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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상대원 석유가게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109080
지역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상대원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장노현

그녀의 남편은 상대원1동에 자신의 석유가게를 내고 7년 간 운영했다. 그리고 잠깐의 외도(당구장 사업) 후에 상대원3동으로 옮겼다. 그 후로 지금까지 장장 9년의 세월이 흘렀다.

1994년도에 결혼을 했는데, 그 직후만 해도 석유가게의 석유는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남편과 두 명의 기사들이 배달을 나가면, 그녀는 가게로 석유를 사러 오는 사람들을 상대했다. 손님들은 줄을 서서 기다리기 일쑤였고, 그녀는 주유기를 들고 통마다 석유를 쏴주기에 바빴다. 처녀 때 마사지를 하던 부드럽던 손에 금새 굳은 살이 생겼다.

지금은 석유를 하는 사람들이 성남 전체를 대상으로 장사를 할 수 있지만, 그때는 정해진 구역이 있었다. 협회에서 구역을 엄격히 관리했고, 또 워낙 장사가 잘 되던 때라 다른 구역을 넘볼 이유도 별로 없었다. 남편의 석유가게는 급경사가 많은 상대원을 구역으로 했는데, 그러다 보니 힘든 일도 자연히 많았다.

상대원에 고바위가 많다 보면 석유란 게 조금만 떨어져도 왕창 되는 거예요. 석유통이 떨어지는 거예요. 한번 오토바이가 쓰러지면은, 석유 한통이 쓰러지면은, 그 추운 겨울에 신문 다 모아가지고 가갖고 거기 다 닦아주고 해놔야 돼요. 아니면, 석유는 미끄럽잖아요, 다른 차가 사고날 수가 있잖아요. 그럼 감당하기 힘들잖아요. 그게 아주 젤 곤욕이었어요. 막 5층 꼭대기까지 밧줄 잡아주고 그렇게 고생했던 거예요.”

뿐만 아니라 백씨는 하루 4끼의 밥을 해대야 했다. 저마다 식성이 다른, 남편과 직원 둘, 장정 사람의 식사를 하루 4끼씩 준비하는 일도 만만치는 않았다.

하루 배달이 끝나면, 남편은 난로 위에 호일을 깔고 차돌박이를 구웠다. 직원들하고 한 잔 하기 위해서였다. 그럴 때마다 그녀도 술자리에 끼여 한잔씩 들이켰다. 소주와 함께 행복이 목구멍을 타고 넘었다. 그러나 그때가 정말로 행복했던 시기라는 것을 그녀는 나중에 실감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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