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10136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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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칭/별칭 | 「베틀타령」,「베틀요」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민요와 무가 |
지역 | 충청남도 아산시 신창면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장미숙 |
채록 시기/일시 | 1981년 7월 18일 - 서대석이 「베틀노래」 채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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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82년 - 「베틀노래」 『한국구비문학대계4-3』-충청남도 아산군편에 수록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83년 - 「베틀노래」 『아산군지』 상권에 「베틀요」로 수록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94년 - 「베틀노래」 『온양아산의 민속』에 「베틀요」로 수록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2016년 - 「베틀노래」 『아산시지』2에 「베틀요」로 수록 |
채록지 | 궁화리 - 충청남도 아산시 신창면 궁화리 |
성격 | 민요|노동요 |
[정의]
충청남도 아산시 신창면을 비롯한 아산시 일원에서 부녀자들이 베를 짜면서 부르던 여성 노동요.
[개설]
충청남도 아산의 「베틀노래」는 「베틀타령」, 「베틀요」라고도 하며, 베틀을 짜는 과정을 내용으로 담기도 하고, 여성의 삶을 서사로 풀어내기도 한 것이 특징이다.
[채록/수집 상황]
「베틀노래」는 한국정신문화연구원[현재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간행한 『한국구비문학대계4-3』-충청남도 아산군편에 수록되어 있다. 2016년에 아산시청에서 간행한 『아산시지』2와 1994년 온양문화원에서 간행한 『온양아산의 민속』, 1983년에 아산군지편찬위원회에서 간행한 『아산군지』 상권에는 「베틀요」로 실려 있다. 『한국구비문학대계』에 실린 「베틀노래」는 1981년 7월 18일에 서대석이 신창면 궁화리 마을로 현지 조사를 나가 오원선[남, 64세]으로부터 채록한 것이다.
[구성 및 형식]
「베틀노래」는 일반적인 서사민요의 구조와 차이가 있다. 서사민요의 구조는 단일사건을 일상적이고 현실적으로 전개하는 데 반해 「베틀노래」는 허구적 요소가 지배적으로 나타난다. 구성 형식을 살펴보면, 베를 짜는 인물이 평범한 인물이 아니라 하늘의 신선녀가 인간세계로 놀러와 베를 짜는 형식을 갖추었다. 그러나 『한국구비문학대계』와 『온양아산의 민속』에 실린 「베틀노래」는 베를 짜는 처녀가 시집을 가고 싶어 사랑을 갈구하는 내용으로 일반적인 서사민요의 형식을 갖추었다.
[내용]
『한국구비문학대계』에 실린 「베틀노래」 가사는 다음과 같다.
베틀을 놓세 베틀을 놓세/ 옥난간에 베틀을 놓세/
에헤여 베 짜는 아가씨/ 사랑 노래 베틀에 수심만 찌누나//
낮에 짜는 일광단이요/ 밤에 짜면 월광단이로다/
에헤요 베 짜는 아가씨/ 사랑 노래 베틀에/ 수심만 찌누나//
이포 저포 세단포요/ 경상도다 안동포로다/
에헤여 베 짜는 아가씨/ 사랑 노래 베틀에 수심만 찌누나
『온양아산의 민속』에 실린 「베틀노래」 가사는 다음과 같다.
