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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손을 시조로 하고 설침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순창군 세거 성씨. 경주 설씨(慶州偰氏)는 설손(偰遜)을 시조로 하고, 본관을 경주로 하여 세계를 이어 오고 있다. 순창 지역 경주 설씨는 영광 군수를 지낸 설침(偰琛)이 관직에서 물러나 외가가 있는 순창으로 낙향하여 금과면 남계리 호치 마을에 입향한 이후 그 자손이 집성촌을 이루며 세거해 오고 있다. 금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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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순창군 금과면에 속하는 법정리. 고례리(古禮里)는 고례리와 송정리를 합하여서 부르는 법정리의 명칭이다. 고례리는 백제 후기 오씨(吳氏)가 처음 정착하여 살았다고 하며, 원래는 예촌(禮村)으로 부르다가 고례리로 개칭하였다고 전한다. 고례리는 고승예불(古僧禮佛) 형상이란 말의 준말로, 보록산(菩籙山)[300m]이 고승이고 청룡등이 목탁이며 범덕굴 백호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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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소를 시조로 하고 공동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순창군 세거 성씨. 곡부 공씨(曲阜孔氏)는 공소(孔紹)를 시조로 하고, 본관을 곡부로 하여 세계를 이어 오고 있다. 순창 지역 곡부 공씨 입향조는 공자의 64세손 학재(學齋) 공동(孔童)이다. 2000년 통계청의 인구 조사 자료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2만 2758가구, 7만 3093명이 거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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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에 금과면에서 간행한, 순창군 금과면의 역사·문화 등 여러 방면의 자료를 집대성한 인문 지리서. 『금과 향지(金果鄕誌)』는 1998년에 펴낸 『순창 향지(淳昌鄕誌)』의 지명고(地名考) 등을 바탕으로 하여 금과면의 역사·사회·정치·경제 등 여러 방면에 관한 자료를 모으고, 구전 설화와 통계 자료 및 관련 글들을 섭렵하여 2010년 12월 24일 금과 향지 발간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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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순창군 금과면 매우리 일대에서 논농사를 지을 때에 부르던 노동요. 「금과 들소리」는 500여 년 전부터 순창군 금과면 매우리 매우 마을을 중심으로 동전, 대장 들녘에서 불리던 농업 노동요이다. 그러나 1960년대 산업화 과정에서 기계화 영농으로 인하여 점차 잊혀져가고 있었다. 순창 농요 금과 들소리 보존회에서 우리 민족의 삶과 애환이 서린 「금과 들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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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순창군 남서부에 있는 행정 구역. 금동면(金洞面)의 ‘금’ 자와 목과면(木果面)의 ‘과’ 자를 합하여 금과면(金果面)이라 하였다. 순창군청 소재지인 순창읍과 9㎞ 떨어져 있다. 순창군의 남서부에 위치한 금과면은 1314년(충숙왕 1) 금동방(金洞坊)과 목과방(木果坊)으로 불렸다. 조선 시대에 들어와 1760년(영조 36) 금동방 11개 리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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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순창군 금과면 남계리 호치 마을에 있는 선돌 남계리 호치(虎峙) 마을은 고려 후기인 600여 년 전 경주 설씨(慶州薛氏)가 처음 입향하여 정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호치리의 지명은 범바위산[224m]과 관련이 있다. 서암산에서 뻗은 지맥이 범바위에서 동남쪽으로 내려오고, 호치 마을은 백호 등에 위치하고 있다. ‘호치’의 우리말은 ‘범재’였다. 호치의 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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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순창군 금과면에 속하는 법정리. 남계리(南溪里)는 남계 마을과 호치(虎峙) 마을을 합하여 부르는 법정리의 명칭이다. 400여 년 전 김해 김씨(金海金氏)가 처음 터를 잡고 살다가 집안이 몰락하여 이사하고, 그 후 유신곤(柳晨坤)이란 사람이 인근 호치 마을에서 거주하다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고 한다. 