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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당구 판교동 지역 마을지 - 가족사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100201
한자 盆唐區板橋洞地域-誌-家族史
지역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판교동

이용학씨는 3남 1녀를 두었다. 장남은 1956년생이고 차남은 1959년생, 삼남은 1970년생이고, 외동딸은 1961년생이다. 삼남만 아직 결혼을 시키지 못했다. 현재 자녀들과 동거를 하고 있지는 않지만 농사를 도와주려고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장남이 항상 이곳에 들른다

한편 이용집씨는 딸만 여섯을 두었는데, 삼녀까지만 시집을 가고 나머지는 미혼이다. 특히 사녀는 경희대 간호학과를 나왔으나 간호원에 대한 처우가 열악하자 괌에서 국제간호면허자격증을 취득한 후 미국에 유학하여 치과의사가 되었다고 자랑스러워하고 있다.

판교동연성군 이곤의 사패지(賜牌地 : 나라에서 하사한 토지)로 현재까지도 10여호의 연안이씨 후손들이 집성촌을 이루며 살고 있다. 많을 때는 30여호의 연안이씨들이 살았으나 이제는 모두 직장을 따라 대도시로 떠난 것이다.

그 대신 종친회를 통한 교류는 상당히 활동적인데, 소식지인 종보(宗報)를 3회째 발간하고 있다. 종친회는 평상시에는 회장, 부회장, 총무, 재무 등의 임원이 수시로 모인다. 회장이 필요하다고 할 때에 이사회를 소집하면 20여명의 임원이 모인다. 종친회 총회는 예전에는 종손 자택에서 음력 10월 열이틑날인 시젯날에 개최하였다. 다른 날은 사람들이 모이기 힘들기 때문에 시젯날에 회의를 하는 것이다. 총회에는 약 70~80명 정도의 종친이 모인다고 한다.

이에 비해서 젊은이들의 경우에는 친자식들이나 형제간이나 좀 모이지, 벌써 육촌 팔촌까지가 되면 종친회 활동에 소극적이라고 한다.

종친회의 재정은 이용학씨의 조부께서 혼자 운영하고, 또 그 다음에는 부친께서 운영하다가, 1972년도에 한국학중앙연구원으로 가는 도로가 나면서 보상금을 받아 이를 재원으로 삼아 본격적인 임원진을 구성할 수 있게 되었다. 종친회의 운영이 잘못되기도 했지만 1985년 이후에 이용학씨가 회장을 맡으면서 모두 바로잡고 재정도 넉넉하게 만들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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