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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101648
한자 李景容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기도 성남시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장필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별
생년 1580년연표보기
몰년 1635년(인조 13)연표보기
본관 덕수(德水)
여복(汝復)
두곡(杜谷)

[정의]

1580년(선조 13)~1635년(인조 13). 조선 후기의 문신.

[가계]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여복(汝復), 호는 두곡(杜谷)이다. 이통(李通)의 아들이다.

[활동사항]

진사를 거쳐 문과에 급제한 뒤, 1624년(인조 2)에 지평을 거쳐 정언, 교리·동부승지, 좌부승지 등을 역임하였다. 좌부승지로서 교동(喬桐)에 파견되어 수군을 검열하고 이어 호군(軍)하였다. 이때 백성들이 가난에 굶주리고 관가의 여러 가지로 피해가 많은 것에 대하여 구휼책을 건의하기도 하였다.

우승지로서 능력을 인정받아 황해도관찰사가 되었는데, 당시 해서(海西) 지방이 탕진되어 백성들이 곤핍을 당하고 있었다. 그런 중에도 과다하게 포보(砲保) 등이 부과됨으로써 백성들이 안집하지 못하고 유리 방황하게 되는 것을 보고는 이를 방지하기 위한 방법으로서 세초(歲抄)에 대한 올바른 사정을 진정하였다. 더불어 1629년(인조 7)에는 황해도관찰사로서 이이(李珥)의 『격몽요결(擊蒙要訣)』수백 본(本)을 인쇄하여 반포하였다.

이괄(李适)의 난이 일어나자 김류(金瑬)가 역모를 진압할 군대조달에 대한 방법을 건의하였다. 이때 그는 광주(廣州)와 죽산(竹山)에 소속된 네 고을의 군사를 거느리고 남한산성(南漢山城)에 들어가 지켰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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