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5009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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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勞動運動 |
영어음역 | Nodongundong |
영어의미역 | Labor Movement |
분야 | 정치·경제·사회/사회·복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기도 안산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태순 |
[정의]
경기도 안산시의 노동자 계층이 생활 조건 개선을 위해 전개하는 조직적인 운동.
[개설]
노동운동의 가장 일반적인 형태는 노동조합 운동이나 노동운동이 모두 노동조합 운동인 것은 아니다. 노동운동은 목적에 따라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구분된다. 첫째로 생산자로서의 임금 노동자들이 임금과 노동 시간 등 노동 조건의 유지·개선을 목적으로 벌이는 노동조합 운동이다. 둘째로 선거권을 가진 정치적 시민으로서의 노동자들이 조직적인 활동을 통해 정치 활동을 전개하는 노동자 정당 운동이다. 영국의 노동당이나 스웨덴의 사회당과 같은 계급 정당이 여기에 해당한다.
셋째로 소비자로서의 노동자들이 노동의 재생산과 관련한 운동을 전개하는 소비조합 운동이나 공제조합 운동 또는 협동조합 운동이다. 로치데일 협동조합이 여기에 해당한다. 경기도 안산시의 노동운동은 지역의 산업 구조를 반영하는 중소사업장 중심의 노동운동으로 첫 번째 유형에 가까운 편이었으나 시간이 경과하면서 일정 부분 두 번째 유형의 측면도 보여 주고 있다. 안산 지역 노동운동의 전개 과정을 시기별로 살펴본다.
[1980년대]
안산은 호주의 캔버라시를 모델로 형성된 국내 최초의 계획도시이자 중소사업장이 밀집된 반월공업단지를 배후로 하는 산업도시이다. 반월공업단지는 정부의 계획에 따라 수도권에 산재해 있던 노동집약적이고 오염 배출형인 중소형 기업들을 한데 묶어 조성되었다.
1970년대 말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 공단이 조성되고 1986년 안산이 시로 승격되는 시점에 약 1,000여 개의 업체가 입주하면서 인구가 127,000여 명에 이르게 되었으며 이 중 약 86.5%[전국 평균 49.2%]의 인구가 공업에 직간접으로 연계될 정도로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다. 이는 안산이 노동자 중심의 사회경제적 구조를 갖게 됨과 동시에 당시의 사회변혁적인 운동 풍토에 영향을 받아 노동운동이 본격화 될 수 있는 물적 토대가 형성되었음 의미한다.
1986년 안산 지역 노동운동은 종교단체로부터 출발하는데, 대표적인 관련 종교단체로는 노동교회, 반월교회, 성빛교회, 밀알교회, 원곡성당의 노동사목 등을 들 수 있다. 이들은 주로 노동자의 권익 보호와 의식화교육 그리고 노동조합 결성을 지원하는 역할을 수행하였다. 안산 지역 노동운동에서 노동자가 운동의 주체로 등장하는 시기는 1987년부터이다. 이는 그동안 종교단체 등에서 훈련된 선진노동자들의 목적의식적인 노력과 1987년 전사회의 민주화 열기 및 이에 따른 권력과 자본의 느슨해진 노동 통제에 힘입은 바 크다.
이 시기에는 노동단체들의 설립이 대폭적으로 증가했는데, 안산노동상담소, 반월공단 노동상담소, 안산노동교육연구소, 안산노동자의 집 등이 이 시기를 전후로 생긴 단체들이다. 그리고 이들 단체들은 기존에 수행에 왔던 합법적 대중 조직으로서의 노동조합 지원 활동과 더불어 노동자의 정치운동도 병행했으며 ‘안산지역 노동자해방 투쟁위원회’, ‘경수지역 노동자연맹’, ‘안산지역 민주노동자연맹’ 등이 대표적인 관련 단체들이다. 한편 개별적으로 전개되어 오던 노동조합 활동은 연합체 결성을 시도하게 되는데, 이에 따른 조직적 성과가 1989년 7월에 결성된 ‘경기노련 안산지구협의회’다. 경기노련은 당시 노동조합운동을 주도하였던 전국노동조합협의회의 지역조직이다.
[1990년대]
1990년에 접어들면서 안산 지역 노동운동은 지금까지의 양적·질적 성장에 일정한 분기점을 맞는다. 당시까지 수세적이었던 정부의 노동정책은 직접적인 물리적 통제의 강화, 국가 경쟁력 우선이라는 이데올로기적 압박, 그리고 노동자의 정치활동에 대한 공안정국의 조성 등을 통해 노동운동을 탄압하였다. 더불어 자본 진영도 전국경제인단체협의회 등을 통해 전국적 차원의 공동 대응을 시도하면서 노동운동의 약화를 노린 총액임금제, 소사장제 등을 도입하여 노동운동은 급격하게 약화시켰다.
이에 따라 1990년대 초는 안산 지역에서 본격적으로 노동운동이 시작된 1986년 이래 가장 큰 시련이었다. 설상가상으로 1990년 8월 30일 발생한 금강공업노동자 분신사건과 이에 항의하는 노동자들의 시위 과정에서 안산경찰서 소속 경찰관의 죽음은 안산 지역에 대한 공안 탄압을 본격화하는 신호탄이 되어 많은 노동단체들과 선진노동자들의 활동이 위축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1991년 정부의 노동법 개악 기도를 계기로 안산 지역 노동운동은 다시 한 번 활기를 띄게 되는데, 당시의 ‘노동법 개악기도 저지와 노동악법 철폐를 위한 안산지역 공동대책위원회’에는 36개 노동조합이 참가하였다. 이는 당시까지 전개된 안산 지역 노동운동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연대 조직으로 향후 안산 지역 민주노조운동의 조직적 성과로 발전하게 되었다.
