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10146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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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梁淵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기도 성남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박홍갑 |
조선 전기 성남 지역 출신의 문신.
16세기 이후 광주군 세촌면 대원동리[현재의 성남시 중원구 상대원동·하대원동] 일원에는 남원양씨와 여산송씨가 함께 입향하여 마을을 이루고 살았다. 양연은 남원양씨 가문의 대표적인 인물로 사무에 밝았으며, 특히 병사(兵事)에 능하였다. 재상 윤임(尹任)과 가까운 사이였다.
본관은 남원(南原). 자는 거원(巨源), 호는 설옹(雪翁). 증좌찬성 양구주(梁九疇)의 증손이며 대제학 양성지(梁誠之)의 손자, 현령 양호(梁琥)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유인로(柳仁老)의 딸이다.
음직(蔭職)으로 관직에 나가 충의위(忠義衛)에 소속되었다가 1524년(중종 19) 별시문과에 병과(丙科)로 급제하여 장령(掌令), 집의(執義), 직제학(直提學) 등을 역임하였다. 1535년에는 공조참판으로 성절사(聖節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고, 이듬해에는 전라도관찰사가 되었다. 1537년(중종 32) 대사헌(大司憲)에 있을 때 왕의 밀지를 받아 김안로(金安老), 채무택(蔡無擇), 허항(許沆) 등이 붕당을 맺어 계략을 꾸미자 이를 탄핵하여 처형시켰다. 그 뒤로 좌승지(左承旨)·병조판서·이조판서·우찬성·좌찬성 등을 거쳐,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에 이르렀다.
훈구파(勳舊派)의 중심인물로 사림파를 배척하는 활동을 많이 하였다.
양연 묘는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상대원동 산31-3에 있다. 묘역 입구에 남향하여 있는 신도비는 1999년에 건립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