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4016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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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賢東 |
영어음역 | Gim Hyeondong |
이칭/별칭 | 김의성(金義城),회문(會文),의정(義正)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금계리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한준호 |
성격 | 독립운동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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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금계리 |
성별 | 남 |
생년 | 1876년 |
몰년 | 1927년 |
본관 | 의성 |
대표경력 | 의용단 경북단 간사 |
[정의]
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김현동은 1876년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금계리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의성(義城)으로 학봉 김성일(金誠一)의 후손이다. 1927년 사망하였으며 묘소는 대전광역시 유성구 갑동 산23-1번지 국립대전현충원의 애국지사 묘역에 있다.
[활동사항]
김현동은 1907년 이강년(李康秊) 의진에 참가하여 김용환(金龍煥)과 함께 적정(敵情) 탐지의 임무를 수행하였다. 1911년 김상태(金尙台) 의진에 참가하여 순흥 상단곡(上丹谷) 전투에서 부상을 입고 김용환의 도움으로 예천군 유천면 중평리로 돌아왔다. 1921년 김현동은 의용단(義勇團)에 가입하여 예천군 간사로 활약하면서 군자금을 모으다 1922년 12월 18일 일제 경찰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의용단은 김찬규(金燦奎) 등이 만주 지린성[吉林省]의 군정서(軍政署)에 군자금을 지원하고자 조직한 독립군 지원 단체이다. 주로 경상북도와 경상남도 지역을 무대로 활동한 의용단은 경상북도 안동을 비롯하여 영천(永川)·군위(軍威)·영일(迎日)과 경상남도 창녕(昌寧) 등지의 부호를 대상으로 군자금 모집 활동을 전개하였으나 친일 부호들의 외면으로 큰 성과를 거두지는 못하였다.
[상훈과 추모]
1983년 대통령 표창을 받았고,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