남계 다리 앞 서당재 밑에 동산촌이라는 마을이 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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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은열을 시조로 하고 홍윤희를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순창군 세거 성씨. 남양 홍씨(南陽洪氏)는 홍은열(洪殷悅)을 시조로 하고, 본관을 남양으로 하여 세계를 이어 오고 있다. 순창 지역 남양 홍씨 입향조는 소위 장군(昭威將軍) 홍윤희(洪允熙)다. 2000년 통계청의 인구 조사 자료에 따르면 남양 홍씨[당홍계]는 전국적으로 1만 7638가구, 37만 9708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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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순창군 금과면에 속하는 법정리. 내동리(內洞里)는 내동(內洞) 마을과 연화(蓮花) 마을을 합하여 부르는 법정리의 명칭이다. 내동 마을은 약 300여 년 전 순창 설씨(淳昌薛氏)가 정착하여 형성된 마을로 내동 마을의 ‘내(內)’ 자는 세 방향이 가려져 있는 곳에 한 나무의 뿌리 두 개가 깊숙이 들어간 형상을 말하고, ‘동(洞)’ 자는 깊숙한 굴을 의미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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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순창군 금과면에 속하는 법정리. 대성리(大星里)는 대성 마을과 대각(大角) 마을을 합해서 부르는 법정리의 명칭이다. 대성 마을은 지금으로부터 400여 년 전에 형성되었다. 서쪽 300m 지점 물위봉이란 산 아래 200가구 정도의 봉현이라는 부촌이 있었다. ‘물위봉’이란 지명은 산이 물 위에 떠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물이 너무 많아 마을에 피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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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순창군 금과면에 속하는 법정리. 동전리(銅田里)는 동전리와 만촌리(蔓村里), 대장리(大場里)를 합해서 법정리로 부르는 명칭이다. 동전 마을은 1567년(명종 22)경 설씨, 박씨, 김씨, 가씨 등 4성이 정착하여 시작된 마을이다. 금과면 명산인 아미산 정기를 타고 굽이굽이 내려와 자리를 잡은 것이 마치 와룡(瓦龍)과 같고 그 기슭이 꼭 구리 밭과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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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순창군 금과면에 속하는 법정리. 매우리(梅宇里)는 매우(梅宇) 마을, 밭매우[밭梅宇] 마을, 신매우(新梅宇) 마을을 통합하여 부르는 법정리의 명칭이다. 매우 마을은 한때 모정리(茅亭里)라 불렀으며, 울타리처럼 뻗은 나뭇가지나 소쿠리처럼 오목한 곳에 마을이 형성되고, 마을 뒷산의 형상이 집안에 매화꽃이 만발한 모양이라 하여 ‘매화 매(梅)’에 ‘집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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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순창군 금과면에 속하는 법정리. 목동리(木洞里)는 일목(一木) 마을, 이목(二木) 마을, 계전(桂田) 마을을 통합하여 법정리로 부르는 명칭이다. 일목 마을은 500여 년 전 김녕 김씨(金寧金氏)가 처음 터를 잡아 이룬 마을로, 마을 앞에 오래된 귀목이 서 있어서 마을의 재앙을 막아 준다 하여 이 신목을 본떠 이름 붙였다. 이목 마을은 능동(陵洞)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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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차달을 시조로 하고 유동유를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순창군 세거 성씨. 문화 유씨(文化柳氏)는 유차달(柳車達)을 시조로 하고, 본관을 문화로 하여 세계를 이어 오고 있다. 순창 지역 문화 유씨 입향조는 무안 현감 석헌(石軒) 유옥(柳沃)의 후예인 호계(虎溪) 유동유(柳東游)이다. 2000년 통계청의 인구 조사 자료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8만 7186가구,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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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순창군 금과면에 속하는 법정리. 발산리(鉢山里)는 뒷산 내룡이 노승예불형(老僧禮佛形)이며, 마을이 자리한 형국이 노승의 발형(鉢形)에 속한다 하여 발산(鉢山)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순창군의 남서부에 위치한 금과면은 1314년(충숙왕 1) 금동방(金洞坊)과 목과방(木果坊)으로 불렸다. 