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8006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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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白觀亨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충청남도 보령시 청소면 성연리 439 |
시대 | 근대/개항기,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정을경 |
출생 시기/일시 | 1861년 2월 - 백관형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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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05년 - 백관형 홍주의병 및 조선13개도대표자회의 활동 |
활동 시기/일시 | 1919년 - 백관형 3·1운동 활동 |
몰년 시기/일시 | 1928년 11월 - 백관형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990년 - 백관형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
출생지 | 충청남도 보령군 청소면 성연리 |
성격 | 의병|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홍주의병|조선13개도대표자회의 활동 |
[정의]
구한말에 활동하였던 충청남도 보령 지역 출신의 의병이자 독립운동가.
[개설]
백관형(白觀亨)[1861~1928]은 충청남도 보령군 청소면 출신으로 유준근(柳濬根)[1860~1920]과 함께 홍주의병과 서울에서 3월 1일 만세운동을 참여한 인물이다.
[활동 사항]
백관형은 1905년 을사늑약에 반대하며 홍주의병에 참가하여 유준근과 함께 참모로 활동하였다. 1919년 3월 1일에는 서울에서 만세운동에 참가하였다.
손병희(孫秉熙)[1861~1922] 등 33인이 체포된 뒤 3월 12일 서린동 영흥관에서 백관형은 문일평(文一平)[1888~1936]·김백원(金百源)[1859~1935] 등과 함께 주동이 되어 ‘조선13개도대표자회의(朝鮮十三個道代表者會議)’를 결성하였다. 백관형은 조선13개도대표자회의의 일원으로서 ‘애원서’라고 제목을 붙인 조국 독립의 정당성과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을 규탄하는 “조선 독립은 우리들 이천만의 요구이다. 우리들은 손병희의 후계자로서 조선 독립을 요구한다.”라는 취지의 격문 2통을 작성하여 1통을 조선총독에게 보내 우리나라의 독립을 촉구하였다. 그리고 이날 수백 명의 군중이 모인 종로 보신각 앞에서 격문을 낭독하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1919년 11월 6일 경성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월형을 언도받아 복역하였다.
한편, 백관형은 1919년 3월 파리강화회의에 보내는 독립청원서에 서명한 유림 대표 137명 중 1인으로 활약하는 등 다양한 방면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