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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순창군 순창읍 가남리 남산 마을에 있는 조선 후기 고령 신씨 가문의 정려. 가남리 효열부 정려(佳南里孝烈婦旌閭)는 신하록(申夏祿)의 처 황주 변씨(黃州邊氏)와 신상용(申尙溶)[1577~1618], 신책(申憡)을 기리고 있다. 신하록의 처 황주 변씨(黃州邊氏)는 여암(旅菴) 신경준(申景濬)의 손자며느리이다. 황주 변씨는 남편 신하록이 고질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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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순창군 순창읍 순화리에 있는 조선 전기 순창의 관비 간아지의 정려비. 간아지(干阿之)는 훈도(訓導) 유문표(柳文豹)의 첩이었는데, 유문표가 세상을 떠나자 슬퍼하며 3년 동안 상복을 입었다. 상례 기간 중 얼굴을 다듬지 아니하고 지극정성으로 복을 입었다. 부모가 거듭 개가하라고 강요하자 손수 자기 머리카락을 자르고 담양 얼그실 유훈도의 본가로 도망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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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순창군 인계면 갑동리에 있는 현대에 다시 세운 효열 비각. 갑동리 효열 비각(甲洞里孝烈碑閣)은 임용진(林容鎭)의 처 열부(烈婦) 대구 배씨(大邱裵氏)와 아들 효자 임종우(林宗祐)의 효열을 기린 정려각이다. 평택 임씨(平澤林氏) 임용진은 여말 선초 두문동 72현 중 한 사람인 임선미(林先味)의 15세 후손이다. 대구 배씨는 배윤복(裵胤福)의 딸로, 선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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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순창군 구림면 방화리에 있는 현대에 경주 정씨 3명의 효자를 기리기 위해 세운 비. 경주 정씨 삼효비(慶州鄭氏三孝碑)는 영조 때의 인물 정시태(鄭時泰)와 그의 손자 정채룡(鄭采龍), 증손자 정상신(鄭商臣) 등 3명의 효자를 기리는 비이다. 정시태는 어머니의 병환이 위급해지자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 어머니에게 피를 마시게 함으로써 천수를 누리게 하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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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순창군 동계면 구미리에 있는 조선 후기에 세운 정려. 고려 직제학 양수생 처 열부 이씨려(高麗直提學楊首生妻烈婦李氏閭)는 나라에 큰일이 생길 때마다 땀을 흘린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판서 권성(權晟)이 지은 「열부 숙인 이씨 묘비 음기(烈婦淑人李氏墓碑陰記)」와 운계(雲溪) 황신구(黃信龜)가 지은 「열부 숙인 이씨 정려비 음기(烈婦淑人李氏旌閭碑陰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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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순창군 동계면 이동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열부 옥천 조씨의 정려. 옥천 조씨(玉川趙氏)는 경주 김씨(慶州金氏) 김명홍의 부인이다. 15세에 결혼하였는데 이듬해 남편이 세상을 떠났다. 슬하에 자녀 하나 없이 가난한 가세에도 오직 시부모를 봉양하며 한평생 수절하였다. 김명홍 처 옥천 조씨 정려는 순창군 동계면 이동리 이동 마을 서쪽 야산 기슭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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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순창 지역의 열녀이자 효부. 본관은 밀양(密陽). 아버지는 박준화(朴準化)이고, 남편은 김해 김씨(金海金氏) 김봉현(金琫炫)이다. 김봉현 처 열녀 밀양 박씨는 김봉현과 혼인한 후 나이 드신 시아버지가 중풍(中風)을 앓자 7년여 동안 정성을 다하여 약시중을 하며 간병하였다. 그러나 끝내 시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예를 갖추어 삼년상을 마쳤다. 이후 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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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순창군 팔덕면 장안리에 있는 개항기 효자·효부를 기리는 정려. 김한기·전주 이씨 효자 효부 정려(金漢基·全州李氏孝婦孝子旌閭)는 순창군 팔덕면 장안리 평창 마을의 마을 회관 뒤에 있다. 정려각은 1874년 8월에 세워졌다. 정려각은 겹처마 맞배지붕이며 185×185×190㎝ 규모이다. 