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1009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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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希安堤 |
영어공식명칭 | Huian Levee |
분야 |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 |
유형 | 지명/시설 |
지역 | 충청남도 아산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송경남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27년 - 희안제 마산저수지 준공으로 수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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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 설립지 | 희안제 - 충청도 온양군 |
성격 | 저수지 |
면적 | 약 2.57㎞[둘레]|1.5m[수심] |
[정의]
충청남도 아산시 신정호 근처에 있었던 조선시대에 축조된 옛 저수지.
[개설]
희안제(希安堤)는 아산시 방축동 희안마을 동쪽, 현재의 마산저수지[신정호] 한가운데 있던 옛 저수지이다.
[건립 경위]
1454년(단종 2)에 편찬된 『세종실록지리지』에는 희안제에 대한 기록이 없고, 1757년(영조 33)~1765년(영조 41)에 편찬된 『여지도서』에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조선 후기 이앙법이 전국적으로 보편화되는 시기에 축조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변천]
희안제는 아산시 방축동 남산 줄기의 서쪽에 있는 600년 역사의 마을 희안리 앞에 조성되어 있어 붙여진 명칭이라고 하며, 1872년(고종 9)에 제작된 『1872년 군현지도』「온양군」[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소장]을 통해 희안제의 위치를 짐작해 볼 수 있다. 황산과 덕암산 사이에서 발원하는 초사천과 황산천이 만나 수원(水源) 확보에 유리한 곳에 조성되었으나, 규모에 대한 옛 문헌의 기록으로 보아 저수지라기보다는 방죽 정도로 추정된다. 희안제 아랫마을을 방죽말[방축리]이라고 불렀던 것으로 보아도 그렇게 봐야 할 것이다. 일제강점기인 1927년 농업용수 확보를 위해 마산저수지[신정호]가 완공됨에 따라 이제는 그 흔적을 찾을 수 없다.
[구성]
희안제에 대해서는 『여지도서』「온양군읍지」에 ‘군[온양군 관아] 서쪽 13리[약 5㎞]에 있으며, 둘레는 850장(丈)[약 2.57㎞]이고 수심은 5자[尺][약 1.5m]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현황]
희안제 아래[북쪽]로 규모가 더 큰 마산저수지[신정호]가 1927년 준공됨에 따라 마산저수지의 중앙에 있던 희안제는 수몰되어 현재는 그 흔적을 찾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