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하남위례성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102221
한자 河南慰禮城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지명/고지명
지역 경기도 성남시
집필자 김창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지명

[정의]

백제시대의 도성.

[개설]

위례성은 한강을 기준으로 하북위례성(河北慰禮城)과 하남위례성(河南慰禮城)으로 나뉜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부여계(夫餘系)인 비류(沸流)온조(溫祚)의 집단이 남쪽으로 내려와서 건국한 근거지가 위례성이었다고 한다. 이들은 건국한 지 13년만에 하남위례성으로 도읍을 옮겼다고 하므로 처음에 정착한 위례성의 위치는 하북, 즉 한강 북쪽에 있었을 것이다. 그 위치는 서울 북한산 동쪽 산기슭이나, 북한산을 배경으로 한 세검정과 평창동 계곡 일대 또는 상계동, 중랑천 방면을 비정(比定)하고 있으나 확실하지 않다.

[내용]

하북위례성에서 한강 남쪽으로 천도한 곳이 하남위례성이다. 천도시기는 『삼국사기』에 따르면 서기전 6년(온조왕 13)이지만, 실제는 그보다 훨씬 후대의 일이다.

위치에 대해서 『삼국사기』에는 “하남의 땅은 북쪽은 한수(漢水)를 띠고, 동쪽은 고악(高岳)을 의지하고 있으며, 남쪽은 기름진 옥토를 바라보고, 서쪽은 큰 바다로 막혀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기록에 근거한 하남위례성의 위치에 대해서는 그동안 지금의 경기도 하남시 춘궁동과 남한산성을 포함하는 일대라고 주장하는 학설이 있었다. 그러나 춘궁동의 지형은 동, 서, 남 세 방면이 막히고 북쪽만이 트여 있다. 따라서 위에서 인용한 백제 초기 하남위례성의 지형과 다르며, 왕궁터의 기본형이 되는 남향도 아니다. 이곳은 『삼국사기』에 기록된 369년(근초고왕 24)에 백제 왕이 고구려 평양성까지 쳐들어가 고국원왕을 살해하고 돌아온 뒤, 고구려의 남침이 두려워 한산(漢山)으로 천도하였다고 하는 내용으로 미뤄볼 때, 한 때 도성이었던 곳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최근의 연구결과에 의하면, 서울의 풍납토성(風納土城)과 몽촌토성(夢村土城) 일대로 비정하고 있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