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10078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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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奎豊 |
영어공식명칭 | Lee Gyupung |
이칭/별칭 | 이규목(李奎穆)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충청남도 아산시 탕정면 매곡리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병기 |
출생 시기/일시 | 1865년 - 이규풍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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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06년 - 이규풍 권유상과 러시아 연해주로 망명 |
활동 시기/일시 | 1908년 - 이규풍 이범윤, 안중근 등과 의병대를 편성하여 국내 진공 작전 수행 |
활동 시기/일시 | 1909년 1월 - 이규풍 단지동맹(斷指同盟) 결성 |
활동 시기/일시 | 1910년 - 이규풍 성명회 조직 및 활동 |
활동 시기/일시 | 1912년 - 이규풍 권업회 결성 참여 |
활동 시기/일시 | 1919년 4월 - 이규풍 한성정부 평정관 선출 |
활동 시기/일시 | 1926년 4월 - 이규풍 고려혁명당 조직 |
몰년 시기/일시 | 1932년 6월 - 이규풍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963년 - 이규풍 대통령 표창 추서 |
추모 시기/일시 | 1977년 - 이규풍 건국포장 추서 |
추모 시기/일시 | 1990년 - 이규풍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
출생지 | 충청남도 아산시 탕정면 매곡리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본관 | 덕수 |
대표 경력 | 독립운동 |
[정의]
충청남도 아산시 탕정면 매곡리 출신의 항일 독립운동가.
[개설]
이규풍(李奎豊)[1865~1932]은 구한말 조정에서 관직에 있다가 을사늑약 후 낙향하였다. 이듬해 러시아 연해주로 망명하여 이범윤·안중근 등과 의병대를 조직하였으며, 성명회·권업회 결성에 참가하고 한성정부 평정관에 선출되었다. 1926년에는 만주에서 개최되는 민족혁신파대표대회에 참가하여 고려혁명당을 조직하였다.
[가계]
이규풍(李奎豊)은 충무공 이순신의 10세손으로 본관은 덕수, 이명은 이규목(李奎穆)이다.
[활동 사항]
이규풍은 증조할아버지부터 4대에 걸쳐 무과에 급제한 무반의 명문가이다. 구한말 조정의 내직에 있다가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였다. 이듬해인 1906년 친구인 권유상과 러시아 연해주의 연추(煙秋)[크라스키노]로 망명하였다. 1908년 연해주에서 이범윤, 안중근(安重根)[1879~1910] 등과 의병대를 편성하여 국내 진공 작전을 수행하는 한편, 1909년 1월에는 안중근 등 12명과 단지동맹(斷指同盟)을 결성하여 국권 회복의 의지를 다졌다. 1910년 국권 피탈을 당하자 이상설·유인석·이범윤·김학만 등과 함께 성명회를 조직하여 활동하였다. 이들은 "유혈적인 방법에 의하여 합병을 저지한다."라는 격문을 배포하고 본격적인 무장 활동에 들어가려 하였다. 그러나 일제의 사주를 받은 러시아 당국은 이규풍을 비롯한 간부 20여 명을 체포하고 모든 정치 활동을 엄금하면서 성명회는 해체되었다.
이후 1912년 권업회 결성에 참여하였고, 연해주 일대에서 무관학교를 설립하는 등 항일 활동을 계속하였으며, 1919년 4월 국내에서 조직된 한성정부에서 평정관에 선출되기도 하였다. 1926년 4월 만주에서 개최되는 민족혁신파대표대회에 참가하여 고려혁명당을 조직하였다. 고려혁명당은 민족유일당운동(民族唯一黨運動)의 하나로 혁명을 위한 이념 무장을 투철히 할 것을 결의하면서 조직되었는데, 양기탁·현정경·오동진·정이형·이규풍·주진수·최소수·김봉국·이동락 등 정의부 계열과 연해주에서 활동하던 인물 그리고 천도교 혁신파·형평사 등의 인물들이 망라되었다.
이규풍은 이후 러시아 연해주에서 항일 활동을 전개하던 중 1932년 6월 중동선 육참에서 사망하였다. 아들 이민호, 손자 이길영도 독립운동에 참가하여 3대의 독립운동 가문이 되었다.
[상훈과 추모]
정부는 이규풍의 독립운동 공훈을 기려 1963년에 대통령표창, 1977년에 건국포장,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