1992년의 대통령선거는 그때까지 노동운동 내에 존재는 하였으나 대중적으로는 드러나지 않았던 분파주의가 극에 달한 시기로 기록된다. 즉, 대통령선거의 후보 선택을 놓고 이른바 민중 후보를 지지하는 민중민주주의 계열[독자후보론]과, 야당 후보를 지지하는 민족해방 계열[비판적 지지론]로 분열되면서 노동운동 역시 이런 흐름에서 자유롭지 못하였다.
한편 대통령선거에서 패배한 민중민주주의 계열의 안산노련은 다수가 시민운동 영역으로 전환하게 되면서 현장 장악력이 급격하게 쇠퇴하게 되었으며 경기노련 주축세력이었던 경수노련 역시 중간 노조 진영을 포괄하지 못하는 등 운동 노선의 문제점이 노정되면서 세력이 현저하게 약화되었다. 이런 가운데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소속이면서도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진영과 연대했던 이른바 중간 노조라 불리는 사업장들을 대상으로 활동했던 세력들이 연합하여 한벗노동자회를 결성했는데, 이후 이들은 ‘민주주의 민족통일 전국연합 안산지부’를 결성하면서 안산 지역 노동운동의 중심 세력으로 부상하게 되었다.
안산 지역 노동운동은 1996년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안산지구협의회가 결성하면서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되는데, 이는 당시까지의 비타협적이고 투쟁 일변도인 노선으로부터 합법적인 영역으로 노동운동의 영역을 확대했다는 점에서 의의를 갖는다.
1997년은 한국 노동운동사에 특기할만한 한 해로 평가된다. 1996년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을 결성한 민주노조 운동 진영이 여타의 민중운동 세력과 함께 ‘국민승리21’이라는 정치 결사체를 결성하여 대통령선거에서 처음으로 대대적인 독자 후보를 내세운 전술을 구사하기 시작하였다. 한편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은 당시 야당 후보이던 김대중 후보를 정책 연합을 통해 조직적으로 지원하였다. 당시 안산 지역 노동운동도 이러한 전국적 흐름을 반영하면서 전개되었다.
[2000년대]
2000년 이후의 안산 지역 노동운동의 특징은 주로 그동안의 제조업 중심 노동운동이 사무직과 전문직 그리고 판매직 등으로 다양화되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 안산시지부의 결성, 2001아울렛노조의 결성과 파업, 안산공업대학노조의 결성과 파업, 한도병원노조의 결성과 파업 등이 그것인데 이는 노동운동이 산업과 업종을 뛰어 넘어 전 업종으로 확산되었음을 의미한다.
반면 제조업 단위 노동운동은 자본 측의 대응에 효율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면서 일정한 침체기를 맞게 되었다. 그러나 금속사업장을 중심으로 산별 노조 건설에 대한 논의가 전개되고 그 결과물로 금속노조의 지역 조직이 만들어지는 등 노동운동의 질적 성장이 이루어진 점은 높게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진영은 2002년 대선에서 민주노동당을 결성하여 독자 후보를 내세워 그들의 강령과 주장을 내세운 활동을 전개하였다. 그리고 이의 연장선에서 2004년의 17대 총선에서는 10명의 국회의원을 배출하는 저력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그러나 2007년 대선과 2008년 총선에서는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보수화의 팽배 및 이에 대비한 정치 전략의 부재 그리고 내부 분열 등으로 노동운동 세력이 큰 폭으로 축소되는 정치적 시련을 겪고 있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역시 그동안 상대적으로 소홀했던 노동자의 정치 세력화에 관심을 가지면서 2004년 17대 총선에서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출신 인사들의 일부가 사회당을 통해 국회 진출을 시도하였지만 특기할 만한 성과를 내지는 못하였다. 이들은 2007년의 대선과 2008년의 18대 총선에서는 정책연합을 전제로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활동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이들의 정치적 선택이 노동자의 정치적 위상 강화와 노동정책의 선진화에 얼마나 기여했는지에 대해서는 평가가 엇갈리는 부분이 있다.
[의의와 평가]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안산 지역 노동운동은 전국의 어느 지역보다 치열하게 전개된 노동운동의 역사를 갖고 있다. 그러나 노동운동이 한 단계 더 발전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과제가 놓여 있는데, 우선 중소사업장 중심의 안산 지역 노동운동을 여타 지역 대공장 노동운동과 어떻게 연대할 것인가가 풀어야 할 중요 과제 중의 하나이다.
또한 비정규직 분야의 노동자들을 어떻게 조직할 것인가도 커다란 과제라 할 수 있다. 특히 안산 지역은 어느 지역보다 비정규직 노동자가 많다고 하는 점에서 안산 지역 노동운동의 미래를 결정 짓는 요소가 될 것이다. 그리고 노동자이면서 동시에 ‘시민’인 노동자로서는 지방자치 시대에 걸맞게 시(市) 행정에 노동계급과 소외계층의 목소리를 반영하기 위한 노력을 적극 전개하여 지역 내 위상 강화에도 힘써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