조선 시대에 들어와 1760년(영조 36) 금동방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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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순창군 금과면에 속하는 법정리. 방성리(訪聖里)는 방성(訪聖) 마을과 석촌(石村) 마을을 합하여 부르는 법정리의 명칭이다. 방성 마을은 임진왜란 당시 호가 학제(學濟)인 동자 선생(東字先生)이 전라남도 화순에서 피난온 뒤 터를 잡고 마을 이름을 방금(訪金)이라 불렀고, 1891년(고종 28) 방금 보다는 성인을 찾는 마을이란 뜻으로 ‘찾을 방(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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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순창군 금과면에 속하는 법정리. 기록에 따르면 방축리(防築里)는 동쪽으로 배를 매어 두는 배 맨 산의 형상이 있고, 마을에는 물이 가득 고인 방죽이 있어 제방을 막아 취락을 이루었다 하여 방죽골이라 불렸다고 한다. 또 다른 이야기는 마을이 삽살개가 쪼그리고 앉은 쥐를 쫓으려고 하는데 그 옆에 호랑이가 엎드려 있어 쫓아가지 못하는 형상이라 ‘방축(尨逐)’이라 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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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순창군 금과면 남계리에 있는 고려 후기 사당. 설보신은 원나라 광동 전운사(廣東轉運使)로 1344년 난적을 토벌하다가 세상을 떠났다. 그의 부인인 희태특늑은 정조(貞操)가 늠름하여 두 아들을 잘 길렀고, 장남 설문질은 효성이 지극하여 충·정·효 삼절로 불렸다. 손자 설손(偰遜)이 이들의 위패를 안고 고려에 귀화하자 공민왕은 부원후(富原候)를 내려 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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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순창군 금과면에 속하는 법정리. 수양리(水楊里)는 조선 전기 순천 김씨(順天金氏)가 터를 정한 뒤, 마을이 유지앵소(柳枝鶯巢) 형상이나 버드나무 숲이 빈약하여 마을 앞 수구에 비보(裨補)를 위해 버드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꾀꼬리는 버드나무 가지에 당사실로 줄을 늘여 줄 끝에 집을 만드는 습성을 갖고 있는데, 대롱대롱 매달린 것이 정상이므로 ‘수앵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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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호진을 시조로 하고 설자승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순창군 세거 성씨. 순창 설씨(淳昌薛氏)는 설호진(薛虎珍)을 시조로 하고, 본관을 순창으로 하여 세계를 이어 오고 있다. 순창 설씨는 순창의 토착 성씨로 1126년(인종 4) 설자승(薛子升)이 처음 구림면 율북리에 들어와 정착한 이후 그 후손이 금과면 동전리와 고례리, 내동리 내동 마을 및 쌍치면 양신리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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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순창군 금과면에 속하는 법정리. 장장리(獐藏里)는 마을 뒤에 있는 고지산이 뛰어가는 노루 형국으로 동쪽의 아미산과 북쪽의 덕진산, 서암산이 같은 모습으로 되어 있는데, 서쪽 산세가 약하여 그곳으로 빠져 뛰쳐나가는 형국을 하고 있다. 마을 형상이 달리는 노루가 망을 만나 주춤하고 서 있는 주장봉망(走璋逢網) 형상이므로 장정리라고 이름 붙였다. 189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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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을나를 시조로 하고 고득우를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순창군 세거 성씨. 제주 고씨(濟州高氏)는 고을나(高乙那)를 시조로 하고, 본관을 제주로 하여 세계를 이어 오고 있다. 순창 지역 제주 고씨 입향조는 문충공파(文忠公派) 고경(高慶)의 후예인 고득우(高得雨)이다. 2000년 통계청의 인구 조사 자료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10만 954가구, 32만 5950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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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순창군 금과면에 속하는 법정리. 청용리(靑龍里)는 옛날부터 취락이 형성되었던 것으로 보이며, 쇠굴과 가지매, 대숲말 등으로 불린 데서 알 수 있듯 마을의 역사에서 많은 변화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대숲말이란 이름의 경우, 우리 민족이 청렴결백을 신조로 하는 민족이기에 대쪽같이 정직 청렴하다는 뜻으로 ‘대숲’이라 많이 지어 불렀다. 청용리의 청용등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