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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100735
한자 馬韓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경기도 성남시
시대 고대/초기 국가 시대,고대/삼국 시대
집필자 김창겸

[정의]

삼한시대의 정치연맹체.

[개설]

서기전 1세기~서기 3세기경 한강 유역으로부터 경기도와 충청도, 전라도 지역에 분포되어 있던 여러 정치집단의 통칭이다. 54개 소국(小國)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큰 것은 1만여 가(家), 작은 것은 수천 가였다. 그리고 규모가 큰 나라의 지배자는 신지(臣智), 작은 것은 읍차(邑借)라고 하였다.

[성장]

3세기 전반 마한 소국연맹체의 맹주는 목지국(目支國)의 진왕(辰王)이었다. 실제 마한지역 소국 중에는 백제국처럼 북방계 유이민의 정착을 계기로 하여 형성된 집단도 있고 초기 철기문화를 배경으로 대두되는 집단도 있어 그 형성시기가 일정하지는 않은 듯하다.

이 지역에서는 서기전 2세기경에 이미 대외적으로 통일된 기능을 발휘하는 세력 구심체가 형성되어, 한(漢)과 원거리 통교를 시도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당시의 결속 기반은 아직까지 무력을 배경으로 하는 지배나 복속관계, 마한 전역을 포괄하는 강력한 연맹체의 수준에는 미치지 못한 듯하다. 다만, 충남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일정 범위 내의 정치집단들이 결속되어 마한지역의 주도세력으로 기능함에 따라 마한 소국연맹체의 토대를 이루고 있었다.

철기가 유입되기까지 이들은 청동기의 제작과 교역을 통하여 중남부 각지의 세력집단들에게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변천]

세형동검문화 단계에서 형성된 마한 소국간의 결속관계는 서기전 1세기 이후 전개되는 정치적, 문화적 변동 속에서 그 성격이 달라지고 있다. 위씨조선(衛氏朝鮮) 유민의 남주와 한군현(漢郡縣) 설치로 인한 철기문화의 본격적인 확산, 경상도지역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교역 중심체의 대두 등으로 인해 마한 중심의 청동기 교역권은 약화되고, 마한지역의 영향력도 상대적으로 위축된 듯하다.

이후 3세기 전반, 위(魏)나라가 낙랑군과 대방군을 접수하고 한족(韓族) 집단에 대해 적극적인 회유정책을 전개함에 따라 목지국 진왕 중심의 마한 소국연맹체는 한의 군현과의 교섭에서 가장 우세한 세력집단으로 기능하였다.

목지국의 진왕(辰王)은 스스로 왕이 될 수 없다는 『삼국지』의 기록으로 볼 때, 진왕의 지위는 무력으로 획득, 유지된 것이 아니라 소국 신지들의 선출에 의해 결정되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아마 진한, 변한 24국 중 12국이 목지국 진왕에게 종속되어 있었다고 하므로, 진왕이 진한과 변한의 일부 지역에 대하여 영향력을 행사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온조(溫祚) 집단의 한강 유역 이주를 계기로 마한 소국연맹체 내부의 세력 판도 변화는 더욱 가속화된다. 백제국은 초기에는 토착 소국연맹체의 한 구성원으로서 마한 왕에게 신록(神鹿)을 보내거나 전쟁포로를 바치는 등 맹주국에 대한 우대의 격식을 취하였다. 그러나 점차 주위의 소국들을 병합하여 3세기 중반 이후에는 세력 범위를 한강 유역으로부터 충청남도지역까지 확대하면서 목지국 진왕 중심의 조직체를 약화시키고 독자적인 세력권을 확립하게 된다.

이때부터 백제국 중심의 소국연맹체는 마한의 주도세력으로서, 3세기 중반 대방군(帶方郡) 기리영(崎離營)을 공격하여 태수 궁준(弓遵)을 전사시키거나, 3세기 후반 진(晉) 본국에 마한의 이름으로 사신을 파견하는 등 대외적으로 전개되는 정치적, 경제적 교섭과정을 주관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백제국의 세력권에 포함되지 않은 남부지역의 마한 소국들도 비록 세력권이 줄어들기는 했으나, 상당한 변화를 거치면서 4세기 후반 백제 근초고왕에 의하여 병합되기까지 종래의 기반을 토대로 독자적인 세력권을 유지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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