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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십리의 어린 시절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109002
지역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상대원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장노현

소년 구보는 1963년 서울 동대문구 답십리 315번지에서 태어났다. 당시 성남이라는 도시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사실 태어났다고 했지만, 그의 표현에 의하면, 아버지와 어머니에게서 출생되었을 뿐이다. 아버지는 2남 2녀를 출생시키고 구보의 동생이 갓 돌을 지날 무렵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혼자가 되셨다. 아무 재산도 없고 가진 것도 없이, 네 명의 자식을 떠맡은 어머니의 서울살이는 신산하기 그지없었다. 벌이가 막막해서 아이들의 끼니는 수제비가 다반사였다.

“근데 보니까 서울에서 우리 어머님이 사실 때 고생하는 거 어렴풋하게 생각나는 게 뭐냐면은, 동네 조금 여유롭게 사는 집안에 물을 한 통씩 길어다 주면 그 당시에 2원 3원 이렇게 받으시면서 그걸 모아서 생활을 유지하고. 당시에는 수도가 집집마다 있었던 것이 아니라 군데군데. 그 때 생각나는 게 69년 70년 초쯤 된 거 같애요. 우리가 생활이 어려우니까 서울 쪽에서 동사무소라든가 동사무소 쪽에서 식구별로다 밀가루 한 포대 한 포대 해가지고 네 식구면 넷, 다섯 식구면 다섯 포대를 한 달에 한 번씩 줬던가 일 년에 몇 번씩 줘서 그걸 통해서 생계를 유지해 나가고, 생각나는 게 뭐냐면 아침에는 밥을 먹었는데 점심과 저녁은 항상 밀가루 반죽에다 수제비 종류를 해먹고 살아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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