베틀을 놓세 베틀을 놓세/ 옥난간에다 베틀을 놓세/-후렴-
양덕 맹산 중세표요/ 길주 명천 세북포로다/-후렴-
반공중에 걸린 저 달은/ 바디 장단에 다 넘어 간다/-후렴-
초산 벽동 칠승포요/ 희천 강계 육승포로다/-후렴-
춘포 조포 생당포요/ 경상도라 안동포로다/-후렴-
젊은 비단 생팔주요/ 늙은 비단 노방주로다/-후렴-
황경나무 북 바디집은/ 큰 애기 손목에 다 녹아 난다/-후렴
이 베를 짜서 누구를 주나/ 바디 칠손 눈물이로다/-후렴-
영원 덕천 오승포요/ 회령 종성 산북포로다/-후렴-
닭아 닭아 우지를 마라/ 이 베 짜기가 다 늦어 간다/-후렴-
에헤요 베 짜는 아가씨/ 사랑 노래 베틀에 수심만 지노라/-후렴-
일락서산 석 양단이요/ 소화신령 모초단이라/-후렴-
잉앗대는 삼 형제인데/ 놀림대는 독신이로다/-후렴-
모든 시름 다 잊어버리고/ 이 밤이 가도록 베만 짜세/-후렴-
은주 생주 삼동자요/ 남방사주 자원주로다/-후렴-
오색비단 채색단이요/ 월문 영초 대화단이라/-후렴-
춘포 조포 다 그만두고/ 가는베 짜서 정든 임 줄까/-후렴-
뇌고 함성 영초단이요/ 태평건곤 대원단이라/-후렴-
주야장천 베만 짜면/ 어느 시절에 시집을 가나/-후렴-
넒이 넓다 광화포요/ 척수 길다 대갈포로다/-후렴-
화란춘성 만화방창/ 봉접분분 화초단이라
『아산시지』2에 실린 「베틀요」 가사는 다음과 같다.
하늘의 신선녀가/ 하올 일이 없어/
억장에 내려와/ 황금의 베틀을/ 좌석에 차려 놓고/
두르는 양은/ 육칠월에 무개등으로/ 두르는 양이여/
말키는 달케하고/ 화만을 반만 숙이구/
아마 같은 손으로/ 연지 등으로/ 자즈론게 치드키 간다/
쳇등은 육칠월의/ 무지갯등 쓰드키/ 잉앗대는 삼형제요/
맏아들은 열아홉 살/ 먹은 딸이/ 스물아홉 살 먹은 딸을 잃고/
새앙금을 찾아가는/ 형국이다/
성제는 노더니 마주 손잡고/ 한강에서 노는 형국이요/
눌르기는 독수공방/ 홀로 누워/
이리 눕고 저리 누워/ 한강 같은 눈물일세/
비거리등은 황문연이/ 황대성이 잔치등이다/
불루기두 놀기두 하네/ 시츠미는 성제요/
마주 붙잡고/ 만강경을 헤치고 나가네/
눈썹 느리대는 연못가에/ 백발노인이 느리구/ 낚싯줄이나 지지 않다구/
도토마리는 여의주를 물고/ 하늘루 용이 되어/ 올라가는 형국이요/
박덩이 떨어지는 소리는/ 육중히 참가랑잎/ 떨어지는 소리다/
지지 않구 멀드기대는/ 앞 못보는 노인의/ 일가친척도 없구 자신두 없구/
이리 닫구 저리 닫구/ 툭 고꾸라지는 형국이구/
용두라리는 칠팔월에/ 기러기가 짝을 잃구 환고향으로/
기르륵 기르륵 하구/ 나가는 형국이고/
쳇고리는 종갓집 며느리가/ 무암이 들어서 상대 들보에/
명주 수건으로/ 목을 매어 걷는 형국이요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씨와 날을 걸어서 베를 짜는 일은 과거 여성들에게 매우 고단한 노동이었다. 결혼 전의 처녀들도 베 짜는 기술을 익혔는데, 생활에 큰 보탬이 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베틀노래」에 아가씨가 베를 짜느라 시집을 언제 가나 하는 하소연 등이 담겨 있으며, 베를 짜는 일이 얼마나 힘들고 고달픈 노동이었는지를 알 수 있게 한다.
[현황]
「베틀노래」는 과학의 발달과 생활환경의 변화로 아산 지역에서는 더 이상 베를 짜지 않는다. 「베틀노래」 또한 가창되지 않고 문헌으로만 전한다.
[의의와 평가]
「베틀노래」에는 밤낮으로 월광단과 일광단을 짜지만 베를 줄 낭군이 없는 아가씨의 비애가 담담하게 담겨 있다. 그러나 『아산시지』2에 실린 「베틀요」를 보면 베를 짜는 고달픈 일을 하늘의 신선녀가 내려와서 하는 것으로 묘사해 스스로 위로로 삼은 여성들의 지혜가 엿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