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10076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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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孫千日 |
영어공식명칭 | Son Cheonil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충청남도 아산시 신창면 읍내리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정을경 |
[정의]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아산 출신으로 신창면 3·1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
[개설]
손천일(孫千日)[1882~?]은 1919년 4월 1일 충청남도 아산군 학성면[현재 아산시 신창면] 읍내리 학성산(鶴城山)에서 횃불 만세 시위를 벌였고 신창공립보통학교에 투석하는 등 시위운동을 주도하였다.
[가계]
손천일은 아산시 신창면 읍내리에서 태어났다. 그 밖의 사항은 파악되지 않는다.
[활동 사항]
1919년 3·1운동이 발발하여 전국에 전파되자 아산군 학성면에서는 손천일을 비롯하여 박태화(朴泰和)[박진화(朴鎭和)], 정윤흥(鄭允興), 김양순(金良順), 김금복(金今福), 강순화(姜順和), 김원배(金元培), 승일상(承一相), 이상균(李相均), 김학삼(金學三), 김상준(金相俊), 신흥남(辛興南), 이창균(李昌均), 강복개(姜福介) 등이 동네 주민들과 함께 4월 2일 밤 학성산에 올라가 횃불을 올리고 대한 독립 만세를 외쳤다. 이후 이덕균(李悳均)이 면사무소·주재소·보통학교로 쳐들어가 건물을 파괴하자고 말하자, 손천일 등은 이에 찬성하였다. 손천일이 박태화와 함께 군중을 지휘하여 신창면사무소에 도착하였을 때 정윤흥은 투석하여 문 2개를 부수고 신창면 헌병주재소로 쇄도하면서 돌을 던져 문등(門燈) 유리를 깼다. 이들은 다시 신창공립보통학교에 가서 박태화가 먼저 돌을 던지자 손천일 등도 함께 돌을 던지며 유리창 272개와 문 4개를 부수었다. 이 일로 체포된 손천일은 1919년 9월 6일 고등법원에서 소위 소요죄 및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형을 언도받고 복역하였다.
[상훈과 추모]
정부는 손천일의 공훈을 기려 2011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