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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육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101699
한자 李陸
영어공식명칭 Lee Yuk
이칭/별칭 방옹(放翁),청파거사(靑坡居士),부휴자(浮休子),문광(文光)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기도 성남시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이상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성별
생년 1438년(세종 20)연표보기
몰년 1498년(연산군 4)연표보기
본관 고성(固城)
대표관직 병조참판
묘지 옛 광주군 돌마면(突馬面) 가차곡(加次谷)

[정의]

조선 전기 성남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고성(固城). 자는 방옹(放翁)이고 호는 청파(青坡) 또는 부휴자(浮休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고려조에 밀직부사를 지낸 이강(李岡)이고, 할아버지는 좌의정 이원(李原)이며, 아버지는 돈녕부정 이지(李墀)이다. 어머니는 감찰 정보(鄭保)의 딸인데 포은 정몽주의 증손녀이기도 하다. 부인은 교하현감 고령박씨 수림(秀林)의 딸이다.

[활동사항]

1459년(세조 5)에 생원시와 진사시에 잇달아 입격하였지만 관직에 나가지 않고 3년간 지리산에 들어가 있었다. 1464년(세조 10)에 세조의 온양행차(溫陽行次) 별시에 장원하여 성균관직강을 제수받았다.

1566년(세조 12)에 발영시(拔英試)에 급제하고 1568년(세조 14)에 문과중시에 2등으로 합격하였다. 예종 즉위후 사헌부 장령에 제수되어 대관(臺官)으로서 활약하였다. 장령 재직시 강직한 언사로서 근무하여 여승 담정(湛淨)의 무고를 당하기도 하였다.

장예원판결사에서 잠시 성균관 대사성으로 잠시 임명되었다가 이내 판결사로 옮겨졌다. 공조참의를 지냈다가 1477년(성종 8)에 충청도관찰사로 외직에 나갔다가 이후 경기도관찰사, 강원도관찰사를 지냈다.

관직 승진은 순조로워서 공조참의, 예조참의, 형조참판, 병조참판을 지냈다. 1476년(성종 7) 명나라 사신의 접대도사로 파견되었으며 1491년(성종 22)에 정조사(正朝使)로, 또 1494년(성종 25) 12월에 부고사(訃告使)로 명나라에 파견되었다. 연산군 즉위 후에 대사헌에 제수되기도 하였으나 대체로 연산군이 생모 윤씨의 사건에 집착하는 것에 반대하였고 『성종실록』 편수에 참여하였다.

[저술 및 작품]

저술로는『청파집(靑坡集)』과 『청파극담(靑坡劇談)』이 있고, 고조로부터 3대 즉 이암, 이강, 이원의 글을 모아서『철성연방집(鐵城聯芳集)』을 편찬하였다.

[묘소]

묘소는 성남시 중원구 도촌동에 있다.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1.06.10 [수정]상세 정보 상세 정보 형태 수정 [묘소] 소표제 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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