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1007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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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趙爾炳 |
영어공식명칭 | Jo Ibyeong |
이칭/별칭 | 경장(景章)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충청남도 아산시 온천동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교빈 |
[정의]
조선 후기 충청남도 아산 출신의 문신.
[개설]
조이병(趙爾炳)[1634~1683]은 현종과 숙종 대에 걸쳐 관료를 지냈으며 효행으로 이름이 높았다.
[가계]
조이병의 본관은 양주(楊洲), 자는 경장(景章)이다. 온양에서 태어났다. 증조할아버지는 부사정(副司正) 조눌(趙訥)이고, 할아버지는 부사과(副司果) 처옹(處翁) 조지유(趙之柔)이며, 아버지는 설화산 기슭에 정퇴서원(靜退書院)을 세워 아산 지역의 학문 발전에 크게 기여한 참봉 시암(時菴) 조상우(趙相禹)이다. 어머니는 진주강씨(晉州姜氏)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죽창(竹窓) 강주(姜籒)의 딸이며, 부인은 충주지씨(忠州池氏) 지성연(池性淵)의 딸이다. 슬하에 조명시(趙鳴時), 조명도(趙鳴道), 조명겸(趙鳴謙), 조명봉(趙鳴鳳), 조명국(趙鳴國)을 두었다. 조명국은 신창현감과 회덕현감을 지냈고, 조명봉은 도승지를 지냈으며, 손자 조태언(趙泰彦)은 형조참판을 지냈다.
[활동 사항]
1665년(현종 6) 현종이 온양행궁에 왔을 때 실시한 온양정시 문과에 급제하였다. 내직으로 사헌부감찰, 공조좌랑, 병조좌랑, 예조정랑, 사간원정언, 사헌부지평, 성균관사예(成均館司藝) 등을 거쳤으며, 외직으로 연기현감, 황해도사, 옥천군수 등을 지냈다. 어머니 상을 당해 삼년상을 치른 뒤 다시 성균관직강(成均館直講), 해미현감을 지냈다. 사헌부장령(司憲府掌令)에 제수되었지만 병으로 부임하지 못하다가 몇 년 뒤 봉상시부정(奉常寺副正), 장악원정(掌樂院正)을 거쳐 장령(掌令)에 임명되었고 50세 때 병으로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