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1005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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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裕墓-墓碣 |
이칭/별칭 | 김유의 묘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능묘 |
지역 |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여수동 산33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민식 |
성격 | 능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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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식 | 원형단독분 |
건립시기/일시 | 1616년![]() |
관련인물 | 김유 |
높이 | 1.4m |
지름 | 4.6m |
소재지 주소 |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여수동 산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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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자 | 순천김씨 충정공파 종중회 |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여수동에 있는 김유(金裕)의 묘 및 묘갈.
김유[1561~1616]는 광해군대의 문신으로, 본관은 순천(順天), 자는 공작(公綽)이다. 상의원정(尙衣院正)을 지낸 김사원(金嗣源)의 현손(玄孫)이자 충좌위부호군(忠佐衛副護軍) 김언국(金彦國)의 아들이다. 관직은 헌릉참봉(獻陵參奉)을 지냈다.
김유(金裕) 묘는 여수동의 뒤편 골짜기로 뻗어 내린 응봉(鷹峰)의 서쪽 능선에 있는 조견의 묘역 우측 능선에 서향(西向)하여 있다. 바로 아래에는 아들 김양필(金良弼)[1587~1624]의 묘소가 위치한다.
묘갈 건립연대는 1663년(현종 4)이고 1989년에 비문은 13대손 봉연(鳳淵)이 찬하여 묘표를 새로 세웠다.
원형의 단독분은 봉분 하단에 높이 34㎝의 둘레돌을 둘렀으며, 봉분 높이 140㎝이다. 봉분 중앙에는 묘갈·상돌·4각 향로석과 좌우에 8각 망주석·문인석 등의 석물이 있다. 또한 봉분 좌측에는 근래 건립한 묘표가 서향하여 있다.
금관조복(金冠朝服)을 착용한 문인석(높이 147㎝)의 용모는 단아하나, 홀(笏)을 쥔 손가락의 표현이 미숙하다. 망주석(높이 160㎝)의 상단부에는 염의(簾衣 : 주렴, 구슬발)와 운각(雲角 : 구름모양의 다리)을 장식하였다.
봉분의 우측에는 1989년에 새로 세운 묘표는 비좌와 오석의 비신 및 8작 지붕의 지붕돌[옥개석] 형태이다. 비신의 비문은 4면에 있으며, 전면에는 세로 3열의 대자(大字)로 ‘獻陵參奉順天金公諱裕之墓 配平昌李氏’(헌릉참봉순천김공휘유지묘 배평창이씨)의 비문이 있다. 비문은 13대손 봉연(鳳淵)이 찬하였다.
봉분 앞에는 방부원수(方趺圓首 : 네모형 대좌에 월두형 비신) 양식의 묘갈(높이 180㎝)이 건립되어 있다. 비좌는 4면에 안상문과 상부에 전후 5엽, 좌우 1엽의 복련문이 조식되어 있다. 비신은 백색대리석제이나 흑색으로 변색되어 있다. 비문은 전면에만 있으며 비신 상단에 특이하게 가로로 ‘忠義金公孺人李氏之墓’(충의김공유인이씨지묘)라고 제액(題額 : 비의 제목)을 올린 후, 그 아래에 경연참찬관(經筵參贊官) 정태제(鄭泰齊)[1612~1669]가 지은 묘갈문을 교하현감(交河縣監) 조종운(趙從耘)[1607~?]이 썼다. 조종운은 현종대의 유명한 서화가 창강(滄江) 조속(趙涑)[1595~1668]의 조카로 호가 송창(松窓)이다. 글씨, 특히 해서를 잘 썼으며, 보학(譜學)에도 밝아 『씨족원류(氏族源流)』를 편찬하였다. 백대리석의 비신이 한 꺼풀 벗겨졌으나, 앞면에 새긴 묘갈문은 판독이 가능한 상태이다. 건립연대는 1663년(현종 4)이다.
크기는 비좌 높이 34㎝·너비 87㎝·두께 56㎝, 비신 높이 145㎝·너비 위 58.5㎝·아래 57㎝·두께 20㎝이며, 총 높이 179㎝이다.
현재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여수동 산33에 위치하고 있으며, 순천김씨 충정공파 종중회에서 관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