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101026
한자 天道敎牙山敎區
분야 종교/신종교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충청남도 아산시 번영로115번길 21-8[권곡동 443-146]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최만정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08년 2월 24일연표보기 - 천도교 홍주교구 아산전교실 설립
개칭 시기/일시 1934년 1월 11일연표보기 - 천도교 아산교구로 독립
이전 시기/일시 1963년 4월 25일 - 천도교 아산교구 이전
이전 시기/일시 1985년 9월 14일 - 천도교 아산교구 현 위치로 이전
최초 설립지 천도교 홍주교구 아산전교실 - 충청남도 아산군 온양읍 용화리 38
주소 변경 이력 천도교 홍주교구 아산전교실 - 충청남도 아산군 온양읍 실옥리 4-15
현 소재지 천도교 홍주교구 아산전교실 - 충청남도 아산시 번영로115번길 21-8[권곡동 443-146]지도보기
성격 교구

[정의]

충청남도 아산시 권곡동에 있는 천도교 교구.

[개설]

천도교는 1860년에 최제우(崔濟愚)[1824~1864]가 창도(唱道)한 동학의 새 이름이다. 충청남도 아산에 동학이 전래된 때는 1880년대 초이며, 아산의 동학 교도들은 1894년 가을의 내포 동학농민혁명에 참여하였다. 1905년 ‘천도교’ 개칭 이후에는 1908년 아산전교실로 출발하여 3·1운동무인멸왜기도운동(戊寅滅倭祈禱運動) 등 항일운동을 지속하였다. 일제의 탄압으로 교세가 위축되었지만, 6·25전쟁 후 월남한 천도교인이 합류하면서 천도교(天道敎) 아산교구(牙山敎區)가 설립되었다.

[설립 목적]

천도교 아산교구는 인간과 자연과 신이 모두 함께 어우러져 살 수 있는 ‘우주 공동체 삶’을 지향하는 천도교의 가르침에 따라 시천주(侍天主), 인내천(人乃天), 보국안민(輔國安民), ‘다시 개벽’이라는 핵심 가치를 표방하며 설립되었다.

[변천]

천도교는 동학의 새 이름이며 우리나라 자생 종교이다. 동학을 창도한 사람은 1824년 10월 28일 경상북도 경주시 현곡면 가정리(稼亭里)에서 태어난 수운(水雲) 최제우(崔濟愚)[1824~1864]이다. 천도교에서는 동학을 창도한 최제우를 ‘수운대신사(水雲大神師)’로 부르며 ‘도는 비록 천도(天道)이나 학은 동학(東學)’이라는 최제우의 가르침을 이어가고 있다.

충청남도 아산 지역 동학은 안교선, 김경삼 등과 함께 신창의 정태영, 아산의 곽완, 온양의 이신교가 집강(執綱)으로 활약하였다. 그러나 내포 동학농민군은 우금치전투가 한창이던 때에, 10월 하순 홍주성전투에서 결정적으로 패배하였고 혹독한 탄압을 당하였다. 살아남은 동학농민군은 처형당하거나 금북정맥 일대의 산속으로 숨어들었고, 이름을 바꾸거나 서양 종교에 의탁하였다.

아산 지역에서는 3·1운동천도교가 주도한 대표적인 곳은 3월 14일 온양장터 만세운동과 4월 4일 선장 만세운동이다. 천도교 교사 권병덕으로부터 권유, 지시를 받은 현창규는 3월 14일 온양장터에서 서만수, 권태원, 김치삼 등과 함께 100여 군중에게 독립선언서를 배포하고 독립만세를 외쳤고 22명이 체포되었다. 정규희는 동학 접주였던 정태영의 아들이며, 김천봉, 서몽조, 임천근, 오상근과 함께 4월 4일 선장 장날에 200여 명의 군중을 조직하여 독립만세를 불렀다. 정규희는 군중을 지휘하며 선장면 헌병주재소에 돌입하여 투석전을 전개하여 함께한 5명과 함께 2년 6개월의 징역형을 받았다.

천도교 멸왜기도운동은 1836년 8월 14일에 당시 천도교 4세 교주였던 박인호 대도주가 밀령을 내림으로써 시작되었다. 박인호는 충청남도 예산 출신으로, 내포 동학농민혁명 대접주였고, 일제강점기에도 박인호의 지도를 받았기 때문에 아산 지역 교인들은 매일 아침과 저녁 식사 후에 ‘일본놈을 없애자’는 멸왜를 기원하는 기도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1938년에 일제에 발각되었고, 아산 지역은 3월 중순부터 4월 초에 여러 교인이 체포되었으며, 이규호·이보성·강창주·이창운·이명구·이종일·이종선·정규희 등은 온양경찰서에서 모진 고문을 받다가 7~13일 만에 석방되었다.

