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1005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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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牙山咽嘴寺石造阿彌陀三尊佛像 |
영어공식명칭 | Stone Seated Amitabha Triad of Inchuisa Temple, in Asan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물/불상 |
지역 | 충청남도 아산시 신창면 서부남로790번길 20-52[읍내리 84]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이용윤 |
문화재 지정 일시 | 2005년 10월 31일 - 아산 인취사 석조아미타삼존불상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395호로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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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아산 인취사 석조아미타삼존불상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재지정 |
현 소장처 | 인취사 - 충청남도 아산시 신창면 서부남로790번길 20-52[읍내리 84] |
성격 | 불상 |
재질 | 석재 |
크기(높이) | 본존불- 59㎝[높이]|59㎝[무릎 너비]///지장보살- 52.5㎝[높이]|37.5㎝[무릎 너비]///관음보살- 54.3㎝[높이]|39㎝[무릎 너비] |
소유자 | 대한불교조계종 인취사 |
관리자 | 대한불교조계종 인취사 |
문화재 지정 번호 |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
[정의]
충청남도 아산시 신창면 읍내리 인취사에 있는 조선시대의 석조 불상.
[개설]
아산 인취사 석조 아미타삼존불상은 2005년 10월 31일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395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충청남도 문화재자료로 재지정되었다.
[형태]
아산 인취사 석조 아미타삼존불상은 본존(本尊)인 아미타여래(阿彌陀如來)를 중심으로 관음보살(觀音菩薩)과 지장보살(地藏菩薩)이 보처(補處)[주불의 좌우에 보살을 모심]한 삼존상(三尊像)이다. 재료는 비석(沸石)[제올라이트(zeolite), 규산염 광물]류의 무른 돌로 추정되며, 약 59㎝의 소형 석불이다.
본존은 선정인(禪定印)에 결가부좌(結跏趺坐)를 하였으며, 착의(着衣)는 편단우견(偏袒右肩)[왼쪽 어깨에 웃옷을 걸치고 오른쪽 어깨는 드러냄]의 대의(大衣)에 편삼(偏衫)을 걸치고 대의 자락이 다시 어깨 부분을 감싼 이중착의(二重着衣)[이중으로 옷을 끼워 입는 법]를 하였다. 선정인이란 결가부좌한 상이 취하는 수인(手印)[양쪽 손가락으로 나타내는 모양]으로 손바닥을 편 채로 왼손은 배꼽 아래에 두고, 그 위에 오른손을 포개서 두 엄지손가락을 맞대고 있는 모양이다.
육계(肉髻)[부처의 정수리에 있는 뼈가 솟아 저절로 상투 모양이 된 것]는 봉긋하게 솟아 있으며, 정상계주(頂上髻珠)와 중앙계주(中央髻珠)는 모두 생략하였다. 계주란 상투 가운데 있는 밝은 구슬을 말하며, 정상계주는 육계 위에 장식한 것이고, 중앙계주는 머리와 육계 사이에 장식한 것이다. 옷 주름은 선각을 이용하여 간략하고 도식적으로 표현하여 석재라는 재료적 특징이 잘 드러나 있다. 개금(改金)[불상에 금칠을 다시 함]과 채색을 하였으나 개금하지 않은 밑면에서는 무른 돌의 재료를 볼 수 있다.
우협시(右脇侍)인 지장보살은 본존과 마찬가지로 선정인을 취하였고, 손에 보주(寶珠)를 들고 있다. 머리에는 납작하고 봉긋하게 솟아오른 두건을 표현하였다. 좌협시(左脇侍)인 관음보살은 양손을 손등이 보이게 맞잡은 공수(拱手)[두 손을 앞으로 모아 포개어 잡음]의 형상이며, 보관(寶冠)에는 화불(化佛)[광배(光背)나 보관에 그려진 작은 불상]을 표현하였다. 협시는 본존인 여래를 좌우에서 가까이 모시는 불상을 가리키는데, 협시(挾侍)·협사(脇士)·협립(脇立)이라고도 한다.
본존불, 관음보살, 지장보살 모두 낮고 뭉툭한 코를 가진 부드러운 인상이 같은 모습이며, 선각의 도식적인 옷 주름 표현 등에서도 동일한 양식적 특징을 보인다.
[특징]
아산 인취사 석조 아미타삼존불상에서 보이는 아미타·관음·지장의 삼존 구성은 고려 후기부터 조선 전기까지 유행한 특징적인 도상(圖像)이다. 이른바 ‘피건지장’이라 불리는 두건을 쓴 지장보살의 형상 역시 이 시기에 나타나는 형식이며, 본존인 여래상이나 우협시인 지장보살이 선정인을 취하고 있는 형식 역시 이 시기에 나타난다. 본존상은 지장보살과 화불이 있는 관을 쓴 관음보살을 협시로 두고 있어 아미타불(阿彌陀佛)로 존명(尊名)의 추정이 가능하다.
이러한 도상의 명확한 경전적 근거는 없으나, 아마도 당시 유행하였던 관음·지장 신앙과 아미타 신앙이 민중적 지지를 기반으로 자연스레 결합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지장보살이 명부(冥府)[사람이 죽은 뒤에 간다는 영혼의 세계]의 주존(主尊)으로 독자적 역할을 수행하는 16세기 이후로는 아미타삼존에서 지장보살은 사라지고 경전에 근거한 아미타여래, 관음보살, 대세지보살(大勢至菩薩)의 삼존 구성이 다시 확립된다. 따라서 아산 인취사 석조 아미타삼존불상은 도상적 측면에서 조선 전기의 불상과 그 특징을 공유하고 있다. 다만 불상의 재료인 비석은 충청남도 지역에서는 흔치 않은 재질로 조성 시기와 경위에 대해서는 추가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의의와 평가]
아산 인취사 석조 아미타삼존불상은 고려 후기부터 조선 전기까지 유행한 아미타·관음·지장의 아미타삼존 구성이며, 환조상(丸彫像)으로 현존하는 예가 많지 않아 매우 중요한 불상이다. 충청남도 서산시 개심사에 고려시대의 아미타불상과 조선 전기의 관음·지장 입상으로 구성된 보물 제1619호 서산 개심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瑞山開心寺木造阿彌陀如來坐像)이 남아 있는 점 등을 고려한다면 충청남도 지역에서 이러한 삼존 구성의 조성이 지속되었음을 알 수 있다. 아산 인취사 석조 아미타삼존불상은 이를 증명하는 자료로서 가치가 있을 뿐만 아니라, 도상적 측면에서 지역성을 보여 주고 재료의 측면에서도 귀중한 사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