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행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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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나 비석 등에 새겨진 글자. 혹은 새긴 글의 총칭. 오늘날 성남지역에 잔존하고 있는 금석문은 비(碑)와 마찬가지로 조선 전기부터 성남 각지에 정착하여 유력가문을 형성하였던 사대부들의 사후 음택(陰宅:무덤)에 세워져 있는 신도비(神道碑), 묘갈(墓碣), 묘표(墓表) 등의 각종 석비(石碑)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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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나 비석 등에 새겨진 글자. 혹은 새긴 글의 총칭. 오늘날 성남지역에 잔존하고 있는 금석문은 비(碑)와 마찬가지로 조선 전기부터 성남 각지에 정착하여 유력가문을 형성하였던 사대부들의 사후 음택(陰宅:무덤)에 세워져 있는 신도비(神道碑), 묘갈(墓碣), 묘표(墓表) 등의 각종 석비(石碑)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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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신이나 유골을 땅에 묻은 곳. 즉 무덤을 말한다. 분묘는 성남지역의 문화를 이해하는 데 있어 중요한 구성요소가 된다. 왜냐하면 이 지역이 조선시대에 수도 한양에 인접한 기전지역(畿甸地域)으로서 산세가 수려하고 길지가 많아 이 지역으로 이사하여 살아온 명문사대부들의 양택(陽宅:주택) 및 음택(陰宅:무덤)이 많이 조성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궁내동, 금토동, 고등동, 판교동, 수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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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금토동에 있는 윤극신의 묘. 윤극신[1527~1587]은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남원, 자는 백수(伯修)이고, 윤자신(尹自新)의 육촌 동생이다. 1576년(선조 9) 별시문과에 급제한 후 춘추관, 이조좌랑, 임천군수, 홍문관교리 등을 역임하였다. 특히, 임천군수 재직 시에는 학교를 세우고 어려운 이들을 구휼하여 칭송을 받았다. 사후에 좌찬성에 추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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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문신. 본관은 남원(南原). 자 여회(汝晦). 사간(司諫)을 지낸 윤시영(尹時英)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장사랑 윤징(尹澄)이고, 아버지는 임천군수(林川郡守) 윤극신(尹克新)이며, 어머니는 동몽교관 남견손(南堅孫)의 딸 고성남씨(固城南氏)이다. 성척(成惕)의 딸 창령 성씨와 결혼했고, 사헌(司憲) 집의(執義)를 지낸 윤형언(尹衡彦)의 아버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