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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례복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101035
한자 喪禮服
분야 생활·민속/생활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경기도 성남시
집필자 송위지

[정의]

유교식 상례 때 입는 옷.

[개설]

상복은 전통적인 유교식 예법대로 갖추어 입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삼베로 만든 상복은 망자와의 친척 관계에 따라 ‘오복(五服)’ 제도에 의해서 복장이 규정되어 있었다. 가령 아버지의 상을 당했을 때 상복은 굵고 거친 삼베로 만드는데, 아래의 옷단을 꿰매지 않는다. 또 상복과 더불어 요질(腰絰:허리에 두르는 띠)과 수질(首絰:머리에 쓰는 띠)을 착용하고 행전을 치고 짚신을 신으며 대나무 지팡이를 짚는다. 또한 짚자리[고석(藁席)]와 짚베게[고침(藁枕)]를 쓴다.

[내용]

성남시의 상복에 관하여 조묘령씨와 이성자씨의 사례를 통해 그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조묘령씨는 1909년생으로 28세 때에 시어머니가 사망하였다. 이때 남자는 삼베로 만든 상복을 입고 머리에 굴건을 썼고, 굴건 위에 수질(首絰)을 둘러쓰고 허리에는 요질(腰絰)을 매었다. 상복은 어머니가 사망했기 때문에 오른쪽 소매를 끼지 않았다. 또한 상장(喪杖)은 보통 아버지가 사망했을 때에는 죽장(竹杖)을 짚고 어머니가 사망했을 때에는 오동나무를 짚었다.

조묘령씨와 다른 며느리, 그리고 딸은 흰색의 치마와 저고리를 입었다. 딸의 시댁에 상을 당하면 상복을 친정에서 해주는 관습이 있었기 때문에 제보자인 조묘령씨는 친정에서 상복을 해왔다. 이 때 여자들이 꽂은 비녀는 다 나무를 깎아서 만든 것이다. 탈상 때 남녀가 입었던 상복과 수질, 요질, 여자의 나무비녀 등 모두 태워버렸다.

조묘령씨의 남편인 김흥기씨는 1985년에 71세 때 사망했다. 원래 수의를 만드는 때는 윤년이나 윤달이 있는 달에 길일(吉日)을 받아서 하면 좋다고 믿는 편이다. 그러나 남편은 미리 이것을 준비하기가 싫어서 생전에 맞추지 않았다. 결국 사망 후 상례를 준비하면서 수의를 맞추었다. 남편의 수의는 속적삼, 저고리, 바지, 행전, 버선, 신, 두루마기 등을 갖추었다. 의복 외에 염습용으로 명목, 악수, 오낭, 베개, 이불, 천금, 지요 등을 넣었지만, 모두 상례 전문점에서 도맡아 했다.

이성자씨의 경우 30세 때인 1959년에 시어머니가 돌아가셨다. 그때 그녀는 하얀색 치마와 저고리를 입었다. 이것도 역시 친정집에서 만들어 보내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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