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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숙 묘 및 묘갈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101755
한자 李俶墓-墓碣
이칭/별칭 이숙의 묘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능묘
지역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판교동 산25-1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이민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능묘
양식 원형 합장분
건립시기/일시 1576년
관련인물 이숙
높이 1.2m
지름 6.3m
소재지 주소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판교동 산25-1 지도보기
소유자 연안이씨 연성군파 종중회

[정의]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판교동에 있는 이숙(李俶)의 묘.

[개설]

이숙(李俶)[1518~1576]은 선조대의 문신으로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기중(起仲)이다. 재령군수를 지낸 이대승(李大升)[1497~1557]의 아들이자 익평공(翼平公) 허광(許礦)의 손녀 사위이다. 1549년(명종4) 서사(筮仕)로 관직에 나가 전설사별제(典設司別提)를 처음 지낸 뒤 사헌부감찰과 평창군수를 거쳐 한성부판관에 이르렀으며, 사후 좌승지에 추증되었다.

[위치]

묘소는 옛 낙생초등학교 후문 쪽으로 개설된 지방도 57호선 도로변의 나지막한 구릉에 동향(南向)하여 자리 잡고 있었다. 판교신도시 개발이 이루어진 현재의 위치로 보면 판교원마을 판교원풀에버 9단지 아파트의 동쪽, 판교동주민센터 북쪽의 단독주택용지 부근이다.

[형태]

부인 양천허씨(配淑人陽川許氏)와의 합장묘이이며, 용미와 활개를 두른 원형의 봉분은 높이 120㎝, 동서 직경 630㎝ 규모였다. 묘역에는 봉분 중앙에 상돌, 사각 향로석과 좌측에 묘표 및 상돌 좌우로 팔각 망주석과 금관조복형의 문인석을 갖추고 있으며, 묘역 오른쪽에는 선조대에 크게 유행하던 방부원수(方趺圓首) 양식[장방형의 받침돌에 월두형 비신을 갖춘 양식]의 묘갈(높이 152㎝)이 세워져 있었다. 상돌은 계체석 위에 놓여 있으며, 크기는 높이 23㎝·너비 138㎝·두께 78㎝이다. 망주석은 좌우가 108㎝이다. 문인석은 풍화로 인한 마모에 형태만 알아 볼 수 있고, 크기는 좌가 114㎝, 얼굴 부분 54㎝이며, 오른쪽 문인석은 132㎝, 얼굴 부분 52㎝이었고, 망주석과 문인석은 토사에 덮혀 반절가량만 노출된 상태였다.

[금석문]

묘표(墓表)는 봉분 좌측의 망주석과 문인석 중간에 위치하여 서향(西向) 하고 있다. 비신 상부는 우에서 좌로 엇비슷하게 금이 가있으며, 백색 대리석제이나 흑적색으로 변색 및 돌이끼가 있으며, 전후 6엽, 좌우 2엽씩의 단판복련문이 조식되어 있다. 비신의 비문은 전후 2면비로 전면에 세로 2열로 ‘通訓大夫漢城府判官李公之墓 淑人陽川許氏之墓’(통훈대부한성부판관이공지묘 숙인양천허씨지묘)의 비문이 있다. 후면의 비문은 마모로 인해 알아볼 수 없으나 왼쪽 하단에서 ‘성균진사(成均進士) 한(韓)…’와 ‘가선대부행첨지중추부사(嘉善大夫行僉知中樞府事) 홍(洪)…’이란 기사를 확인할 수 있어 글을 짓고 글씨를 쓴 사람은 가늠할 수 있다.

선조대에 한씨(韓氏) 성(姓)을 가진 성균진사(成均進士)로서 묘갈에 글씨를 쓴 경우는 당대의 명필, 석봉(石峰) 한호(韓濩)[1543~1605] 밖에 없어 본 묘갈은 한호가 쓴 것으로 추정된다. 관함(官銜)을 중시하던 조선시대의 일반적 풍토에서 일개 성균진사에 불과한 한호가 글씨를 쓸 수 있었던 것은, 30대에 이미 명필로 크게 이름을 떨치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라 판단된다. 이외에도 한호가 성균진사일 때 쓴 작품으로, 경상도관찰사(慶尙道觀察使) 허엽(許曄)[1517~1580]의 신도비(1582, 선조15)가 있는데, 거기에 쓰여진 필체(筆體)가 본 묘갈의 강경명정(剛硬明正)한 서체(書體)와 거의 동일하다.

크기는 비좌 높이 12㎝·너비 74㎝·두께 48㎝, 비신 높이 139㎝·너비 상(上) 52㎝·하(下) 51㎝·두께 11㎝이며 총 높이 151㎝이다.

[현황]

현재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판교동에 위치한 연안이씨 묘역은 15세기 무렵 판교동에 처음 자리잡은 이후 약 6백여 년간 이어져 내려오다가 판교신도시가 개발되면서 대다수의 묘역이 용인, 제천 등으로 이장하거나 정리되었다. 이숙의 묘 및 묘갈은 강원도 제천으로 이장되었으며, 현재 판교동에는 이곤 묘이곤의 아들인 이대승이공승의 묘만이 유일하게 원형 보존된 상태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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