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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102123
한자 崔起南墓-神道碑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비
지역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오야동 산3-1[대왕판교로 1301]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김주홍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묘역
양식 원형 합장분
관련인물 최기남
높이 0.9m
지름 5.5m
소재지 주소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오야동 산3-1[대왕판교로 1301]지도보기

[정의]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오야동에 있는 최기남의 묘 및 신도비.

[개설]

최기남[1559~1619]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전주, 자는 여숙(與叔), 호는 만곡(晩谷), 만옹(晩翁), 양암(養庵)이다. 최수준(崔秀俊)의 아들이며, 병자호란 당시 주화론을 주장한 영의정 최명길(崔鳴吉)의 아버지이다. 1585년(선조 18) 사마시에 합격하여 성균관에서 수학하던 중 호남의 선비들이 왕의 뜻에 거슬러 하옥되자 소두(疏頭)가 되어 수차례의 상소로 이들을 석방시키는 데 앞장섰다. 1591년(선조 24) 정철(鄭澈)의 건저문제(建儲問題)로 서인이 실각당할 때 이에 연좌되어 대과에 응시할 자격을 잃었다가 1600년(선조 33)에 비로소 왕자사부(王子師傅)가 되었다. 1602년 알성문과 병과로 급제하여 성균관전적을 보임 받았다가 병조좌랑에 올라 지제교(知製敎, 왕의 교서를 작성하는 일)에 선발되었다. 광해군 즉위 후 사현부 장령, 홍문관 교리를 거쳐 황해도 암행어사와 영흥부사를 지냈으나, 1613년(광해군 5) 계축옥사에 연루되어 삭직되자 향리에 은둔하였다. 후에 아들 최명길의 인조반정 훈공(勳功)으로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위치]

최기남의 묘 및 신도비는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오야동 산3-1[대왕판교로 1301]에 위치하여 있다.

[형태]

배위(配位) 정경부인(貞敬夫人) 전주유씨(全州柳氏)와의 합장묘인 원형의 봉분은 용미를 갖추고 있다. 봉분 중앙에 묘표, 상석, 4각 향로석, 동자석, 장명등이 있고, 상석 좌우로 8각 망주석과 금관조복형의 문인석 등 다수의 옛 석물을 갖추고 있다. 이 중 동자석은 소발에 두 손이 파손되어 있는데, 우측의 동자석은 목 부분이 파손되어 시멘트로 보수하였다. 문인석은 신체에 비례하여 얼굴이 갸름하다. 장명등은 화창이 없으며 높이 176㎝에 지붕높이가 74㎝이며, 한 면의 직경은 76㎝, 처마면은 15㎝로 두껍다.

[금석문]

묘표는 비좌와 일석(一石)의 비신 및 앞뒤 일월문(日月文)의 관석을 갖추고 있다. 비신의 비문은 앞뒤 양면에 있는데, 앞면에 세로 두 줄로 ‘贈領議政完興府院君崔公起南之墓 贈貞敬夫人全州柳氏祔(증영의정완흥부원군최공기남지묘 증정경부인전주유씨부)’라 새겨져 있다. 지붕돌[옥개석]은 앞면에 태양을 상징하는 직경 17㎝의 원문이 있고, 뒷면에는 달을 상징하는 직경 26㎝의 반원문이 양각되어 있다. 이렇듯 성남 지역에서 각종 묘비의 지붕돌에 일월문이 새겨지는 경우는 드믄 예로서 고등동 이함 신도비, 이경민 묘갈, 율동 한사개 묘갈 등에서 소수 확인된다. 비의 총 높이는 159㎝로, 비좌 높이 30㎝, 너비 93㎝, 두께 58㎝, 비신 높이 89㎝, 너비 52.5㎝, 두께 18㎝, 관석 높이 40㎝, 너비58㎝, 두께 25㎝이다.

신도비는 묘역 하단 밭 가운데에 동남향하여 있으며, 백색 화강암제의 비좌와 일석(一石)의 비신 및 이수를 갖추고 있다. 비좌는 대부분 땅속에 묻혀 있고 상부가 일부 노출되어 있는데, 상부에 복련문을 조식하였다. 비신은 백색 대리석제로 표면이 심하게 결락되어 있다. 비문은 앞뒤 양면에 있으며, 비신 앞면 상부의 전서(篆書)는 ‘贈領議政崔公神道碑銘(증영의정최공신도비명)’이다. 비문은 장유(張維)가 찬하고 김의신(金義信)이 서하였으며, 여이징(呂爾徵)이 전했다. 아울러 추기(追記)는 이경석(李景奭)이 하였다. 건립연대는 1654년(효종 5)이다. 이수는 발가락이 3개인 쌍룡(雙龍)이 좌우 입을 벌린 채 앞발을 치켜들어 여의주를 서로 움켜잡고 있는 모습을 조각하였는데, 후면도 같은 형태이다. 몸통의 비늘과 괴수, 뿔 등의 조각 수법이 사실적이다. 비의 총 높이는 183㎝로, 비좌 높이 12㎝, 너비 136㎝, 두께 80㎝, 비신 높이 165㎝, 너비 87㎝, 두께 32㎝, 이수 높이 66㎝, 너비 96㎝, 두께 42㎝이다.

[현황]

최기남 묘 및 신도비수정구 오야동 앞을 지나는 지방도 23호선[대왕판교로]과 인접한 나지막한 구릉에 동남향하여 있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3.03.11 [금석문] 수정 <변경 전> 아울러 추기(追記)는 아들 이경석(李景奭)이 하였다. <변경 후> 아울러 추기(追記)는 이경석(李景奭)이 하였다.
이용자 의견
관** 디지털성남문화대전을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해당 부분 확인 후 수정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2013.03.11
윤** 아울러 추기(追記)는 아들 이경석(李景奭)이 하였다. ????????????
최기남의 아들은 최명길인데 어찌 이경석이라고 했는지 오류가 있습니다
2013.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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