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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102281
한자 韓百鳳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기도 성남시
시대 근대/근대
집필자 서승갑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별
생년 1881년연표보기
몰년 1950년 10월 30일연표보기
본관 청주
성의(聖儀)
송헌(松軒)
출신지 경기도 광주군 돌마면 율리
상훈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

[정의]

1881년(고종 18)~1950년. 돌마면 만세시위를 주도한 후 민족협동전선 운동인 신간회 지회운동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생애]

한백봉은 1881년(고종 18)에 한란의 29세 손으로 태어났다. 자는 성의(聖儀), 호는 송헌(松軒)이며 본관은 청주이다. 1919년 당시 39세로 광주군 돌마면 율리에 거주하였으며 생업은 농사였다. 돌마면의 유지로 활동하며 3.1만세 시위운동을 주도하는 한편 1927년 민족협동전선 운동인 신간회 운동에서도 광주지회 간사로 참여하였다.

[활동사항]

1919년 고종황제의 인산에 참여한 광주의 유지들과 함께 조선독립의 취지에 공감하였다. 이후 돌마면에 돌아와 고향의 문중 어른과 마을의 원로들에게 서울의 소식을 전하고, 율동의 인근 주민에게 만세운동의 정당성을 설파하였다. 한순회, 유창석 등과 비밀리에 구한국 국기를 제작하였으며 초대 낙생 면장 남태희와 협의하여 연합시위를 구상하고 거사일로 분당리 장날을 택하였다.

이어 26일에는 마을 뒷산에서 봉화를 피워 격양된 분위기 고조에 힘을 기울였다. 3월 27일 분당리 장터에서 군중 1,000여 명을 규합하여 조선독립만세를 외쳤다. 28일에는 돌마에서 시작하여 낙생면 판교리에 이르렀을 때에는 시위군중이 3,000여 명에 달하는 대규모 집회가 되었다. 그러나 남한산성 안에 주둔한 헌병 1개 소대의 무력진압으로 인해 강제 해산되었다. 시위 주도자인 한백봉은 3월 29일에 체포되어 판교헌병주재소에 연행된 후 남한산성 용인헌병분견대 광주분견소에 이송되었다.

일제는 4일간 혹독한 고문을 가했으며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형을 언도하였다. 이후 항고하였으나 7월 9일 경성복심법원과 9월 13일 고등법원에서 각각 기각되었다. 경성지방법원 수원지청을 거쳐 서대문감옥에 이감되었고 보안법 위반혐의로 징역 1년을 언도 받고 1920년 4월 28일에 만기 출옥하였다.

1927년에는 민족협동전선의 흐름에 따라 돌마면의 유지들은 조선농민사 지국, 청년단체, 노동공제회 등의 단체를 토대로 하여 신간회 지회 설립을 주도하였다. 민족주의 진영의 사회 단체와 사회주의 진영의 조직체가 일정 부분 결합되어 신간회 광주지회가 탄생한 것이다. 1927년 8월 신간회 광주지회는 광주지회장에 한순회가 선임되었고 간사로 한백봉(韓百鳳), 한백호(韓百鎬), 이대헌(李大憲), 유인목(兪仁穆), 박기환(朴基煥), 한용회(韓龍會) 등이 피임되었다. 한백봉신간회 광주지회 간사로 참여하여 민족협동전선을 구축하려는 운동에도 적극적으로 관여하였다.

[의의]

시위운동을 주도하여 전면에 부각된 한백봉은 구한국 국기를 받들어 돌마면에서 시위운동을 전개하였다. 시위를 선도하고 직접 투쟁하여 일제 압제를 타파하려는 의지는 옥고와 민족협동전선의 신간회 광주지회 운동에서 실천적으로 보여준 것이라 할 수 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2.10.29 [활동 사항] 관직명 표기 <변경 전> 낙생면장 <변경 후> 낙생 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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