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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룡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101932
한자 李喜龍
영어공식명칭 Lee Hee-ryong
이칭/별칭 군서(君瑞)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기도 성남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박홍갑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출신지 성남 고등동 등자리
성별
생년 1639년(인조 17)연표보기
몰년 1697년(숙종 23)연표보기
본관 덕수(德水)
대표관직 강양도 관찰사(江襄道 觀察使)
묘지 성남시 수정구 고등동 덕수이씨 선영

[정의]

조선 후기 성남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덕수(德水). 성남시 수정구 고등동 등자리 출신이다. 자는 군서(君瑞)이다. 문과에 급제하여 사간원 정언을 지낸 이경안(李景顔)의 손자이고, 아버지는 이륙(李稑)이다. 어머니는 조경기(趙慶起)의 딸이다.

[활동사항]

1672년(현종 13) 별시(別試) 문과에서 병과 12등으로 합격하였다. 숙종이 즉위한 후 사헌부(司憲府) 지평(持平)으로 재직시 곽세건 처벌을 강력하게 주장하였으며, 숙종 6년에는 숭릉(崇陵) 국장(國葬) 때 집사(執事)로 임무를 수행하였다. 이 때 술에 너무 과했다는 이유로 다른 제관으로 교체되기도 했다. 그러다가 숙종 10년에 사헌부 장령직을 다시 제수 받았고, 이어 사간원(司諫院) 사간(司諫), 사헌부(司憲府) 장령(掌令)으로 옮기는 등 주로 대간직을 수행한 후 그해 다시 승지에 제수되는 등 고속 승진을 하였으며, 숙종 12년에 강양도 관찰사(江襄道觀察使)에 제수되어 강원도 일대의 수령을 포폄하는 임무를 맡았다. 그러나 이듬해 대사헌(大司憲) 이선(李選), 지평(持平) 심권(沈權) 등에 의해 성질이 거칠고 난잡하며 선비들과 유종(儒宗)을 헐뜯고 모욕하는 짓을 많이 했다는 탄핵으로 그의 관직 생활에 위기를 맞기도 했다.

그 후 숙종 20년에 다시 동래부사(東萊府使)에 파견되어 목민관의 임무를 수행하였다. 이 때 동래(東萊), 기장(機張), 양산(梁山), 울산(蔚山) 네 고을의 교차점에 걸쳐 있는 백운산(白雲山)에 성 쌓기에 심혈을 기울여 국방을 튼튼히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이듬해 동래부(東萊府)의 장계(狀啓)와 왜서(倭書)의 등본(謄本)을 올린 절차가 잘못되어 해당 승지와 함께 종중추고(從重推考:벼슬아치의 죄과를 무겁고 가벼움에 따라 엄중하게 캐물어서 밝힘)를 당하기도 했다.

[묘소]

묘는 성남시 수정구 고등동 덕수이씨 선영에 있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1.05.05 상세정보 수정 상세정보 내용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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