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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101429
한자 安東權氏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경기도 성남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문수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세거지 수정구 금토동|분당구 금곡동 쇳골[金谷]

[정의]

경기도 성남시에 세거하는 성씨의 하나.

[유래]

성남시 수정구 금토동 안말[내둔토리(內屯土里)]은 조선 초의 대학자 권근(權近)의 손자이고 권제(權踶)[1387~1445]의 아들인 안양공(安襄公) 권반(權攀)[1419~1472]이 무진정(無盡亭)을 짓고 유람하던 곳이었다. 권반이 세조 12년(1466) 예조참판 겸 경기도관찰사를 겸직할 때 장자인 충훈부 도사 권괄(權佸)이 죽자 장지를 구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세조가 그 사정을 듣고 광주 월천(月川) 청계산 아래를 하사하였다. 그로 인해 이곳이 권씨의 세거지가 되었다.

[세거지]

성남시 수정구 금토동 안말은 이곳에 안동권씨의 장지를 정한 이래 권씨의 세거지가 되었다. 또한, 분당구 금곡동 쇳골[금곡(金谷)]은 참의공파 권선한(權善漢)[1942년생]의 13대조인 권득기가 처음 정착한 이래 후손이 세거하여 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전해진다. 권득기는 산장 등을 사이에 두고 있는 궁내동 귀성군 이첨(李瞻)의 사위가 된 연유로 쇠골에 배포하게 되었다고 한다. 귀성군은 외손 권심이 봉제사를 하였는데 권심권득기의 3남이다. 금곡동 일대의 권씨네 땅은 원래 궁내동 전주이씨의 사패지였는데 권씨네에게 주었다고 한다.

[인물]

권반의 손자로 금토동에 최초로 정착한 권우(權愚)는 원주목사를 지내고, 아들이 3형제인데, 권굉(權硡)은 화성군이요, 권확(權確)은 판서이고, 권금(權䃢)은 승지였다. 권굉의 장남 권긍(權兢)[1527~1617]은 충좌위 대호군, 3남 권징(權徵)[1538~1598]은 관직은 공조판서, 시호는 충정이었으며, 후손이 대대로 현달하였다.

한편, 분당구 금곡동 쇳골[금곡(金谷)]에 처음 정착한 권득기(權得己)[1570~1622]는 공조참의 권령(權齡)의 현손으로 이조판서를 지낸 권극례(權克禮)의 아들이다. 그는 고산도 찰방을 사임하고 야인으로 세상을 떠났는데 『만회집(晩晦集)』, 『연송잡기(然松雜記)』를 남겼다. 아들이 5형제인데 장남 권적은 함창현감, 권심은 송라찰방, 권시(權諰)는 여러 관직을 거쳐 한성좌윤에 임명되었으나 사양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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