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10078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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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陳壽麟 |
영어공식명칭 | Jin Surin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충청남도 아산시 신창면 신달리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병기 |
출생 시기/일시 | 1898년 12월 21일 - 진수린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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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21년 4월 - 진수린 대한민국임시정부 재산계 서기로 활동 |
활동 시기/일시 | 1927년 11월 - 진수린 한인청년동맹 중앙집행위원으로 활동 |
활동 시기/일시 | 1928년 12월 - 진수린 아산 신창면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다 일제 경찰에 체포 |
활동 시기/일시 | 1929년 7월 23일 - 진수린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 선고 |
활동 시기/일시 | 1930년 8월 - 진수린 병으로 가출옥 |
몰년 시기/일시 | 1930년 9월 9일 - 진수린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992년 - 진수린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
출생지 | 충청남도 아산시 신창면 신달리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독립운동가 |
[정의]
충청남도 아산시 신창면 신달리 출신의 항일 독립운동가.
[개설]
진수린(陳壽麟)[1898~1930]은 아산금융조합에 근무 중 공금을 빼돌려 상해 대한민국임시정부로 탈출, 군자금으로 헌납했으며 대한민국임시정부 재산계 서기로 근무하였다. 1927년 11월 재중국본부 한인청년동맹이 창립될 때 중앙집행위원으로 활동하였다. 1928년 12월에는 대한민국임시정부 군자금 모집 임무를 띠고 귀국 후 일경에 체포되어 1929년 7월 23일에 징역 2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 병으로 가석방된 후 1930년 9월 9일에 사망하였다.
[활동 사항]
진수린(陳壽麟)[1898~1930]은 신창공립보통학교를 졸업 후 아산금융조합에서 근무하였다. 진수린은 1921년 4월 상해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자금 모집을 위해 국내로 들어온 사촌 처남 최익수의 권고로 금융조합의 공금을 빼내어 최익수·이종락 등과 함께 상해로 도항하였다. 이때 빼돌린 공금을 상해 대한민국임시정부에 군자금으로 헌납한 후 대한민국임시정부 재산계 서기로 임명되어 광둥, 무창 등지를 드나들며 독립운동에 헌신하였다.
1927년 11월 상해 한인독립청년회 등을 중심으로 북경, 광둥, 무창 등 중국 각지의 한인독립청년회 대표가 모여 각 청년회를 통합, 비밀결사체인 재중국본부 한인청년동맹을 창립할 때 중앙집행위원으로 선출되어 활동하였다. 1928년 12월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임무를 띠고 비밀리에 귀국하여 고향인 아산 신창면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다가 일제 경찰에 체포되었다. 그 후 1929년 7월 23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르던 중 1930년 8월 병을 얻어 가석방된 뒤 1930년 9월에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정부는 진수린의 독립운동의 공훈을 기려 1992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