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40058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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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東湖亭 |
영어음역 | Donghojeong |
영어의미역 | Donghojeong Pavilion |
분야 | 생활·민속/생활,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금계리 351[풍산태사로 2833-32]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정진영 |
성격 | 누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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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식 | 홑처마 팔작지붕 |
건립시기/일시 | 조선 중기 |
정면칸수 | 3칸 |
측면칸수 | 1칸 반 |
소재지 주소 |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금계리 351[풍산태사로 2833-32] |
소유자 | 원주변씨 종중 |
[정의]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금계리에 있는 조선 중기 정자.
[개설]
동호정은 변영청(邊永淸, 1516~1580)이 건립한 정자이다. 변영청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원주(原州), 자는 개백(開伯), 호는 동호(東湖)이다. 변영(邊寧)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변희예(邊希乂)이고, 부친은 원주부원군(原州府院君) 변광(邊廣)이다. 이황(李滉)의 문인이다. 1546(명종 1)에 진사가 되었고, 1549년(명종 4)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사헌부집의(司憲府執義)를 거쳐 남원부사, 대구부사, 상의원정(尙衣院正) 등을 역임하였다. 특히 1570년(선조 3) 8월에는 선정을 베풀어 왕으로부터 말 안장을 받기도 하였다. 그러나 1573년(선조 6)에는 오직 자신의 부귀만을 알고 탐학한다는 이유로 탄핵을 받았다. 저서로 시집인 『동호집(東湖集)』이 있다.
[위치]
안동시 서후면 금계리 언덕 위의 산을 깎아 지어 풍광이 좋은 편이며 동쪽을 바라보고 있다.
[변천]
정자의 건립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며 처음에 안동시 법흥동 낙동강 언덕에 있었으나 현 위치로 이건하였다.
[형태]
정자의 양식은 누마루가 설치된 누각식 정자이다. 정자의 둘레는 일곽의 흙돌담으로 둘러져 있으며, 정자의 정면에 기와를 얹은 사주문을 설치하였다.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1칸 반으로 아담하게 지었다. 정자의 지붕은 팔작지붕이고 홑처마로 되어 있다.
정자의 앞면 반 칸은 난간을 두른 누마루로 되어 있으며, 누마루를 받치고 있는 기둥은 둥근기둥을 사용하였다. 기둥은 누마루 아래에서부터 받쳐져 있는데 누마루 아래 누하주(樓下柱)는 기단 위에 세워져 있지 않고, 지면과 맞닿아 있다. 누하주의 길이는 지면으로부터 120㎝ 정도이다. 누하주 뒤에는 막돌 허튼층쌓기로 만든 기단이 있다. 기단의 높이는 80㎝ 정도이다. 기단 양쪽에는 협칸의 방을 위한 아궁이가 있다.
누마루로 올라가는 출입구는 난간 양 측면이다. 난간 측면은 끝부분에 난간을 두르지 않고 마루로 처리하여 누마루로 출입할 수 있게 하였다. 누마루는 측면이 반 칸 크기이다. 누마루 어칸의 처마 밑에는 ‘동호정(東湖亭)’이라고 쓰인 현판이 게첨되어 있다.
누마루로 올라서면 방 2칸과 마루방 1칸이 있다. 양 협칸은 방이고 어칸은 마루로 이루어졌다. 누마루에서 방으로 들어가는 출입문은 각 칸에 설치되어 있는데, 어칸은 사분합문이고, 양쪽 협칸의 방은 세살문 쌍여닫이문이다. 협칸의 방 아래에는 머름이 설치되어 있고, 어칸 사분합문 위에는 ‘동호당기’라고 쓰인 현판이 게첨되어 있다. 누마루에서 보기에 우협칸 방문 위에는 ‘동호당운(東湖堂韻)’이라고 쓰인 현판을 왼쪽 모서리에 게첨하였다.
어칸 마루방의 뒷벽은 판벽으로 처리하였으며 판문을 설치하였다. 양쪽 협칸 방의 천장은 널천장이고, 어칸의 마루방과 서로 출입할 수 있도록 사분합문을 설치하였다. 사분합문은 정자문과 세살문이 혼합된 무늬로 되어 있다. 양쪽 협칸 방의 바깥 측면에도 출입문이 설치되어 있으며, 기단 아래에 화강암으로 된 댓돌을 놓아 정자에 오르내리기에 편리하도록 배려하였다.
[현황]
2009년 현재 원주변씨 종중에서 소유 및 관리하고 있다. 동호정은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은 듯 주위에 잡초들이 많이 나 있으며, 정자의 마당과 내부도 매우 어지러운 편이다. 서까래의 부식이 심하고 기와의 상태도 좋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