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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당독립시 요구농성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100899
한자 盆唐獨立市要求籠城
분야 정치·경제·사회/사회·복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경기도 성남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장원봉

[정의]

1992년부터 성남시에 소속된 분당신도시 주민들이 분당 자체만을 성남시에서 분리시켜 독립시로 만들고자 한 주민운동.

[내용]

1992년 여름에 분당시 독립 문제가 주민들의 최대 숙원사업으로 떠오르면서 같은 해 7월 1일 새마을연수원 공개강좌에서 분당 독립문제가 제기되었다. 이어, 분당시범단지 총부녀회장 조모씨가 3일 긴급부녀회를 통해 분당 주민들의 자치시 여론에 따라 서명운동을 전개키로 결정하고 5일부터 한양아파트 및 현대아파트 2,000여 세대로부터 서명을 받아냈다고 보도하고 있다.

그리고 이 같은 서명운동에 대해 “시범단지 주민 스스로가 서명운동을 시작, 뒤늦게 부녀회가 동참한 것”이라면서 “주민들은 신도시 발표 때 약속대로 분당시로 독립되어 분당 세금이 분당 발전을 위해 쓰여지기를 원하고 있다”고 전하고 있다. 부녀회는 한양아파트 및 현대아파트의 서명운동을 분당전체로 확산시키면서 9일 부녀회와 분당발전연구회 간에 대책회의를 가졌다. 이에 대해 성남시 및 시민들은 “분당이 독립할 경우 성남 상류층의 분당으로의 전출이 예상돼 성남시가 또다시 슬럼화될 것”이라고 우려하면서 “지역격차 해소를 위해서라도 분당의 성남시 편입은 꼭 이뤄져야 한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이상 한국일보 1992년 7월 10일자 기사).

하지만 부녀회원들이 언론에 이 같은 내용을 제보한 적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이러한 기사가 나간 것에 대해 여러 방면으로 알아본 결과 당시 한양아파트 314동 동 대표를 맡고 있던 여모씨가 언론사에 이와 같은 내용을 보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당시 부녀회원들과 여모씨 일행이 자리를 함께한 시범단지 한양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입주자 대표회의 부회장 염모씨는 여 모씨가 회장으로 있는 ‘분당신도시 발전협의회’는 주민들의 의사와 동떨어진 한낱 어용단체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면서 입주자 대표회의에서 몇 명이 가담되었는지 밝히라고 말하고, 입주자 대표회의의 추인도 받지 않고 이 모임에 가담한 사람은 대표회의에서 사퇴할 것을 요구했다. 이 일을 계기로 하여 입주자 대표회의 회장 조모씨는 회장에서 물러나게 되었고, 후임은 지난 총선에 출마했던 염모씨가 맡게 되었다.

[연혁]

이후 분당독립시 요구의 움직임은 다음과 같다.

1991년 9월 30일분당시범단지 1차 입주, 11월 29일 2차 입주

1992년 6월 분당시범단지부녀회와 함께 분당시 서명운동 시작

1992년 7월 2일 새마을운동중앙연수원에서 정부대표로 서주환 신도시기획 팀장과 한국토지공사 사장이 참여해 새도시 건설 홍보하 는 자리에서 계획대로 분당시를 건설할 것을 요구. 이 날 확정된 것을 전제로 주민들에게 배포된 분당새도시 개발 계획 일정에는 시청터와 시의회터가 포함되어 있었음

1992년 7월 하이텔 PC통신 "분당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개설

1992년 8월 분사모 회원들과 중앙공원 청소 실시(당시는 공원관리사무 소가 없었음)

1993년 2월 정부에 진정서 제출 "분당새도시 위상에 관한 건" (분당시)

1993년 1월 27일정부에 분당시 승격과 판교나들목 요금 면제, 전화를 서울 통화권에 편입, 문화시설 빠른 설치에 관해 진정서 제 출

1993년 2월 23일 정부(내무부) 답변 받음

1993년 2월 26일 “분당새도시 위상과 기반시설 미비에 대한 건"을 가지고 주민 이준호, 장영춘, 강복영, 장명옥, 임정희 외 2,398인의 서명을 받아 정부에 진정서 제출

1993년 3월 25일 분당시범단지 한양, 우성, 현대, 삼성, 한신 입주자 대표회의 회장과 함께 분당 전철의 노선 축소에 관한 건을 가지 고 정부에 진정서 제출

1993년 5월 29일 분당선[현 수인분당선] 빠른 완공을 촉구하는 진정서 제출

1993년 7월 분당 시청터에 구청 착공하는 것을 저지. 이 문제로 여러 시민과 함께 성남남부경찰서로 강제 연행됨

1993년 12월 19일 입대협에서 개최한 "분당문제 해결을 위한 대표자대회"에 서 청년대표 연설

1994년 4월 30일 입대협 개최 "분당문제를 위한 범 시민대회 참여

1995년 8월8월 분당시 목적 달성을 위해 분당새터신문 창간

1996년 4월총선 출마자들에게 분당시 달성을 위해 일할 것을 요청(국회의원 당선자 오세응씨는 2년 안에 분당시장 뽑겠다고 약속)

1997년 시의원들이 시의회에서 분당시 목적 달성 위해 노력할 것을 촉구

1998년 5월분당시 목적 달성을 위해 인터넷에 ‘분당사랑’ 개설

1999년 분당포럼 운영위원 참여(대표가 분당문제 적극적으로 나서겠다고 약속). 분당포럼 주최 행자부장관 초청 토론회 토론자로 참여(분당시 약속이행 촉구)

2000년 10월 22일 "분당입주 9주년기념 주민축제" 개최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7.10.12 대표항목명 띄어쓰기 수정 분당독립시요구농성 -> 분당독립시 요구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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