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80069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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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海 金氏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 관당리 |
시대 | 조선/조선,근대/근대,현대/현대 |
집필자 | 문광균 |
입향 시기/일시 | 18세기 초반 - 김명조 입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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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 김해 - 경상남도 김해시 |
입향지 | 김해 김씨 입향지 - 충청남도 보령시 남포면 삼현리 |
세거|집성지 | 김해 김씨 세거지 - 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 관당리 |
성씨 시조 | 김수로(金首露) |
입향 시조 | 김명조(金明祚) |
[정의]
김수로를 시조로 하고, 김명조를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보령의 이거 성씨.
[연원]
금관가야를 세운 김수로(金首露)[42-199]를 시조로 한다. 이후 금관가야가 신라에게 멸망한 뒤에는 금관가야의 왕족들이 신라의 진골(眞骨)로 유입되었다. 삼국 통일의 대업을 달성한 대각간(大角干) 김유신(金庾信)[595-673]을 중시조로 하고, 본관을 김해로 하는 성씨이다. 김해 김씨는 경파(京派), 사군파(四君派), 삼현파(三賢派)로 구분한다.
[입향 경위]
김해 김씨 보령 입향조와 입향 시기는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지만, 보령 지역 입향조를 김명조(金明祚)로 보는 견해가 우세하다. 김명조가 언제 입향을 하였는지 알 수 없지만, 아들 김보현(金輔鉉)이 1742년(영조 18)에 남포면 삼현리 뒷굴에서 출생한 점을 고려하면, 18세기 초반에 남포로 입향한 것으로 보인다. 이후 아들 김보현은 18세기 중반에 웅천으로 이거하면서 관당리로 입향하였다. 김보현은 김제원(金濟元)과 김제승(金濟承) 두 아들을 두었고, 후손들이 관당리에 지속해서 세거하였다.
또한 원산도에도 김해 김씨들이 입향하였는데, 김일손(金馹孫)[1464-1498]의 손자인 김록(金錄)이 전라도 남원(南原)에서 홍주(洪州)[현재 충청남도 홍성군]로 이거하였고, 김록의 아들 김치영(金致泳)은 문과 급제 후 병조참의(兵曹參議)까지 지냈다. 김치영의 증손자인 김성모(金聲模)부터 원산도에 묘소를 정한 것을 보면, 18세기에 원산도로 입향한 것으로 추정된다. 보령으로 입향한 김해 김씨는 삼현파(三賢派) 계열이다.
[현황]
2015년 통계지리정보서비스 본관 인구 분포 조사에 따르면 충청남도 보령시에 거주하는 김해 김씨는 8,034명으로 조사되었다.
[관련 유적]
김성모의 선대인 김손경(金遜慶), 김한(金瀚)의 묘소는 충청남도 보령시 원산도 고름쟁이, 진고지로에 있다. 김보현의 묘소는 관당1리 각굴 깊은다리 뒤에 형성되어 있다.