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19년 3월 21일부터 1919년 4월 11일까지 경상북도 영주 지역에서 일어난 만세시위운동. 1919년 서울에서 비롯된 3.1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될 무렵 영주 지역에서도 만세시위운동이 일어났다. 영주 지역의 만세시위운동은 1919년 3월 21일 영주면 만세시위운동을 시작으로 1919년 4월 9일 풍기면 만세시위운동, 1919년 4월 11일 장수면 만세시위운동으로 이어졌다....
-
일제강점기 영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권창수(權昌銖)[1892~1970]는 1919년 4월 4일 은산장터 만세운동을 주도하였으며, 이 사건으로 체포되어 징역 8월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권창수는 경상도 풍기군 하리면 금곡동[지금의 예천군 은풍면 금곡리]에서 출생하였다. 권창수는 평소 농사를 지으면서도 인근 시장에서 어물장사를 하였기에 세상 물정에...
-
일제강점기 영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용준(金容俊)[1873~1932]은 1919년 4월 9일 지금의 영주시 풍기읍에서 일어난 풍기면 만세시위운동에 참여했다가 체포되었다. 김용준은 1873년 6월 13일 지금의 영주시 봉현면 대촌리에서 출생하였으며, 농사를 짓고 살고 있었다. 김용준은 1919년 4월 9일 영주군 풍기면 성내동의 풍기장터에서 열린 풍...
-
일제강점기 영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남상필(南相弼)[1891~1972]은 1919년 4월 9일 안용호(安容鎬)[1884~1942] 등이 주도한 풍기면 만세시위운동에 참여했다가 일본 헌병에게 체포되었다. 남상필은 지금의 경상북도 영주시 봉현면 대촌리 출신이다. 남상필은 고향에서 농사를 짓다가 1919년 4월 9일 영주군 풍기면 성내동 풍기장날에 같은...
-
일제강점기 영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남영진(南永鎭)[1894~1920]은 같은 마을의 최성원(崔盛源)[1894~1926]·안용호(安容鎬)[1884~1942]와 함께 1919년 4월 9일 풍기면 만세시위운동을 일으켰다가, 일본 헌병에게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남영진의 본관은 영양(英陽), 본적은 지금의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 보계리이나 영주시 봉현면 대촌리에서...
-
일제강점기 영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안용호(安容鎬)[1884~1942]는 1919년 4월 3일 일어난 풍기면 만세시위운동을 주도하였으며, 일본 헌병에게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안용호는 1884년 12월 17일 지금의 영주시 봉현면 대촌리에서 출생하였고,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었다. 안용호는 평소 일제의 식민통치와 경제적 침탈에 불만이 컸다. 그러던...
-
1919년 3월 21일 경상북도 영주 지역의 영주장터에서 일어난 만세시위운동. 영주면 만세시위운동은 1919년 3월 21일 영주장터에서 일어났다. 영주면 만세시위운동은 박인서(朴仁緖)·오하근(吳夏根)·권태중(權泰中)이 주도했다. 박인서·오하근·권태중은 준비해 간 태극기를 흔들며 군중과 함께 대한독립만세를 외쳐, 출동한 일본군 헌병들에게 그 자리에서 체포되었...
-
일제강점기 영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오하근(吳夏根)[1897~1963]은 1919년 영주면 만세시위운동을 주도하다 체포되어, 징역 1년 6월형을 선고받았다. 오하근의 본관은 고창(高敞), 호는 농고(聾故)이다. 아버지는 통덕랑 오응철(吳應澈)이며, 1897년 10월 15일 지금의 경상북도 영주시 조암동 사일마을에서 태어났다. 오하근은 농촌에서 농사를...
-
1919년 3월부터 4월까지 영주 지역 유림 대표들이 국제사회에 우리나라의 독립을 청원한 독립운동. 1919년 3월 곽종석(郭鍾錫)[1846~1919]을 대표로 한 영남 유림과 김복한(金福漢)[1860~1924]을 대표로 한 호서 유림 등 137명이 유림단의 이름으로 파리강화회의에 한국의 독립을 호소하는 「독립청원서」를 보냈다. 이때 영주 지역 출신으로 참가한 인사는 김동진(金東鎭...