천도교 아산교구가 가장 활성화되었을 때는 교호(敎戶) 수가 3,000여 호에 달했다고 전해지나, 항일운동과 지속된 일제의 탄압으로 3·1운동 이후에는 300여 호 정도였으며, 8·15광복 때는 30여 호로 급속히 줄었다. 아산 지역에서 천도교 교세가 강했던 선장, 도고 지역은 정규희가 예산교구장을 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예산교구로 편재되었고, 연원록이나 교보에 누락된 인원이 있을 수 있다. 일제강점기에 천도교단에 등록되어 교단 내에서 직위를 받았거나 활동 상황이 파악되는 아산 지역 천도교인은 『동학천도교인명사전』에 35명이 실려 있다.

6·25전쟁 이후 아산에 정착한 월남 천도교인들이 아산교구에 합류하면서 교인이 200여 호로 증가하였다. 1963년 4월 25일에는 새로운 교당을 아산군 온양읍 실옥리 4-15 대지 60평[198㎡]에 마련하였는데, 가정집이나 임대를 벗어난 아산교구 독자 건물이었다. 1985년 9월 14일에는 현재 위치에 3층 건물을 지어 이전하였다. 지금도 사용하고 있는 교당은 온양읍 권곡리 443-146[번영로115번길 21-8]이며, 대지는 150여 평[496㎡] 규모이다.

천도교 아산교구 역대 교구장 명단과 취임일을 살펴보면 이규호(李圭鎬)[1908년 2월 24일], 이명구(李明求)[1944년 4월 5일], 이종옥(李鐘玉)[1949년 4월 17일], 리한구(李漢求)[1950년 9월 28일], 서병항(徐秉恒)[1959년 4월 10일], 현국태[1963년 4월 28일], 서병항[1966년 1월 29일], 김성준[1966년 12월 26일], 길희태[1986년 3월 27일], 최봉진[1992년 11월 22일]으로 이어져 왔으며, 2018년 기준 교구장은 채수엽[1995년 4월 27일]이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천도교 아산교구의 천도교인들이 받드는 천도교 종지(宗旨)는 ‘인내천(人乃天)’이다. 인내천은 1세 교조인 최제우의 ‘시천주(侍天主)’에 그 연원을 둔 것으로, 천도교는 인간과 자연과 신이 모두 함께 어우러져 살 수 있는 ‘우주 공동체 삶’을 지향한다. 인내천은 ‘사람이 이에 한울님’이라는 뜻으로 한울님은 천(天)의 천도교식 표현이다. 이는 3세 교조인 손병희 때에 부각된 것으로, 오늘까지 천도교 종단의 종지가 되고 있다.

시천주는 천도교의 핵심 교리이며, 모든 사람이 본원적으로 한울님을 모시고 있다는 근원적 평등주의를 내포하고 있다. 이를 사회적인 면으로 보면, 법 앞에서 평등을 강요하는, 또는 신 앞에서 평등을 강요하는 서구적 평등주의를 뛰어넘는 것이다. 시천주 사상은 2세 교주 최시형에 이르러 ‘사람이 곧 한울’이라는 인시천(人是天)으로 표명되어, 사람이 곧 한울이니 ‘사람 섬기기를 한울님같이 하라’는 사인여천(事人如天)의 윤리로 발전, 실천되기 시작하였다. 따라서 천도교는 인내천의 종지와 함께 바로 이 사인여천을 사회적 실천 윤리로 삼고 있다. 시천주에서 인시천으로, 나아가 사인여천의 윤리로 거듭 뻗어 나간 천도교의 가르침은 손병희 때에 이르러 ‘사람이 이에 한울’이라는 인내천을 내놓게 되었고, 이 인내천을 천도교의 종지로 삼게 되었다.

그러나 ‘사람이 이에 한울’이라는 인내천을 종지로 삼았다고 하여 천도교가 인간 지상주의를 지향한다고는 말할 수 없다. 사람이 한울이듯이 우주의 모든 만유(萬有) 역시 한울 아님이 없다는 것이 곧 천도교의 가르침이기 때문이다. "저 나무 사이에서 울고 있는 새 소리 역시 시천주"라는 최시형의 가르침은 이 우주에 가득한 만유 역시 한울님을 모시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한울님을 공경하듯이[敬天], 사람도 공경해야 하며[敬人], 나아가 만유도 이와 같이 공경해야 한다[敬物]"는 삼경사상(三敬思想)으로 정립되었다. 이러한 삼경사상 역시 시천주와 인내천의 또 다른 표현이다.

[현황]

천도교 아산교구는 월남한 1세대가 점차 사망[還元]하면서 2000년 이후 침체를 겪어 왔으나, 2014년 ‘사회운동과 함께, 인권을 중시하는 아산교구’를 표방하며 새로운 도약을 위해 노력 중이다. 2018년 기준 200여 가구를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천도교 아산교구는 1880년대 초에 충청남도 아산 사람들이 동학을 받아들인 이래 동학농민혁명과 일제강점기의 시련 등을 겪으면서도 끈질기게 이어져 온 동학, 이후 천도교의 맥을 계승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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