안에는 현판 2기가 있으며 내용은 다음과 같다. ‘효자 증통훈대부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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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순창군 금과면 남계리에 있는 유도찬과 유진곤의 처 완산 최씨의 효열을 기려 현대에 세운 비각. 완산 최씨(完山崔氏)는 중종조의 명신인 유옥(柳沃)의 후예 유진곤(柳震坤)의 처로 17세에 혼인해 시부모를 잘 봉양하고 동서들과 화목하게 지내 효순이라 칭송을 받았다. 1805년(순조 5) 남편이 괴질에 걸려 소생하기 어렵게 되자 최씨가 칼로 자기 볼깃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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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순창군 금과면 목동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효자 박상유의 효자비. 1870년경 이목동에 거주한 박상유(朴相囿)는 밀양 박씨(密陽朴氏)로 규정공 박현의 후손 박덕인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삼년 동안 병중인 어머니의 간호에 정성을 다하였다. 다섯 손가락을 절단하여 수혈한 끝에 어머니의 수명을 연장시켰고, 돌아가신 뒤에는 3년간 시묘를 하였다. 박상유의 효행에 대해 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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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순창군 적성면 석산리에 있는 개항기 박태구·박만동·박태현의 효행을 기린 정려각. 박태구(朴泰龜)는 매일 물고기를 낚아 어버이를 봉양하였으며, 어버이 상을 당해 여묘를 하였다. 박태현(朴泰鉉)은 일찍이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를 지극정성으로 봉양하였으며, 상을 당해 슬퍼하고 서러워하였다. 제삿날에는 늘 반드시 새 옷을 지어 여묘살이 하던 곳에서 불에 태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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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순창군 풍산면 반월리에 있는 개항기 김노성, 김양기, 김양기의 처 경주 최씨의 정려. 반월리 삼절 정려는 김노성, 김양기, 김양기 처 경주 최씨(慶州崔氏) 등 세 사람의 충절과 효행을 기리기 위하여 세웠다. 김노성은 호가 서암(書庵), 본관은 안동(安東)으로 순창군 풍산면 도림리[현 풍산면 반월리]에서 태어났다. 평소에 용력이 뛰어나고 지혜가 출중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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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순창군 구림면 구곡리에 있는 조선 후기 삼효자의 정려각. 삼효자 정려각(三孝子旌閭閣)은 김녕 김씨(金寧金氏) 집안의 3대에 걸친 3명의 효자를 기려 1810년(순조 10) 4월에 세워졌다. 단종 때 순절한 김문기(金文起)의 후손인 김영만(金永萬), 김영만의 아들 김광옥(金光玉)과 손자 김종엽(金宗燁)이 그들이다. 김영만, 김광옥, 김종엽은 효심이 깊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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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에 순창 문화원에서 간행한, 전라북도 순창군의 효자와 열부의 업적을 정리한 단행본. 효(孝)는 사람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덕목이다. 부모에게 효도를 하는 것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충(忠)의 정신으로 이어진다. 열(烈) 역시 가정 윤리로서 충으로 연결된다. 오늘날 외래문화의 범람으로 우리의 전통문화와 미풍양속이 사라지고 있으며, 부모와 자식 간의 대화가 없어지고 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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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순창 출신의 효자. 본관은 고령(高靈). 자는 명보(明甫), 호는 칠휴당(七休堂). 귀래정(歸來亭) 신말주(申末舟)[1429~1503]의 6세손으로 아버지는 신흡이다. 신상용(申尙溶)[1577~1618]은 1577년(선조 10) 순창군 순창읍 가남리 남산대에서 출생하였으며, 과거 공부를 일삼지 않고 은거하여 성현의 책을 읽었다. 천성이 지극히 효성스러워 평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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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순창군 적성면 대산리에 있는 개항기 열부 삭령 최씨의 정려. 열부(烈婦) 삭령 최씨(朔寧崔氏)는 선비 신찬식(申燦植)의 아내로 남편이 병에 걸려 위중하자 신명으로 기도하고 손가락을 잘라 피를 먹이며 간호하였다. 남편이 세상을 뜬 후에도 시부모를 지극히 봉양하여 주변에 칭송이 자자하였다. 