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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103053
한자 金土洞 돌기와집
이칭/별칭 금토동 임중열 가옥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유적/건물
지역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둔토로 34[금토동 206]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재홍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축|증축 시기/일시 1968년연표보기 - 금토동 돌기와집 안채 개축
훼철|철거 시기/일시 2022년 7월연표보기~8월연표보기 - 금토동 돌기와집 해체
원소재지 금토동 돌기와집 -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둔토로 34[금토동 206]지도보기
성격 농가
양식 튼ㅁ자형의 홑집 구조|돌기와 지붕

[정의]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금토동에 위치한 돌기와 농가.

[개설]

금토동 돌기와집은 외동 바깥말에서 세거했던 나주 임씨(羅州 林氏)의 살림집이다. 안채와 행랑채가 있는 튼ㅁ자형의 홑집 구조로 안채의 돌기와 지붕이 특징적이다.

[위치]

금토동 외동 사이를 지나는 조선 시대 영남길인 둔토로와 금토동 정미소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변천]

금토동 돌기와집은 시대에 따라 변천을 거쳤다. 안채는 본래 있던 가옥을 허물고 1968년에 새로 지었다. 집을 짓기 위해 청계산운중동에서 목재를 가져오고, 나무 기둥은 인천, 돌기와는 충청도에서 들여왔다. 1980년대 후반에는 난방을 위해 전면에 벽돌을 덧붙이고 대청을 실내 거실로 바꾸었다. 툇마루도 실내로 만들고 입식 부엌으로 개조했다. 좌측면에는 나무 기둥을 세우고 슬레이트 지붕을 얹어 확장한 후 실외 주방으로 활용했다. 대문, 사랑방, 외양간, 창고 등으로 이루어진 행랑채는 일제 강점기 때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본래 초가지붕이었다가 1960년대 후반 경부고속도로 건설 당시 슬레이트로 바꾸었다. 대문과 나란히 붙어 있는 사랑방은 가사를 돕는 사람이나 나그네가 묵는 곳이었다. 창고는 곡식이나 농기구를 보관하는 장소로 썼다. 두 칸인 외양간은 1980년대 중반까지 소를 기르다가 창고로 활용했다.

[형태]

금토동 돌기와집의 안채는 방 세 칸과 거실, 부엌으로 구성된 ㄱ자형이다. 바닥 면적은 약 79㎡이며, 바깥채에 비해 높게 지어졌다. 기존에 있던 안채의 자연석 초석을 활용하여 그 위에 나무 기둥을 세우고 상부 가구를 구성했다. 지붕 형태는 팔작지붕이다. 지붕은 서까래 위에 흙과 나무껍질, 지푸라기 등으로 산자엮기를 해서 구조를 만들고 돌기와를 얹어 완성했다. 행랑채는 대문과 사랑방 한 칸, 창고 세 칸, 외양간 두 칸으로 되어 있다. 우측면에 있는 창고는 시멘트블록을 쌓아 벽을 만들어 확장한 공간이다. 바닥 면적은 약 42㎡이며, 지붕 형태는 우진각지붕이다. 안채 좌측면에 확장된 실외 주방과 안마당에 우물 한 개씩 만들었던 흔적이 있는데, 현재는 메워진 상태이다. 안채 배면에는 바닥을 파서 김치를 보관할 수 있는 광을 두었다. 대문 밖 마당은 집안에서 운영한 정미소와 마당을 공유했다.

[현황]

금토동 돌기와집성남시 금토동 공공주택지구개발 사업 시행에 따라 2022년 7월 해체를 시작했다. 해체된 건축 자재는 보존 후 금토 공공주택지구 내 공원에 복원할 예정이다.

[참고문헌]
  • 인터뷰(금토동 돌기와집 원소유주 임중열, 남, 1955년생, 2021. 8.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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