林養祚)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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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유를 시조로 하고 장경지를 입향조로 하는 세종 지역의 세거 성씨. 세종특별자치시의 흥성장씨는 흥덕장씨라고도 불리며, 감사공파의 장경지가 15세기 초에 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 와촌리에 입향하였다. 와촌리의 번암동은 한때 ‘장씨촌’이라고 불릴 정도로 흥성장씨들이 집성촌을 이루었다. 후손들이 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노송리에도 거주하고 있다. 흥성장씨(興城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