이에 장례원 경(掌隷院卿) 김사철(金思轍)이 장계를 올려 나라에서 19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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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순창군 동계면 구미리에 있는 양사선의 효행비. 양사선(楊士選)[1524~1566]은 본관이 남원(南原), 자는 원택(元擇)으로 일명 돈암공(墩庵公)이라 하였다. 부정공(副正公) 양홍(楊洪)의 장남이며, 처는 진주 소씨(晉州蘇氏)로 진사 소순(蘇巡)의 딸이다. 자녀는 2남 1녀를 두었다. 정9품 종사랑(從仕郞)에 가자(加資)되었으며, 학문을 닦아 명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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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순창군 적성면 평남리에 있는 조선 후기 양시진 처 강진[도강] 김씨의 충절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정려. 양시진의 처 강진 김씨는 1577년(선조 10) 9월 4일에 지금의 정읍시 칠보면에서 김대립(金大立)의 딸로 태어났다. 김대립은 문행(文行)으로 천거되어 선무랑(宣務郞) 사포서 별제(司圃署別提)를 지냈으며,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의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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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순창 지역의 열녀. 본관은 도강(道康). 아버지는 별제(別提) 김대립(金大立), 남편은 구음공(龜陰公) 양시진(楊時晉)[1573~1615]이다. 양시진 처 열녀 강진 김씨[1577~1650]는 1577년(선조 10) 지금의 전라북도 정읍시 칠보면에서 출생하였다.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학문을 깊이 수학하여 일찍이 시문(詩文)에 능하였다. 양시진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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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순창군 적성면 괴정리에 있는 효자 양인규 처 밀양 박씨의 정려각. 양인규 처 열부 밀양 박씨 정려(梁麟圭妻烈婦密陽朴氏旌閭)는 순창군 적성면 괴정리 마계 마을 어귀의 서쪽 길가 산기슭에 있다. 1887년(고종 24) 정려각이 세워져 오늘날에 이른다. 양인규 처 열부 밀양 박씨 정려는 맞배지붕에 겹처마이다. 정려각에는 ‘효자 증 사헌부 감찰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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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순창군 순창읍 교성리에 있는 이현구 처 옥천 조씨의 열행을 기리는 개항기에 세운 정려비와 비각. 옥천 조씨(玉川趙氏)는 옥천 부원군(玉川府院君) 조원길(趙元吉)의 후손이다. 남편 이현구(李炫龜)가 고질병이 있어 백방으로 조치하였으나 소용이 없었다. 하늘이 내린 명이 이뿐인가 하고는 집안사람들에게 울면서 말하기를 “아들 생산도 못해 받들고 의탁할 곳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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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순창군 풍산면 우곡리에 있는 이여광 처 죽산 안씨의 열행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조선 후기의 정려. 이여광 처 죽산 안씨 정려(李汝光妻竹山安氏旌閭)는 순창군 풍산면 우곡리 우곡 마을 당산나무 아래에 있다. 이여광 처 죽산 안씨 정려는 1822년(순조 22)에 세워졌다. 2기둥 석(石) 정려이며 규모는 43㎝×57㎝×6㎝이다. 죽산 안씨에 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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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순창 지역의 효부이자 열부. 본관은 전주(全州). 아버지는 이주의(李周儀)이고, 남편은 나주 임씨(羅州林氏) 임병구(林炳球)이다. 『전북 향교 원우 대관(全北鄕校院宇大觀)』에 의하면, 임병구 처 열녀 전주 이씨[1883~?]는 1883년(고종 20)에 출생하였고, 어려서부터 효성이 깊어 칭송이 자자하였다. 나주 임씨 집안으로 출가하여 시부모를 친부모처럼 섬기고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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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순창군 동계면 수장리에 있는 효자 정국영의 비. 정국영(鄭國永)의 호는 영암, 자는 군백, 본관은 경주(慶州)이다. 정국영은 부모 봉양에 극진하였으며 형제간에 우애가 깊었고, 평소 근검하며 빈곤한 이웃을 도와주는 데 애써서 주변에 칭송이 자자하였다. 