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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보의 구두세탁소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109016
지역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상대원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장노현

한 집안의 가장이 된 구보는 구두 공장에 다니면서 구두일 하는 사람들을 많이 알고 있었다. 그들이 그랬다. 직접 구두 수선하는 일을 배워 보라고, 공장 다니는 것보다 보수가 훨씬 낫다고. 그도 그 일을 해보고 싶었다. 한참을 망설이고 생각했다. 한 달 두 달 일 년, 그 이상 고민하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신문을 보게 되었다. 구두 세탁과 수선을 함께 하는 사람의 이야기였다. 그러나 그 사람처럼 큰길 옆 구두박스를 하나 얻어 하려면 만만치 않은 목돈이 필요했다. 그에게 그런 큰 돈이 없었다. 그래서 다른 방법을 택해야 했다. 동네 골목으로 눈을 돌렸다.

“동네 상대원3동 쪽 골목에 상가가 쪼그만 게 하나 나와 있더라구요. 그래서 그거를 한 달에 5백만 원에 30만 원씩 주는 그런 조그만 상가를, 한 3평 정도 되는 상가를 하나 얻어서, 이제 마님발 구두세탁소 라고 해가지고, (이름을 특별하게 지으셨네요) 예 마님발 구두세탁소 라고 해서. 그 당시에는 그렇게 하는 데가 전국적으로 몇 군데 없었어요. 성남에서는 최초였던 거 같앴구요. 신문을 보니까 구두 세탁해 가지고 괜찮게 돈벌이가 된다 이렇게 나와서, 내가 그거 보고 참고를 했어요. 다니던 구두 만드는 직장을 그만두고 그 구두 수선을 하면서 구두도 닦고 고쳐주고 하는 그런 거를 상가를 얻고 하게 됐어요.”

마님발 구두세탁소는 조그만 골목에 위치하고 있어서 사람들의 발길이 뜸할 수 밖에 없었다. 매상이 오르지 않는 것은 당연했다. 그래서 구보는 앉아서 손님을 기다리는 대신 수거 배달로 영업 방식을 전환했다. 광고 전단과 스티커를 만들어서 상대원 일대와 하대원, 단대동, 더 나가 은행동까지 뿌렸다. 아마도 10만 장은 족히 뿌렸을 것이다. 아파트와 단독주택, 심지어는 거리에 나다니는 아줌마들에게도 구두 수거 배달 서비스를 홍보했다. 다행히 큰 호응이 있었다. 이후 가게는 차츰 활기를 띠었다. 신속한 수거 배달을 위해 오토바이를 장만하고 면허증을 따기도 했다. 운도 따랐다.

“제가 구두 수선 가게를 딱 만들고 두어 달 지나고 나서 IMF가 터졌어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직업을 잃고 우리나라가 전체적으로 위기가 닥쳤는데 나는 그때 사람들이 경기가 안 좋으니까 막 수선해서, 옷 수선 신발 수선 집안에 있는 가전제품 수선해서 쓰는 게 유행이었었거든요. 그래서 때를 잘 만나서 일거리가 많이 있어 가지고 거기서 하면서 돈을 조금 벌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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