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80046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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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慶全 |
이칭/별칭 | 중집(仲集),석루(石樓)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충청남도 보령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홍제연 |
출생 시기/일시 | 1567년 - 이경전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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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시기/일시 | 1585년 - 이경전 진사시 입격 |
활동 시기/일시 | 1590년 - 이경전 증광문과 병과 급제 |
활동 시기/일시 | 1596년 - 이경전 예조좌랑·병조좌랑 임명 |
활동 시기/일시 | 1608년 - 이경전 유영경을 탄핵하다 강계로 귀양 |
활동 시기/일시 | 1618년 - 이경전 한평군으로 습봉하고 좌참찬 임명 |
활동 시기/일시 | 1623년 - 이경전 한평부원군(韓平府院君) 진봉 |
활동 시기/일시 | 1637년 - 이경전 삼전도 비문 작성 명 거절 |
활동 시기/일시 | 1640년 - 이경전 형조판서 임명 |
몰년 시기/일시 | 1644년 - 이경전 사망 |
묘소|단소 | 이경전 묘소 - 충청남도 보령시 주교면 고정리 |
성격 | 문신 |
성별 | 남 |
본관 | 한산 |
대표 관직 | 형조판서 |
[정의]
충청남도 보령시에 묘소가 있는 조선 후기 문신.
[개설]
이경전(李慶全)[1567~1644]은 조선 후기 전라도관찰사, 좌참찬, 형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이자 문장가로, 아들 이무(李袤)가 남긴 글을 모아 엮은 문집 『석루유고(石樓遺稿)』가 있다.
[가계]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중집(仲集), 호는 석루(石樓)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이치(李穉)[1477~1507], 할아버지는 이지번(李之蕃)[1508~1575]이다. 아버지는 영의정 이산해(李山海)[1539~1609], 어머니는 양주 조씨 조언수(趙彦秀)의 딸이다. 부인은 안동 김씨 김첨(金瞻)의 딸이며, 슬하에 아들 다섯을 두었다.
[활동 사항]
이경전은 대북파(大北派)의 영수인 아계(鵝溪) 이산해의 아들로, 아버지와 함께 광해군(光海君)[재위: 1608~1623] 대에 정국을 주도하였다. 경사(經史)[경서(經書)와 사기(史記)를 아울러 이르는 말]와 문장이 뛰어났다. 보령의 한산 이씨는 이경전의 증조할아버지 이치(李穉)가 고려 말부터 보령에 세거하였던 광산 김씨가의 사위가 되면서 기반을 조성하고 대대로 번성하였는데, 이산해의 묘를 예산에 조성하면서 이경전의 후손들은 주로 예산에 집성촌을 형성하고 있다.
이경전은 1585년에 진사 입격, 1590년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사마방목(司馬榜目)과 문과방목(文科榜目)에는 모두 거주지가 한성[서울]으로 기재되어 있다. 급제 후 이듬해 사가독서(賜暇讀書)[조선 시대에, 유능한 젊은 문신들을 뽑아 휴가를 주어 독서당에서 공부하게 하던 일]를 하였다.
관직 생활을 시작하면서 내외직의 요직을 두루 역임하였다. 선조(宣祖)[재위: 1567~1608]가 사망한 후 영창대군(永昌大君)을 옹립하려는 소북(小北)의 유영경(柳永慶)[1550~1608]을 탄핵하다가 강계로 귀양을 갔다. 광해군이 즉위하자 풀려나와 충홍도(忠洪道)[충청도]·전라도의 관찰사를 지내고, 1618년 한평군(韓平君)으로 습봉(襲封)하고 좌참찬에 올랐다.
1623년 인조반정이 일어났을 때, 이경전은 반정을 주도한 서인계 인사와 친분이 두터워 생명을 보전하였고, 인조(仁祖)[재위: 1623~1649] 대에도 고위 관료로서 활약하였다. 특히 인조의 책봉 승인을 받기 위해 파견하는 주청사(奏請使)로 임명되어 명나라에 다녀왔고, 그 공으로 한평부원군(韓平府院君)에 진봉되었다. 당시 사론은 문장으로 명나라에 답할 수 있는 사람은 이경전이 가장 적합하다고 하였다. 1637년에 장유(張維)·이경석(李景奭) 등과 함께 청 태종을 칭송하는 삼전도(三田渡) 비문 작성의 명을 받았으나 병을 빙자하고 거절하였으며, 1640년 형조판서를 지냈다. 이경전은 당색으로 인해 『인조실록(仁祖實錄)』의 졸기(卒記)에 “사람됨이 교활하고 간사하여 자기 부형의 배경을 의지해서 조정의 권력을 제멋대로 농락하였다”고 부정적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평생의 업적을 보면 뛰어난 관료, 문장가로 평가된다.
[학문과 저술]
이경전의 글은 대부분 병자호란으로 없어졌다. 이경전의 아들 이무(李袤)가 남은 글을 모아 엮은 문집 『석루유고』가 있다. 선조들의 고향 보령의 아름다운 경치를 노래한 시 8편이 『석루유고』와 『보령읍지』에 남아 있다.
[묘소]
묘소는 토정(土亭) 이지함(李之菡)[1517~1578]이 명당터로 정한 고만[현재 충청남도 보령시 주교면 고정리] 선영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