이에 1921년 가선대부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에 추증되었다. 1960년 3월 한식에 밀양 박씨(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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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순창 출신의 효자. 본관은 옥천(玉川). 자는 백원(百源), 호는 독처당(獨處堂). 할아버지는 참봉(參奉) 조응견(趙應堅)이고, 아버지는 조헌을 따라 순절한 조여관(趙汝寬)이다. 조의효(趙義孝)[1592~?]는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순국한 절사 조여관의 유복자로 태어났다. 3세 때에 어머니에게서 아버지가 임진왜란 중에 충청도 금산 싸움에서 순절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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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순창군 쌍치면 종암리에 있는 근대 김종삼과 처 김해 김씨의 정려. 종암리 효열부 정려(鍾岩里孝烈婦旌閭)는 순창군 쌍치면 종암리 홀금 마을 남쪽 언덕에 있다. 효자 경주 김씨(慶州金氏) 김종삼(金種滲)과 효열부 숙부인 김해 김씨(金海金氏)의 정려는 1893년(고종 30) 4월에 예조에서 계를 올려 이루어졌다. 1937년 3월에 후손인 김운환(金雲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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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순창 출신의 효자.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달천(達千). 고려 왕조에 절의를 지킨 대사간 문하찬성사 최양(崔瀁)[1351~1424]의 13세손이다. 최관익(崔寬翊)[1817~?]은 순창군 구림면 월정에서 출생하였다. 어려서부터 천성이 인후(仁厚)하고 의용(儀容)이 단정하며 우애가 남달랐고 부모를 봉양하는 데 효성이 지극하였다. 부모의 병(病)에 정성을 다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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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순창 출신의 효부이자 열녀. 본관은 김해(金海). 아버지는 탁영(濯纓) 김일손(金馹孫)의 후손인 김종현(金宗鉉)이고, 남편은 화순(和順) 최씨 최윤문(崔允文)이다. 최윤문의 처 효부 김해 김씨[1865~?]는 1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였다. 혼인하여 시부모를 정성껏 공양하고 남편을 공경함에 부도(婦道)를 다하였다. 남편이 병이 드니 백방으로 약을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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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순창군 유등면 외이리에 있는 개항기 평택 임씨 5대에 걸친 6명의 효자 정려. 6명의 효자는 임시채(林時采), 임양성(林養性), 임광수(林光洙), 임종혁(林宗赫)·임종빈(林宗彬) 형제 및 임환(林煥)이다. 임시채는 선친의 묘소에서 시묘를 하던 중 지극한 효성에 감동한 큰 호랑이가 임씨를 보호하며 3년 동안 같이 묘를 지켰다고 한다. 또한 영조가 세상을 떠나니 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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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순창군 유등면 외이리에 있는 개항기에 조선 후기 평택 임씨 5세 6효를 기리기 위해 세운 비. 임시채(林時采)는 평택 임씨(平澤林氏)의 시조 임중연(林仲沇)의 14세손이며 두문동 72현의 선도자 두문재(杜門齋) 임선미(林先味)의 13세손이다. 1892~1893년 임시채로부터 5세 6효(五世六孝)[임시채와 그의 아들 임양성(林養性), 임양성의 아들 임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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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순창 출신의 효자. 본관은 청주(淸州). 아버지는 갖바치[皮工]였다. 한해오(韓海悟)는 타고난 자질이 지극히 효성스러웠다. 아버지가 즐기시는 음식을 정성껏 마련해 올리고 떨어지지 않도록 애썼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묘소가 약 8㎞ 밖에 있었음에도 날마다 가서 곡을 하고 비바람도 피하지 않았다. 아버지의 신위를 방에 모시고는 아침저녁으로 식사를 올리고, 제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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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순창군 유등면 무수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진주 강씨의 효열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진주 강씨(晋州姜氏)는 강영준의 딸로 대제학 문량공(文良公) 강희맹(姜希孟)의 후손이다. 