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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주상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103219
한자 宋柱祥
영어공식명칭 Song Jusang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기도 성남시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윤종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86년연표보기 - 송주상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07년 - 송주상, 성남 출신 의병장 남상목 의병 부대에서 종사로 참여
활동 시기/일시 1908년 3월 - 송주상, 서울에서 체포됨
추모 시기/일시 1995년 - 송주상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성격 의병
성별

[정의]

경기도 성남 지역에서 활동한 개항기 의병.

[개설]

송주상(宋柱祥)[1886~?]은 1907년(순종 1) 성남 출신의 남상목(南相穆)이 일으킨 의병 부대에 종사로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활동 사항]

1905년(고종 42) 11월 을사늑약(乙巳勒約)에 의해 대한제국은 일본한테 외교권을 박탈당하였다. 이어 1907년 7월 정미칠조약(丁未七條約)으로 군대까지 해산당하고 내정간섭까지 받게 되자 우리 민족은 의병을 일으켜 항전에 나섰으며, 특히 군대 해산으로 군인들이 대거 의병 부대에 합류하면서 항일 전쟁의 규모는 확대되었다. 이때 성남 지역에서는 남상목이 의병을 일으켰다. 남상목경기도 광주군 낙생면[현 성남시 분당구 운중동]에서 출생하였으며, 의병을 일으키기 전에 판교 지역에서 일본인들이 벌목을 하면서 판교 주민들에게 임금도 제대로 주지 않고 노동력만 착취한 것에 분개하여 항의하다가 파출소에 잡혀가 고초를 겪기도 하였다.

남상목 의병 부대에는 대한제국 시위대(侍衛隊) 출신인 김재선(金在善), 김태동(金泰東), 김경화(金景化), 이시영(李時永) 등 동지들과 함께 송주상도 가담하여 대오를 갖추게 된다. 이들은 경기도와 충청북도 일대에서 활동하였다. 의병 부대에 합류하기 전에 송주상은 은(銀) 세공업에 종사하고 있었던 만큼 실물 경제에 밝았다. 남상목송주상과 독일어 학교 학생이면서 인쇄업에 종사했던 김태동에게 종사 역할을 맡기고, 퇴역 군인이었던 김재선을 좌익장, 강춘선(姜春善)을 후군장, 김경화·이시영을 포군으로 삼아 진영을 확대 개편하였다. 이들은 충청북도 음성(陰城)에서 일본군 수비대와 교전하였고, 죽산(竹山)에서 전봉규(全奉奎)·민병찬(閔丙贊)의 의진과 연합하여 안성(安城)에서 일본군 수비대와 접전하여 큰 승리를 거두었고, 많은 무기를 노획하였다. 그러나 전봉규·민병찬 의진이 전리품을 독점했을 뿐 아니라 남상목 의진의 무기까지 빼앗아 갔다. 무기 없이 싸울 수 없었던 송주상은 하는 수 없이 상경하여 상업에 종사하다가 1908년 3월에 붙잡혔고, 유형(流刑) 10년을 받아 고초를 겪었다.

[상훈과 추모]

1995년 대한민국 정부에서 송주상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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