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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 초 상대원공단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109023
지역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상대원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장노현

궁씨가 중학생이었을 때 상대원공단은 활기가 넘쳤다. 아침 상대원 거리는 공단에 출퇴근하는 사람들로 넘쳐났다.

“공단에 출퇴근하는 사람들이 어마어마 했어요 그냥 뭐 봇 진짜 그야말로 뭐 봇물이라고 그러나 막 밀고 들어가는 그러고 다녔어요 샤니케잌 뭐 또 콘티빵 뭐 이런 때는 진짜 인구 많았었고. 또 상대원에 방이 웬만하면 방이 조금만 꾸며서 놔도 다 세가 나가고, 어릴 때 우리집이 농사를 짓고 그러니까 소도 키우고 그랬지 않습니까. 소 팔고 소 키우던 외양간 같은 게 비잖아요 방으로 꾸며 갖고 세도 놓고 하도 인제 사람들이 밀려들어 오니까. 그게 72년 3년 정도 되죠. 여기 철거민들 들어와서 개발되고 공단이 완전히 정리가 끝나고 공장이 들어오고 이럴 때니까.”

그때 그의 집은 지금의 공단오거리 근처였다. 원래는 총 열 가구 살던 조그만 동네였는데 공단이 들어서면서 마을이 없어져 버렸다. TV에서 가끔씩 고향이 없어진 수몰민 이야기가 나오지만, 궁씨는 자신도 수몰민과 다를 바 없다고 여겼다. 이러한 고향상실감은 그의 사진 작품에도 반영되었다.

“제가 판교 작품을 중점적으로 했던 이유 중의 하나는 판교는 나의 고향이다 생각하고 작업을 했던 데에요. 저는 원래 다큐멘타리 쪽에 관심 없어요. 화인아트 쪽 작업을 하는 사람인데. 근데 저쪽에 관심을 가졌던 거는 내 고향인데, 내가 정말로 옛날에 초등학교 때 봤던 그런 고향이 없어졌기 땜에 내가 작업을 했고. 그래서 판교라든가, 판교는 저의 친구들 많고, 그 친구들 도움 받아가면서 같이 작업을 하고 하면서 아 내 고향이다 그런 느낌으로 작업을 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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