세상 사람들이 태어나면서 정숙함을 지녔다고 하였다. 어려서부터 부모를 한결같이 아침저녁으로 정성스럽게 살핌과 동시에 곁에서 항상 부드러운 목소리로 모셨다. 어버이가 병이 생기자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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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순창군 유등면 오교리에 있는 화순 최씨 일가의 효열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와 정려. 1929년에 최길영(崔吉榮) 처 김해 김씨 효열 정려와 최문석 처 안동 권씨 효열각(崔文碩妻安東權氏孝烈閣)이 건립되었고 1958년에 최영국(崔榮國) 효행비가 건립되었으며, 1963년에 최윤문 처 김해 김씨 효열 행적비[崔允文妻金海金氏 孝烈行蹟碑]가 건립되었다. 화순 최씨 효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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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순창군 복흥면 서마리에 있는 조선 후기 효자 김경운을 기리기 위해 세운 정려. 김경운(金景運)은 광산 김씨(光山金氏)로 선조 때 사마시에 급제하였고 효행이 뛰어나 부모가 살아 있을 때는 물론 돌아가신 후에도 시봉(侍奉)하여 조정에서 정려를 내렸다. 이후 마을 이름을 효노동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효자 김경운 정려(孝子金景運旌閭)는 순창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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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순창군 금과면 내동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에 세운 효자 김흥수의 비. 효자 김흥수 유허비(孝子金興壽遺墟碑)는 순창군 금과면 내동리 내동 마을과 동전리 대장 마을을 구분 짓는 지방도 730호선 도로변 북쪽 언덕에 있다. 재질은 화강암이며 규모는 높이 169㎝, 너비 55㎝, 두께 17㎝이다. 1933년 계유(癸酉) 8월 행주(幸州) 기노선(奇老善)이 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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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순창군 팔덕면 청계리에 있는 개항기 효자 박경원의 정려. 박경원(朴慶元)은 문익공(文翼公) 박효신(朴孝臣)의 후손이다.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였으며, 아버지를 여읜 뒤에는 어머니에게 효성을 다하였다. 어머니가 병이 드니 손가락을 잘라 피를 입에 넣어 드려 10여 년을 더 살게 하였고, 병이 재발해 임종하려 하자 볼깃살을 베어 약과 함께 드려 5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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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순창군 유등면 유촌리에 있는 조선 후기 효자 신상용의 정려. 신상용(申尙溶)[1577~1618]의 자는 명보(明甫), 호는 칠휴당(七休堂), 본관은 고령(高靈)이다. 선전(宣傳) 신흡(申洽)의 아들로 순창 남산대(南山坮)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병이 들어 생선을 먹고자 하니 한겨울에 강가에 나가 얼음을 깨어 잉어를 잡아 아버지에게 드렸다. 이 같은 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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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순창군 구림면 방화리에 있는 개항기 효자 최창갑을 기리는 정려. 최창갑(崔昌甲)의 자는 경화(慶化), 호는 농은(農隱), 본관은 초계(草溪)이다. 효성이 지극하여 부모를 잘 봉양하였다. 아버지가 병환이 드니 얼음을 깨고 잉어를 잡아 구워 드려 소생시켰다. 효행과 청렴이 자자하자 순찰사 이도재와 암행어사 어윤중(魚允中)[1848~1896]이 벼슬에 나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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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순창군 순창읍 순화리에 있는 효자 한해오를 기리기 위해 세운 비. 한해오(韓海晤)는 갖바치의 아들로 성품이 지극히 효성스러웠다. 1760년에 편찬된 『옥천 군지』에 의하면 한해오는 아버지가 즐기는 음식을 정성껏 마련해 올리고 떨어지지 않도록 애썼다. 아버지가 세상을 뜬 후 묘소가 약 7.85㎞[20리] 밖에 있었으나 날마다 가서 곡을 하고 비바람도 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