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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성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102030
한자 丁好誠
영어공식명칭 Jeong Ho-seong
이칭/별칭 희일(希一)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기도 성남시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박홍갑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성별
생년 1566년(명종 21)연표보기
몰년 1614년(광해군 6)연표보기
본관 나주(羅州)
대표관직 호조좌랑
추증/추서 가선대부(嘉善大夫) 호조참판(戶曹參判)
묘지 성남 수정구 상적동 의곡(義谷)

[정의]

조선 전기 성남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희일(希一). 강원도 관찰사를 역임한 정윤희(丁胤禧)의 셋째 아들이고, 어머니는 정형(鄭衡)의 딸이다. 조부는 찬성과 관찰사를 지낸 충정공(忠貞公) 정응두(丁應斗)이고, 증조부는 찬성을 지낸 공안공(恭安公) 정옥형(丁玉亨)이다.

[활동사항]

1605년(선조 38) 성균관 유생으로 있을 때 동료 유희량(柳希亮), 최성원(崔誠元) 등과 함께 팔도 열읍(列邑)의 향교와 모든 서원에 서찰을 보내어 정인홍(鄭仁弘)이 지은 『발남명집설(跋南溟集說)』을 비방하였다. 진주에서 일어난 음부(淫婦)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남명(南冥) 조식(曺植)이 이암(李巖)과 절교하는 대목에서 나타난 남명선생여이구암절교사(南冥先生與李龜巖絶交事) 때문이었다. 그 후 여러 관직을 거쳐 호조좌랑을 역임했다.

[묘소]

묘는 성남 수정구 상적동 의곡(義谷)에 있으며, 정원섭(丁元燮)이 찬한 비문이 있다.

[상훈과 추모]

가선대부(嘉善大夫) 호조참판(戶曹參判)에 증직되었다.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1.05.06 상세정보 수정, 소표제 변경 상세정보 수정, [추증]을 [상훈과 추모]로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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