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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100016
한자 交通遺蹟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수내동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최종윤

[정의]

도성 양재에서 해문역(남양)에 이르는 교통로.

[개관]

양재→ 천천현로→낙생역→구흥(용인)→ 금영(용인)→ 좌찬(죽산)→ 분행(죽산)→ 무극(음죽)→강복(안성)→가천(양성)→청호(수원)→ 장족(수원)→ 동화(수원)→해문역(남양)에 위치했던 역 중의 하나이다. 낙생역지의 정확한 위치는 현재 파악되고 있지 않지만, 현재 수내 제2동에 위치한 중앙공원 앞의 수내로돌마로가 갈라지는 분기점인 역말광장(중앙공원 동쪽 남단 꽃마을 광장) 일대와 수내동 푸른마을 주변 일대로 추정되고 있다.

[변천]

고려시대의 역도는 22개였으나, 조선시대의 역도 수는 41~44도로 구분되어 역의 효율적인 운영을 도모하였다.

조선시대 전국 도로는 크게 간선도로와 지선도로로 구분되며, 간선로는 도성 내의 광화문을 기점으로 전국 주요지 10곳과 연결되어 있었으며 지선의 경우 지방 관읍과 관읍을 연결시켜 주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도로의 이용도(중요도)에 따라 역로는 대·중·소로 차등되었으며, 역은 30리마다 설치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다.

낙생역의 경우 『세종실록지리지』에는 좌도충청도(양재→ 낙생→ 시흥→ 금령→ 좌찬→ 분행→ 무극)에 속해 있으며, 『경국대전』에는 낙생역이 양재역과 함께 대역으로 표기되어 있다.

하지만 영조 때 편찬된 『여지도서』에는 돌마역으로 기재되어 있는데, 『세종실록지리지』(1454)·『신증동국여지승람』(1531)·『동국여지지』(1660년대)·『도로고』(1770)·『만기요람』(1808)·『대동지지』(1864) 등 조선 전·후기의 자료 모두 낙생역으로 기재하고 있다. 따라서 돌마역은 오류이거나 혹은 『여지도서』편찬 시기 이곳으로 이전했을 가능성이 있지만 현재까지 정확하게 파악되고 있지는 못하고 있다.

한편 조선시대 낙생역에 지급된 마필(5)과 노비(4)의 수가 광주에 설치되었던 역(덕풍·경안·봉안·양재) 중 가장 적어 조선시대 초기와는 달리 많이 시기적으로 뒤로 갈수록 퇴락되었음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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