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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당구 수내동 지역 마을지 - 이야기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100185
한자 盆唐區藪內洞地域-誌-
지역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수내동

[이연복]

역사상의 인물에 얽힌 이야기로는 이경류(李慶流) 할아버지가 임진왜란 때 상주전투에서 전사하자, 타고 다니던 말이 이곳 집으로 와서 대문간에 머리를 부딪치고 죽었다고 한다. 그래서 한산이씨 집안사람들이 이경류 산소 앞에 말을 장사지내서 지금도 낮은 무덤이 있는데 이를 말무덤이라고 부르고, 매년 풀도 깎아준다. 그 후 이경류 모친의 꿈에 나타나서 “어머니 저를 보려거든 깨끗한 대야에다 물을 떠놓고 거울로 보십시오. 그러면 제가 보일 겁니다.”라고 말하므로, 꿈을 깬 뒤에 대야 물을 보니깐 아드님 머리가 반쪽이 갈라졌다고 한다. 지금도 경북 상주에 가면 비석이 서 있다.

비석에 관한 이야기로 현재 분당중앙공원에 들어가면 비각에 4개의 비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는 칼로 맞은 것처럼 금이 갔다. 마치 피를 흘린 것처럼 불그스름한데 나라가 위기에 처하면 피눈물이 흐른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남자와 처첩과의 관한 이야기를 본인이 할머니에게 들었는데, 옛날에 어느 남자가 부인과 첩을 두었다고 한다. 그런데 식사 때 된장찌개를 내오는데, 부인이 만든 찌개는 맛이 없고, 첩이 해온 찌개는 기가 막히게 맛이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남편이 그 이유를 몰래 알아보니까, 부인은 된장을 떠서 그대로 찌개를 만드는데, 첩은 된장을 입에 넣어 씹어가지고는 뱉어서 끓여 가지고 오더라는 것이다.

[이상구]

정자동의 고개에 정자(亭子)가 있었는데, 전해 오기를, 조선 초에 삿갓을 쓰고, 소를 거꾸로 타고 오는 나그네가 있다고 하기에 하인을 시켜서 “저기 저 오는 사람이 누군지 좀 알아오라” 하여 “그 웬 놈이 여길 어디라고 소를 타고 가느냐” 하니 그 나그네가 “아, 저는 나뭇골로 가는 객인데 성은 맹가요 이름은 사성이올시다” 하므로, 그 소리를 듣고서 모두들 부복을 하였다는 얘기를 한번 들었다. 그 사람이 유명한 정승 맹사성이었으므로 이를 기려 정자를 지었다고 한다.

또한 600여년 전 고려 말에 가정 이곡(李穀) 선생이 수내동과 여주에 머물렀으므로 수내동한산이씨 집성촌이 우연히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든다. 이 동네사람을 위해서 기여한 사람이 생각나는데, 강성기씨라고 하는 분이 있다. 그 분은 90이 되신 모친을 모신 효자로 돌아갈 때까지 장가도 못들고 어머니를 위해서 헌신하였다. 그 분은 경문을 잘 외어서 동네에서 누가 병이 나면 그 집에 가서 무료로 경문을 읽고 키에다가 젓가락을 긁는 데 그러면 병이 반드시 나았다. 그래서. 강성기씨가 죽은 후 동네에서 후하게 장례를 지냈다.

마을에 관한 이야기로, 중앙공원 선산에 모셔진 아천군 이증(李增)의 묘소는 광주의 마재[능내], 수서의 궁말과 함께 세번째 명당으로 손꼽힌다. 제일 웃어른이신 본인의 16대조 봉화공 이장윤의 산소를 잡을 때 토정 이지함이 잡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어느 날 토정이 이곳의 숲이 우거져서 오르락 내리락하는데, 발 아래에서 칡소를 모는 농부가 “에이, 미련한 이 칡소야. 이 미련한 소야!” 그러면서 고삐를 후려치면서 “올라설 줄은 모르고 내려설 줄만 아느냐” 하면서 고삐로 후려치는 것이었다. 토정이 가만히 들으니깐 이 말이 자기를 비유하는 거라, 그래서 한 발자국 올라서니까 바로 그가 찾던 자리가 거기에 나와서 봉화공의 묘소를 잡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토정 선생이 봉화공 할아버지가 돌아가실 적에 14살인데, 이때 과연 묘자리를 잡았겠느냐 하는 생각이 든다. 여하간 이리하여 후손에서 정승이 세 분, 판서, 참판이 많이 배출되었다고 한다.

수내동 마을에는 집집마다 택호(宅號)가 있어서 양주댁, 진사댁이라 불리었는데, 이연복 교수집은 진사댁, 본인의 집은 동막골로 불리었다.

한산이씨 삼세유사비에 보면 낙생이 나오는데 그곳이 돌마면이다. 또한 숲안역마을이라고 하는데 옛날 전설에는 역졸이나 뱃사공이라도 숲안마을 사람이라면 알아보았다고 한다. 전에는 숲안마을 사람들이 조정에 근무하시는 분들이 있어서 말을 타고서 서울로 오갔다. 이때 도강을 해야 하므로 뱃사공들도 익히 알아서 숲안마을에서 손님이 오면 거절하지 못하고 역졸이라도 "아, 게 아무도 없느냐! 내가 숲안에서 왔다"하고 소리 지르면 아무리 시간이 늦어도 뱃사공이 와서 강을 건네주었다는 것이다.

또한 역마을에서 총각이 남의 유부녀를 건드렸는데, 이게 소문이 나서 동네 어른들이 걱정을 해가지고 쫓겨난 일이 있다. 남의 가정이나 내 가정이나 참 그러한 불륜에 대해서는 아주 엄중한 처벌을 면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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