-
일제강점기 영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용헌(李容憲)[1880~1934]은 1919년 4월 4일 은산장터 만세운동을 주동하다 체포되었으며, 징역 8월형의 옥고를 치렀다. 이용헌은 경상도 풍기군 하리면 금곡동[지금의 예천군 은풍면 금곡리]에 거주하였다. 이용헌은 평소 농사를 짓고 살면서 일제의 식민통치에 대한 강한 반발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던 중 고...
-
일제강점기 영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재덕(李宰德)[1866~?]은 은산장터 만세운동을 주도하였으며, 이 사건으로 체포되어 징역 8월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재덕은 경상도 풍기군 하리면 금곡동[지금의 예천군 은풍면 금곡리]에서 출생하였다. 이재덕은 평소 농사를 지으며 한학을 공부하였다. 일제의 식민통치에 강한 불만을 품고 있던 중에 고종황제의...
-
일제강점기 영주 출신 독립운동가. 이화백(李和伯)[1884~1968]은 1919년 4월 9일 풍기면 만세시위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체포되었다. 이화백은 1884년 4월 3일 지금의 영주시 봉현면 대촌리에서 출생하였다. 이화백은 1919년 4월 9일 안용호(安容鎬)[1884~1942]·최성원(崔盛源)[1894~1926]·남영진(南永鎭)[1894~1920]...
-
1919년 4월 11일 영주의 장수면 호문리에서 일어난 만세시위운동. 장수면 만세시위운동은 1919년 4월 11일 영주군 장수면 호문리에 있는 청년 손달익(孫達翼)이 호문리 마을 서당에서 같이 공부하는 장윤덕(張潤德)·송득용(宋得龍)·손용백(孫龍伯)·황학명(黃學明) 등과 함께 호문리 마을 앞산으로 올라가서 벌인 만세운동이다. 그러나 호문리를 순찰 중이던 헌...
-
일제강점기 영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채동진(蔡東鎭)[1878~1967]은 1919년 4월 4일 은산장터 만세시위운동을 주도하였으며, 이 일로 체포되어 징역 8월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채동진은 경상도 풍기군 하리면 금곡동[지금의 경상북도 예천군 은풍면 금곡리]에서 출생하였다. 채동진은 농사를 지었으며, 평소 한학을 공부하였다. 채동진은 일제 식...
-
일제강점기 영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최성원(崔盛源)[1894~1926]은 같은 마을의 안용호(安容鎬)[1884~1942]·남영진(南永鎭)[1894~1920]과 함께 1919년 4월 9일 풍기면 만세시위운동을 주도하다, 일본 헌병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최성원은 1894년 8월 12일 지금의 경상북도 영주시 봉현면 대촌리에서 출생하였다. 최성원은...
-
1919년 4월 9일 영주 지역의 풍기장터에서 일어난 만세시위운동. 풍기면 만세시위운동은 영주군 봉현면 농민 안용호(安容鎬)·남영진(南永鎭)·최성원(崔盛源)이 주도하였다. 안용호·남영진·최성원은 1919년 4월 9일 영주군 풍기면 장터에서 준비한 태극기를 가지고 오후 3시 무렵 만세시위운동을 펼쳤다. 그러나 출동한 일본군 헌병들에 의해 안용호 등 주도자들이...
-
일제강점기 영주 출신 독립운동가. 황정흠(黃政欽)[1881~1949]은 1919년 4월 9일 경상북도 영주군 풍기면 만세시위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일본 헌병들에게 체포되었다. 황정흠의 본관은 창원(昌原), 자는 도민(道敏), 이명은 황정흠(黃正欽)이다. 아버지는 황재훈(黃在薰)이다. 황정흠은 어려서부터 신체가 강건하고 힘이 매우 세었으며, 무인의 기질이 있었다고...
-
일제강점기 영주 출신 독립운동가. 황정흠(黃鼎欽)[1889~1955]은 1919년 4월 9일 영주군 풍기면 만세시위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황정흠의 본관은 창원(昌原), 자는 이경(耳敬), 호는 후송(後松), 이명은 황승흠(黃昇欽)이다. 대사헌을 지낸 황섬(黃暹)[1544~1616]의 11대 종손이며, 아버지는 황재석(黃在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