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음촌참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101625
한자 陰村站
분야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
지역 경기도 성남시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강병수

[정의]

조선 후기 성남지역에 역과 함께 설치되었던 공공 숙박시설.

[개관]

우리나라의 역참제도는 삼국시대부터 시행되었으나 구체적인 제도로 드러난 시기는 고려시대부터이다. 역도는 조선시대에 들어와 더욱 구체화되면서 간선도로와 지선도로로 나누고 다시 그 중요성에 따라 대로, 중로, 소로로 구분하여 시행되었다. 수도 한성을 중심으로 간선도로는 전국에 10대 도로를 개설하고 이를 좌로, 중로, 우로로 크게 나누었다.

각 도로는 30~40리(약 4㎞) 정도의 거리를 두고 역을 설치하고, 역마(驛馬)와 역정(驛丁)을 배치하여 관청의 공문을 전송하는 외에 마필과 숙식을 알선, 제공하였다. 성남지역을 통과했던 간선도로는 한성에서 동래까지 이르는 좌로와 한성에서 통영까지 이르는 중로로서 모두 간선이었다. 음촌참은 좌로에 해당되는데, 한성-신천-송파-음촌-이보현-경안을 통과함으로써 성남지역을 서북으로부터 동남으로 지나 쌍령과 이천으로 해서 삼남대로로 이어지는 역로에 설치되었다.

[유래]

음촌이란 지명은 고려말 충신으로 이곳에 은거하였던 김약시(金若時)의 호 음촌(陰村)에서 따서 붙여진 것이라는 설이 있다.

[내용]

음촌참의 위치는 역참제의 좌로를 통과하는 세촌면의 중심으로, 지금의 성남시 수정구 단대동 구종점 부근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나 현재 도시 개발로 번화가로 변화하여 그 자취는 찾아볼 수 없다. 이곳은 역참의 발소(撥所)와 주막(酒幕)을 겸비한 교통의 요지였던 관계로 음촌 발소에는 발장 1명과 군졸 2명이 배속되어 있었다. 발장은 남한산성 내의 장교 중에서 차출하고 경기 감영에서 지급되는 매월 5냥(兩)의 근무수당이 주어졌다.

음촌참은 뒤에 율목참(栗木站)으로 그 이름이 바뀌었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